왜 따르는가왜 따르는가

Posted at 2015.09.22 18:59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1. 좋은 책이다. 잡스를 다루는 모든 책 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월하다. 전기도 걷어 치워야 할 수준.

2. 모두가 '인사는 만사'를 외치지만, 정작 실행으로 옮기는 곳은 흔하지 않다. 잡스는 그걸 해냈다. 정신병자 수준의 강박증으로. 그것 하나만으로 이 책은 볼 가치가 있다. 책을 돌아보면 (난 초스피드 속독을 메모하며 보고, 줄 친 부분 위주로 다시 한 번 본다) 웃기긴 한데, 거의 절반이 인사 방면 내용이다.

3. 마찬가지로 이슈를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인데, 잡스는 이를 대기업에서 성공했다. 물론 회사가 워낙 크다 보니, 핵심 조직을 구성해서 해결. 삼성 비서실과의 차이라면 회사가 아닌 제품에 집중했다. 잡스라는 인간은 그냥 그릇이 다르다는 생각. 

4. 반면 인간으로서는 잡스의 부족함도 잘 드러낸다. 기껏 모셔온 마케팅 총책임자에게 넌 여기 안 맞다면서, 울면서 전화하는 등등... 저자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잡스 추켜세우려 역 디스하는 장면들이 재밌다. 잡스는 능력 없었으면 솔직히 미친 개찌질이였을 듯. ㅋㅋㅋ

5. 그럼에도 잡스가 현명했던 것은, 자신이 지혜를 구하기 위한 누군가... 즉, 글쓴이 제이 엘리엇에게 있어서는 솔직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너무하다 싶은 부분도 종종 있는데, 찌질이의 어리광 수준의 메시지를 잘 받아준 저자는 정말 잡스가 모실만한 사람이었다 생각.

6. 서비스건 제품이건 결국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잡스는 그것에 미쳤고, 팀 쿡은 그것을 잘 이어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팀 쿡은 정말 대단한 사람, 어떤 점에서는 잡스 이상이라 생각한다. 개척자와 사업가의 차이랄까. 게이찡 레알 위대함. ㅋㅋ

7. 요즘 힘든 일이 많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동료들이 정말 뛰어난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함께 하는 한, 망할 상황이라도 한계까지 계속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잡스 일화 보면 진짜 미친 거 많다. 자기 시계 디자인 알아보는 사람에게 200만원 하는 그 시계 주면서 같이 일하자 하는 등(...)

7-1. 워즈니악도 비슷하게 미친 놈이긴 했는데, IPO 하니까 복도에서 만나는 직원마다 100달러 주식 건내줬다 함. ㅋㅋㅋ

8. 제목이 찌라시 같지만, 한국식 찌라시 제목이 더욱 본질을 잘 드러내는 책이다. 잡스의 카리스마는 독불장군식 장인의 카리스마다. 독불장군은 몰라도 주변에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은 모두 이 DNA를 가지고 있었다. 원맨쇼가 아닌, 길을 만들어갈 동료와 함께 하는.

9. 내 주변에 능력자는 너무 많고, 또 해드리는 것도 없는 주제에 뻔뻔스래 조언을 얻고 있다. 그분들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잡스가 제이 엘리엇 대하듯 모시는 분이 있다. 그리고 이 분을 알게 된 것은 내 인생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 때문인데 리뷰를 참조. http://inuit.co.kr/2318

10. 아무튼 안티 잡스, 안티 애플 쪽이지만 이 책은 추천한다. 다른 경영 서적에 비하면 의외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메시지도 간결하다. 하나, 좋은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 둘, 그 인재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셋, 그것이 업의 본질이다.

11. Pirates, not N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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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전략가입니까당신은 전략가입니까

Posted at 2015.08.16 11:09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0. "주니어는 내 소개 보고 괜히 읽는다고 덤비다, 의외의 밋밋함에 휘둘리고, 애먼 잠과 싸우지 말라. 하지만, 매니저 이상이나 임원, 또는 조직의 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열 일 제치고 읽어라. 내 말과 소개에 고마움을 갖게 될 것이다." - 한 블로그의 소개글 말미


1. "당신의 기업이 내일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 한마디로 충분한, 정말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 책이었다. 작건 크건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이라면 더없이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지만, 몇 마디.


2. 논리학이 연역과 귀납을 두 축으로 하듯, 조직도 목적과 실행이라는 축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스티븐 코비의 가치 중심 설계와 GTD 프로세스의 차이라 볼 수 있다.


3. 이 책은 목적을 중심으로 마치 조각을 맞추듯 차별적 우위를 가지게끔 실행을 설계하는 관점으로 전략을 정의한다. 나는 대단히 실행에 치우쳐 있는 입장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큰 반성을 하게 됐다. 목적 없는 방향이란 잘 된다 해도 공허하기 쉽다.


4. 그래서 목적은 중요하다. 목적이란 단순한 꿈이나 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선언해야 한다. 고정된 것이 아닌 변화에 따른 유용성마저 있어야 한다. 리더만의 것이 아니라 조직원이 공유해야 하고 참여해야 한다. 


5. 그렇기에 좋은 목적을 정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좋은 목적을 정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에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6. 그리고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전략가다. 모든 것은 아웃소싱할 수 있지만, 전략만큼은 아웃소싱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에서 그러하듯, 전략의 본질은 목적이다. 그것을 남에게 빼앗긴다면 이미 조직은 당신의 손을 떠난 것이다. 


7. 처지나 경험에 따라 뻔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조직의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면 정말 묵직한 메시지가 와닿을 것이다. "와, 나 진짜 많이 컸다. ㅋㅋㅋ"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2시간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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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 현재의 충격그들의 시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 현재의 충격

Posted at 2015.04.19 11:05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최근 매우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현재의 충격>에 이런 글이 있다. 한국의 높으신 분들이 참조해야 할 듯. 이하는 적당히 편집한 내용.


월가 점령 운동은 서사 이후 최초의 진정한 정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인권 시위나 노동자 시위 혹은 오바마 선거 유세와 달리 점령 운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몇 가지 짭은 구호로 그들의 생각을 축약할 수도 없으며,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어떤 종결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으므로 초점이나 구심점을 잡기 어렵다. 


이 운동은 광범위한 불평과 요구와 목적의식을 다 끌어안을 셈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환경, 노동 조건, 주택 정책, 부패한 정부, 실업, 부의 편중 문제 등. 하지만 이 많은 문제들은 서로 관련이 있다. 피해를 입는 사람이 다르고 양상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시스템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일한 핵심 문제로 인해 빚어지는 온갖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에서 서로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뉴스 기자들이 월가 점령 운동을 배은망덕하고 게으른 정신병자 세대가 아무렇게나 내뱉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은행 쪽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과 전통적인 민주당원들 모두를 를 얹짢게 하는 것은 월가 점령 운동 측이 기존 정치 활동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자신들의 목적을 표명하거나 주장을 밝히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자리에 앉혀놓으면 셔터를 내려버리는 기존의 정치 선거 운동과 달리, 월가 점령 운동은 포물선을 그리는 전통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안에 대한 논쟁에서 이긴 다음 할 일이 다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탈중심화된 네트워크 문화의 산물로서 승리보다 지속성에 관심을 두는 운동이다. 하나를 꿰뚫는 것보다 그것을 감싸 안는 운동이다. 승점을 올리기보다 합의를 모색하는 운동이다. 책보다 인터넷을 닮은 운동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이기면 끝'인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물들이는 가운데 퍼져 나가는 그리고 답을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사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월가 점령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세운 도시 생존 캠프는 본보기인 동시에 의회이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장 혹은 낡은 아이디어의 부활 장소에 가깝아. 적을 분명히 상정하고 특별한 해결책을 위해 투쟁하는 기존 시위와 달리,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중요하다 싶은 걸 따지다 속내가 서로 다른 걸 확인하곤 한다. 그런식으로 계속 이 운동에 참여한다.


이는 프랑스 국민의회 이후, 이분법에 바탕을 둔 승자독식의 정치적 운영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다. 이런 방식은 세월아 네월아 공원에 앉아 소일거리 하는 사람에겐 잘 맞는 방식이겠지만, 결과를 당장 봐야 하는 사람에겐 고문과 다름 없다.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현재는 참으로 긴 시간이 될 것이다. 점령 운동의 분위기와 접근법은 정치 운동의 그것이라기보다 인생의 가장 큰 휴지부 가운데 하나인 대학 생활의 그것과 가깝다.


그들의 접근법은 거추장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서사 이후의 풍경이 자아내는 가치들과 잘 어울린다. 점령 운동은 돈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벌이는 제로섬의 폐쇄적 게임 대신에 넉넉한 상호 부조에 바탕한 지속 가능한 개방적 게임에 관심을 둔다. 기존의 정치적 서사에서 보자면 이는 공산주의 진영에서나 함직한 소리다.


하지만 점령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동등계층 간의 인지상정이 발현된 것이다. 누구 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많은 이가 같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과 같은 놀이다. 많은 사람이 참가하면 할수록 그리고 게임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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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지만 점령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동등계층 간의 인지상정이 발현된 것이다. 누구 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많은 이가 같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과 같은 놀이다. 많은 사람이 참가하면 할수록 그리고 게임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놀이다.
  2. Aleksii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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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메이저리그, 진짜 야구진짜 메이저리그, 진짜 야구

Posted at 2015.03.31 23:12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직장 초년병 시절 이사님께 그런 말을 했다. 


"컨퍼런스나 이런 데 나오는 말들 뻔한 걸로 약 파는 거 아닌가요?"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넌 저 사람들만큼 성실하게 해본 적 있냐? 저런 거 아무나 못해. 밥그릇 가지고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7년차가 돼서 나도 비슷한 입장에 처해보니 그렇더라. 발표자료 만드느라 며칠을 밤 새고, 같은 발표를 할 때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용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우습지만 링에 서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프로야구 선수에 관해 쉽게 이야기한다. 멘탈이 글러먹었고, 노력을 안 하고, 프로로서의 자격도 없다고.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제대로 메시지를 던져준다. 야구장은 전장이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디테일한 싸움이 펼쳐진다. 포수는 하나라도 더 스트라이크를 얻기 위해 심판의 환심을 사고, 주자는 조금이라도 그라운드를 망가뜨리며 불규칙 바운드를 유도하고, 유물로 알려진 스핏볼을 만들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한다. 병살을 막기 위해 스파이크를 들고 그 댓가로 빈볼을 얻어 맞는다. 그래도 야수도, 타자도, 투수도 쫄아서는 안 된다. 150km/h로 날아오는 공 앞에서.


제이슨 켄달이 원래 좀 정상인은 아니라는데 실제로 꼰대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투구수는 중요하지 않고 부상을 달고 있어도 계속 뛰어야 한다고. 이는 과학화된 현대 야구의 원칙에 완전히 위배된다. 하지만 선수들은 실제로 그렇게 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 한 투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안 아프고 공 던지는 투수가 어디 있냐"고. 야구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가 그렇다. 비록 관리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음에도.


아무튼 20년 가까이 포수를 맡은 이의 책답게 이 책은 정말 생동감이 넘친다. 실제 야구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야구를 좀 더 재미있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딱이랄까. '야구란 무엇인가'가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한다면, 이 책은 야구선수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해준다. 미생을 언급하며 직장을 전쟁터라 하지만, 실제 하루하루를 자기 생존을 걸고 싸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내 스타일 책이다. 신나게 볼 수 있다. 기자가 다 써준 것 같은데, 켄달의 똘기에 기자의 필력이 합쳐지니 아주 일품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책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용으로 별 4개에 필력과 내 스타일이라 별 1개 추가. 이창섭 기자가 바쁜 와중에 번역했나 했더니 동명이인의 번역가가 번역. 문장 하나하나가 맛깔나는 게 번역의 질은 아주 좋은 것 같다. 오역이면 뭐 내 알 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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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고르세요 : 고르긴 뭘 골라(...)마음대로 고르세요 : 고르긴 뭘 골라(...)

Posted at 2012.11.21 00:29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제목은 무슨 룸에서나 나올법한 문구인데(...) 


남자라면 이 정도 초이스는...



실제 내용은 그 반대다. 원제는 The myth of choice. 한마디로 우리는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존나 휘둘린다는 거다. 어디에 휘둘리냐... 뇌, 문화, 권위, 시장. 일단 뇌가 알아서 반응하고, 문화권에 따라 그 규율을 지키려 들고, 권위 앞에 무력하고, 시장은 합리적이라지만 조또 합리적이지 않고(...)


그래서 결론은? '선택'에 맡겼다가는 망합니다. 공화당식 '개인의 책임'론으로 가면 망했어요... 가 뜹니다. 우리 모두가 좀 부족한 존재이고 실수도 하고 비이성적이란 걸 인정하자는 거. 그러니까 좀 겸손하게 우리가 부족한 걸 인정하고 다른 사람 입장서 생각 좀 해보고... 이런 도덕적으로 끝은 아니고 진짜 '공공선'을 담보할 수 있는 자유, '합리적 선택'을 위한 일정 수준의 제도,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거. (의료보험을 생각하라) 이걸 위해 선택하고, 선택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별 내용 없는 것 같다고? ㅇㅇ 별 내용 없다. 보는 책들이 어찌 읽다보면 근거가 죄다 행동경제학에 뇌과학류다보니 항상 실험 지겹도록 나오고 결론은 짧은 편인듯. 한국 사회는 요상한 게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식 자유주의를 수입하면서 정작 그것이 법적, 제도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권위주의(?)의 잔재가 많아서... 역으로 진보 쪽에서는 너무 막 지르니까 이게 사람들 인상에 좋지 않고. 민주당이 그 중간점을 잘 잡아주면 좋을텐데 현실은 (생략)


아무튼 이 책의 결론은 Always be humble이 되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롭지 않고, 때로는 내가 어떤 이유로 선택을 내리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사람들의 자유를 냅두면 공공선을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을 적당히 손볼 수 있을테니. 여하튼 겸손하면 디디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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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정인물
    으아니 디디바오 소스를 여기서 쓰시다니! 앙대여...내꺼임..... 올웨이즈 비 험블 ..존나 디디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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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유혹 : 패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패션의 유혹 : 패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osted at 2012.11.18 16:34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패션 좌파가 된 후 패션에 대해 이런저런 책과 논문을 좀 봤다. 그러다 보게 된 게 ‘패션의 유혹’. 원제는 After a Fashion인데 어차피 이쪽이나 저쪽이나 책 내용과 별 관련은 없다(…) 그보다는 ‘패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이론 흐름을 정리한 책. 아래는 요약과 의견이 맘대로 섞여 있으니 알아서 분간해서 보시길. 1995년 작이라 약간 시대에 떨어진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 정도면 꽤 알찬 책이다.




저자는 주로 토스타인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패션은 존나 우리가 있다는 걸 표현하는 거야!) 와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화의 과정이야!) 에 의존해서 펼쳐나간다. 롤랑 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와 기호도 자주 써먹고, 말도 안되는 정신분석학도 (정신분석학 전체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종종 인용한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양반과 이론들이 등장하는데 여백이 부족해 대충 넘어가겠다.


패션은 이제 신체 그 자체다. 열대지방이 아니라면 드러나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안여돼라고 해도 패션을 통해서 자신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즉 패션은 언어이자 문화다. 때문에 패션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일부는 사회를 리드하기까지 한다. 베네똥의 광고와 오뜨 쿠튀르에서 등장하는 전복적 메시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패션은 두 가지 축이라고 본다. 첫번째는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간의 대립이다. 여기에는 안티패션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 없다. 오히려 안티패션이야말로 그 어떤 형태의 패션보다 소속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니까. 또 하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지만, 되려 그 욕구에 갇히게 하는 대립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갈망하면서도 그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더럽게 복잡하고 빠른 끊임없는 순환이 패션이라 할 수 있겠다. 원시사회에야 곧휴 하나 가리고 얼굴에 문신하면 끝이었으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껴입게 되고 다양한 자기 표현이 가능해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벗고 다니자(…)


벗으라면 벗겠어요(...)



세상이 복잡하니 스타일이 가지는 의미도 다양해졌고, 또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패션은 상류층으로부터 적하효과(trickle down)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멋쟁이(dandy) 스타일의 기원은 호화로운 귀족계층, 과시소비의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아마 패션에 문화자본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수준이라면 중산층이 향유하는 포르타 포르테 수준일 거다. 한국 상황이라면 적당히 먹고 살만한 집이 백화점서 ‘무난한’ 옷을 사는 것?


하지만 이러한 의복의 약식이 조금씩 정해지는 과정 속에서도, 패션의 발전은 저항의 연속에서 비롯되었다. 남성 중심의 오뜨 쿠튀르 문화에 끼어든 코코 샤넬이 그러했고, 당시로는 제대로 미친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그렇다. 음악과 함께 발을 맞춰 온 락, 펑크, 힙합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지금은 비록 모든 저항문화가 흡수됐다고 여겨지는 판이다(...) 자본주의 만세!!!


그런데 너무 발전하다보니 새로운 게 나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건 도쿄 패션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스타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아예 이해가 더럽게 어려워졌다. 각종 영상물로 인간의 시각이 더럽게 발달하며 의복의 색은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디테일해졌다. 아이템과 스타일의 의미는 각 집단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이쯤 되면 패션의 기호, 코드, 의미를 아는 게 더 신기한 놈이다.


그대는 이 아방가르드한 코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소비사회가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당연한 건데 동시에 피로를 주기도 한다. 먹고 살기 바쁜 한국 사회에서 패션의 코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했고 패션은 때로 즐거움보다 피로감을 주는 것 같다. 아무튼 한국도 점점 의류 소비가 꽤 다양해지고 있다. 노스페이스, 유니클로와 같은 현상은 여전하지만 10년 전 드라마와는 격세지감이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한국도 길거리가 형형색색의 옷들로 좀 알록달록해지지 않을지.


아무튼 꽤나 재미있게 본 책.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어 할텐데…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워낙 여기저기서 끌고 들어오는 게 많아서 사회학, 인류학, 기호학의 존나 기초 정도는 알고 봐야 편할 책이다. 


Ps. 여자가 왜 남자보다 옷에 신경 많이 쓰는지 막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이 재미있다. 원래 근대 이전 서양에서는 남자들이 더 옷이 화려했다고 함. 그런데 부르주아 시대로 넘어가며 남자는 돈으로 승부하고, 마누라는 놀 수 있는 여유를 얻음. 이 과정에서 여성이 액세서리화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백화점이 생기면서 부르주아 여성을 상대로 아주 제대로 소비교육을 시켰다고 함. 



아무튼 패션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영혼의 해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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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트라우마 : 달러, 위안, 유로 전쟁의 승자는?화폐 트라우마 : 달러, 위안, 유로 전쟁의 승자는?

Posted at 2012.11.18 00:47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간만에 별 다섯 개에 하나쯤 더 주고 싶은 책이다. 각국의 통화, 화폐 정책에 대해 역사적으로 차근차근 잘 설명해준다. 원제는 weltkrieg der Währung. 대충 화폐 세계대전 정도 된다. 쌍콤하게 별 가슴 좀 보고 시작하자.




이 책은 현재 3개의 주요 통화인 달러, 위안, 유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 화폐에는 각각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한다. 달러는 대공황 트라우마로 인해 절대 긴축정책을 취하지 않는다. 위안화는 화폐혼란을 꽤나 겪었기에 최대한 안전하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유로는 독일 때문에 유럽이 개판난 시기가 꽤 있기에 독일 견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가 지금까지도 부딪혀 오는 것이고.


이들 3개 통화의 역사를 꽤나 찰지게 설명한다. 달러와 위안이야 다른 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독일 아저씨가 써서 그런지 유로 쪽이 가장 흥미롭게 잘 쓰여져 있다. 그래서 이 양반이 보는 유로의 미래는? 대단히 암울하다. 달러야 될때까지 그냥 찍어내는 거고, 적절한 시기에 위안화에 기축통화를 이양하거나 아예 전세계에 달러 기반의 통화 통합을 꾀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 전망한다. 


하지만 유로는 꽤나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3가지다. 우선 PIGS의 긴축재정이다. 하지만 성장 없는 긴축재정은 그들을 구할 수 없다. 97년 경제위기에서 아시아가 벗어난 방법은 통화가치 절하와 경제성장의 조합이지만 유로화에 얽매어 통화가치 절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하나는 유로라는 화폐공동체 속에서 금융위기 지역으로 이익을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로권이 그다지 정치적 단결력이 강하지 않고, 지금도 충분히 퍼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 경제정부 설립이다. 이가 이뤄진다면 미국처럼 연방국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권과 국민들로부터 컨센서스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유럽은 생각보다 크고 아름답다 복잡하다. 



백인 피 반만 물려받은 97년생이 이정도...



아무튼 그래서 향후 유로존은 어떻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단다. 그리스 탈퇴. 이 경우 그리스는 망하기 쉽다. 유로를 버리고 드라크마로 가는 순간 화폐가치 하락이 엄청나다. 그런데 빚을 갚으라고? 동아시아처럼 성장이 쉬워 보이지도 않는다. 행여나 유로존 탈퇴 정보가 새어 나가면 그 순간 이미 드라크마는 끝장이다. 다음은 독일의 유로존 탈퇴. 그나마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더 이상 독일의 강한 화폐에 묶일 이유가 없으니 그간 독일 물건 열심히 빚 당겨서 사던 국가들은 빚놀이가 불가능하다. 다만 독일이 마르크 재도입으로 인한 통화가치 절상을 감내할지는 알 수 없다. 독일은 수출국이기 때문. 마지막으로 프랑블록, 마르크블록 분리다. 프랑스는 항상 강한 화폐를 원했으니 반길지도 모른다. 다만 이 경우 국제정치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미지수.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문제는 '달러'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 달러를 받을 준비는 누구도 되어있지 않다. 달러를 받기 위해서는 성장과 안정이 담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세계 경제에 그 두 마리 토끼를 바라는 건 욕심으로 보인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 이머징마켓 중 원자재 쪽 포트폴리오가 강한 통화를 눈여겨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동의. 물론 이래봐야 많이는 못벌겠지만 은행 이자보다야 벌겠지(...) 


뭔가 딱딱한 글이 된 것 같은데 술마셔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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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더숲) : 블록버스터가 아닌 니치버스터로?니치 (더숲) : 블록버스터가 아닌 니치버스터로?

Posted at 2012.11.13 00:54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한국시장에 참 드물게도 원제의 부제까지 그대로 옮긴 책(...) 원제는 NICHE : Why the market no longer favours the mainstream.


읽고 나서도 꽤나 아리송한 책이다. 재미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별 도움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느낌. 


 

리승환은 친절하게 책값까지 기입해 드립니다.



책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반부는 어떻게 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정 이상의 소비력이 생긴 후 (대공황 회복 이후) 옛날 옛적에는 중간 소비층을 공략하면 그게 바로 블록버스터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러했고, 포드의 자동차가 그러했다. 이는 GM 등에서 보여주듯 소득에 따른 구분을 통해 조금씩 차별화가 이뤄진다. 


이러다 히피, 록, 펑크 등 반문화 운동을 통해 조금씩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오자 기업은 재빠르게 반문화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기업은 이들을 후원하고 이들을 인수하고 이들을 자기 휘하에 두기 시작한다. 이렇게 서로간의 아름다운 화해로 다시 기업이 중간소비자라는 매스를 잡는가 했는데,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다양성을 선보인다. 이제 기업은, 브랜드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즐거운 예시가 가득한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 저자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니치’버스터를 그 해답으로 내세운다. 인구통계가 아닌 관심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스스로 애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이제 중간층은 무너지고 개개인은 특정 분야에 열성적인 매니아가 된다. 너무 여러 타겟을 신경쓰지 말고 특정 카테고리에 힘을 집중해 열성적인 사랑을 받으라 권한다.


 열성적인 사랑의 옥발기



그런데 이 논리들이 별로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성공사례만 죽죽 읊는데 대부분의 니치는 그냥 망한다(…) HBO, 농촌 미팅 사이트, 몰스킨, 저예산 공포영화, 약간 찌라시스러운 미디어…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아마 이와 유사하게 실패한 모델 역시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누가 하느냐’와 ‘운’이 중요할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냥 ‘의외로’는 빼자. 심지어 애플까지 언급하니(…) 한마디로 너무 끼워 맞추는 느낌.


또 위의 브랜드들이 니치로 컸다고 인정해도 브랜드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브랜드의 힘은 막강하다. 책 초반부에 맛이 간 브랜드를 몇 언급한다. GAP, GM, kraft 등이다. 그런데 얘네가 맛이 간 게 소비를 다양화하지 못했다는 건 이야기가 잘 먹히지 않는다. GAP에 가면 웬만한 건 다 있고, 세컨 브랜드도 있다. GM이 비록 돈 아낀답시고 모델들을 비슷하게 찍기는 했지만 그보다 미국 제조업의 문제로 봐야할테고, kraft는 뭐 쌍 모르겠고(…)


사실 위의 문제는 두 가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나름 문화 사이즈가 풍성해지며 소비할 게 너무 많다는 것. 예로 예전에는 문화 소비의 50%가 영화에 쓰였다고 하자. 이제는 영화도 보고, 집에서 다운도 받고, 음악도 사서 듣고, 게임도 하고, 커피숍도 가고, 데이트하면 밥도 좀 맛있는 거 먹고, 쎼… 쎾쓰… 하기까지 온갖 곳으로 돈이 다 퍼진다. 즉 모두가 모두의 경쟁자인데 누구라고 잘 버티겠나(…) 삼성 같은 애들도 엄청 변하면서 살아온 거고. 


이것도 니치마켓입니다(…)



또 하나? 미디어가 많아지고, 인터넷이 빨라지면서 트렌드 변화가 너무 빠른 것. 예로 이 책 초장에 2000년대 초반 GAP이 맛이 가고 애버크롬비가 뜨고 있다고 하는데, 2000년대 말 들어서 이미 애버크롬비가 맛이 가고 있다(…) 트렌드의 빠른 변화는 모든 기업에 항시적 위험 요인이다. 니치 기업이라고 안심할 게 없다. 해당 기업의 사이즈가 크면 리스크 분산이 안된만큼 더 큰 위험 요인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너무 악평을 해댄 것 같다. 이 책 나름 재밌다(…) 다만 신나게 달리다가 좀 지나친 일반화로 맥이 빠져버리는 삘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Niche가 아닐지(…) 일단 많이 팔아먹은 듯하니(…)


그리고 어쨌든 니치는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정보가 빠르게 돌아다니고,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할 수 있는 시대에 온갖 니치는 생성되기 마련일테니. 세상 인구가 70억이니 인터넷에서 나랑 마음 맞는 또라이 만나면 장사라도 한 번 해보는 게 어떨지. 아… 제가 요즘 쇼핑몰 솔루션 회사에 입사했는데요. 메이크샵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


응?


여튼 뭔가 기대했는데 이대로 묶여만 있다 끝난 필의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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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왜 우리는 나쁜짓을 하는가?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왜 우리는 나쁜짓을 하는가?

Posted at 2012.11.11 23:03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원제는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표지에 코쟁이 새끼는 코가 크니까 거시기도 클 것 같다.




블로그 주인장은 막되먹은 놈이다. 그나마 먹고 살려고 막살지는 않지만(...) 나쁜짓하기에는 너무 멍청하고, 착하게 살기에는 능력이 없어서 대충 살고 있다.


이런 찐따같은 느낌이랄까(...)



인간은 왜 좋은 일을 할까? 왜 나쁜 일을 할까?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경제학적인 '합리성'을 제시한다. 현대사회는 법과 도덕을 지키는 이에게 incentive를 제공하고, 어기는 이에게 penalty를 부가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범죄와 부정행위에 적용하면 합리적 범죄의 단순 모델 (SMORC ; 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 이 도출된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행동경제학 연구자인 저자의 말에 따르면 (죄다 실증적 연구를 거쳤다!) 부정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돈의 액수와 발각될 가능성은 부정행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부정행위에 영향을 주는 요인, 주지 않는 요인은 아래와 같다. 


1. 부정행위 증가 요인 

- 합리화 능력, 창의성 : 이 둘이 엮이는데 창의성이 뛰어날수록 합리화를 잘하기 때문. 지능은 별 관련이 없다. 예술계 도덕성이 개판 소리 나오는 건 창의성 때문(...)

- 이익충돌 : 말 그대로 도구적 합리성,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으로 가려 함. 신기하게 친한 사람일수록 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손쉽게 배팅한다고 함(...)

- 일단 저지른 부정행위 : 개씨발망했어효과 (실제 뭐라 책에서 썼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What The Fuck효과) 가 생기면, 이왕 망한 거 계속 저지르게 된다(...)

- 고갈 : 피곤하거나 지치면 더 부정행위를 잘함.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당히 피로를 풀어주거나, 아예 작게나마 뻘짓을 터뜨려주는 것도 도움이 됨(...)

- 나의 부정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 : 친하지 않아도 자기 소속 집단에 도움이 된다면 부정행위를 쉽게 함. 친하면 더욱 심해지고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할 때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남.

- 다른 사람의 부정행위 목격 : 남이 하면 덩달아 하게되는 깨진 유리창 효과. 단 상대방이 나와 완전 다른 집단에 속해 있으면 되려 도덕적 선택을 하게 됨.


2. 부정행위 감소 요인

- 서약, 서명, 도덕적 상기자, 감시


보다시피 부정행위 증가 요인은 더럽게 많은데, 감소 요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린 예전에 망했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이 사회는 썩었어...



... 라고 해도 나름 희망적인 책이다. 우선 사람들이 생각보다 부정행위를 크게 저지르지 않는다. 대신 일상적으로 찔끔찔끔(...) 저지른다. 그리고 행동경제학답게 나름 nudge, 그러니까 쿡 찌르는듯한 작은 제도적 보완으로 많은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시험치기 전 서약서 하나 쓰는 것도 생각보다 부정행위를 잘 막는다. 또 고해성사같은 의식도 도덕성 회복에 도움이 되고. 중요한 건 그런 부분 하나하나를 발견하고 고쳐나가려는 우리의 의지 ^^ 가 아닐지.


그리고 나름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보통 내 수준이다. 나쁜짓을 종종 저지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못한다. 능력이 없기도 하고(...) 겁도 많은지라. 가장 큰 핵심은 '자기합리화'와 '집단사고'인 것 같다. 이게 발동하기 시작하면 깨진 유리창 효과까지 발동되어서 아주 막장으로 들어간다. 정치권을 떠올려보면 대충 OK?


특히 공명심, 명예욕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다 알고, 옳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끝도 없이 무간지옥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보통 뭔가 위대한 가치를 외치는 사람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죄의식조차 없는 섬뜩함을 꽤나 자주 목격봐서일까. 뭔 소린지 궁금하면 트위터의 넘치는 병신들을 관찰해 봐라. 유명한 인간일수록 인정욕에 가득찬 치졸한 소인배에 불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테니.


딱히 공동체주의자는 아니지만, 개개인은 공동체의 도덕, 윤리에 대해 '사회적 기준'을 새길 필요가 (최소한 이해할 필요는) 있다. 그게 다수에게 상식이고 암묵적인 (혹은 명시적인) 사회의 룰임을 받아들이면 cheating에 대한 기준은 확실히 생기기 때문. 이를 확실히하지 않으면 - 대부분 인정욕이 강하거나 책임감 없이 이것저것 벌리는 호사가들이 그렇듯 - 그냥 '개인적 기준'으로 윤리를 제단하며 합리화하며 넘어가기 쉽다. 조금은 사회적 기준을 머리 속에 넣는 게 어떨지.


뭐, 그 바닥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지혜라면 그렇겠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는 보통이 아니다. 하긴 하루에만 지하철에서 저 정도의 민폐를 볼 수 있으니, 어지간한 민폐는 민폐로 안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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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교육특강 : 교육문제의 현실을 잘 짚고 있는 책이범의 교육특강 : 교육문제의 현실을 잘 짚고 있는 책

Posted at 2012.11.11 15:51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얼마 전 백수에서 학원장으로 전직한 존경하는 벗 프리소퍼옹과 나눴던 이야기 중 일부다. 


리 : 이범 책을 보고 있는데, 다른 책과는 비교가 안되게 대한민국 교육을 잘 읽고 있더군.


프 :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 학원을 안해봐서 그렇소. 대한민국 교육을 알려면 사교육을 알아야 하오.


리 : 그런데 요즘 서울대 사대 졸업생보다 서울지역 교사 충원 수가 적소. 그렇게 교사 질이 높은데 왜 학원을 가오?


프 : 그건 대한민국 공교육 목적이 제대로 서지 않은지라;;;



참고로 프리소퍼 옹은 이 문제를 통해 전국구 유명인이 된 국어교사다.



프리소퍼옹의 말마따나 사교육을 겪은 이범은 확실히 다르다. 진영논리를 떠나 현실적이고 적확한 비판을 가한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교원평가 법안은 교육계의 주요한 두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절충된 안이다. 한 집단은 교총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관료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핵심이 되는 승진제도가 침해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전교조는 교원평가가 교원에 대한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될 것을 우려하였다. (...) 전교조는 왜 그랬을까? 물론 근평과 성과급평가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교원평가를 새로 추가하는 것이 기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교원평가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 승진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을 것이다. (...) 교원평가에 대한 전교조의 수세적이고 퇴행적이 대응은, 합법노조로 변신한 이후 또 다른 관료조직이 되어버린 전교조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교육의 양대 문제는 '선발경쟁'과 '학교관료화'이다. (...) 선발경쟁과 학교관료화는 서로 얽혀있긴 하지만, 분명히 각기 독립적인 원인과 작동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 이 점에 있어서 기존의 좌파와 우파의 대안은 모두 비판받아야 한다. 좌파는 습관적으로 한국 교육문제의 원인을 '선발경쟁'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만약 내일 갑자기 우리나라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는 혁명적인 개혁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학교가 갑자기 다양한 교육을 시작하고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잘 책임지게 될 것인가? (p. 103)


우파의 대안은 더욱 황당하다. 치열한 선발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은 내버려둔 채, '공교육을 강화해야 하교육을 잡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외친다. 물론 공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는 있다. (...) 개혁 프로그램들을 보면 현 정부는 아직 공교육을 어떤 식으로 리모델링해야 '무책임 교육'을 개선하고 학교교육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공교육 강화'라는 주장이 가지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공교육을 강화하여 모든 학생들의 점수가 10점씩 올라가도록 만들어도, 등수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p.104)


2004년에 정부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 정부의 기대와 반대로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이 번창했다. 결국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 소통의 문제는 청와대와 촛불시위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힘과 조직을 가진 교육관료와 교사들에 비해, 뿔뿔이 흩어져있는 학생, 학부모들과는 아무도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 학부모들과 거의 소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육 정책을 주물러왔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이전 정부들 사이에는 사실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p. 141)


평준화의 첫 번째 의미인 '무시험 학교배정'과 두 번째 의미인 '획일적 교육'은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매우 다른 의미가 하나의 용어에 묶여 있는 것이다. 대체로 좌파는 '무시험 학교배정'으로서의 평준화를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획일적 교육'의 문제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우파는 '획일적 교육'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무시험 학교배정'을 도매금으로 넘겨버린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이 지속되어서는 평준화 관련 논의가 단 한 발도 진전할 수 없다. (p. 156)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실현되면 이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는 명문 사립대들이 별도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등록금 비싼 일류 사립대, 등록금 싼 이류 국립대' 체제로 이원화되어, 일류 사립대 중심으로 학벌주의와 선발경쟁이 여전히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 최소한의 제어잔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성립되는 순간 사립 명문대학들은 '공공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더욱 강하게 치달으면서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p. 226)



베껴 쓰느라 힘들었으니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렇다면 이범이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크게 둘로 나누면 학생 선발방식 개혁과 대학체제 개혁이 있다. 이를 통해 공공성의 증진과 사교육비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몇 가지 대안을 나열해본다.


입시 간소화 : 현재의 수능 and 논술 and 내신을 최소한 or 로만 바꿔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함.


수능 과목 변화 : 현재의 수능 필수과목 수를 줄이고 선택과목 수를 늘려서 다양한 학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함. 


중고교과정 변화 : 중고교 과정을 통합해서 학점제로 바꾸고, 온라인 학점이수제도 도입해야 함. 요러면서 특목고 폐지.


중고교 다양성 보장 : 몇몇 반은 디자인 반이라거나 등등 각 학교별 특성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 교육 다양성을 높임.


교원 대우 변화 : 교원을 충원하고 현재의 잡무에서 벗어나게 해 교육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립대 재정 투입 : 사립대 재정 투입으로 공영화를 꾀하여, 입시 부분을 관리하는 대신 다른 부분의 대학 자율성은 보장해야 함.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 타파 : 기존에 학원에 밀리는 건 주입식 교육에서 공교육이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 탐구, 토론, 논술 수업을 적극 반영해야.


승진 및 평가제도 혁신 : 교장이 말 잘 듣는 놈 줄세우기를 벗어나, 교육활동 지원 책임자로 구실하게 해야. 이를 위해 교장자격증제도를 없애고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게 함. 


협동의 교육으로 : 핀란드는 이미 협동형 교육을 제시하고 있음. 경쟁형 교육은 소모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함.



손이 아프니 다시 한 번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자.



아무튼 딱히 더 덧붙일 말이 없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 아주 적절하게 비판한 책이라고 생각. 굳이 아쉬운 지점이라면 현재 교육 문제가 노동 문제와 큰 접점이 있는데,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은 정도. 뭐, 시중에 교육에 대해 논한 책 중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 책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매우 잘 캐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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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별
    젠장 중간에 뭐 이상한거 두개만 없었어도 (...)
  2. 헛소리
    헛소리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교육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

    학벌을 선호하고 그에 따른 소득이 분배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임..

    선발시스템을 어떻게 바뀌든.. 1등부터 100등까지 좋은대학에 간다는 기준은 달라질리가 없으니..

    그 등수안에 들기 위해서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할수 밖에 없음.

    학교공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시켜도.. 모든 학생들이 공교육의 혜택을 받으므로.. 그 사람들을 이길려면

    당연히 나는 과외 받아야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게 됨... 이건 철저하게 내가 남을 밟는 게임이지.

    내 성적이 어느정도냐는 절대평가가 아니니까..

    막말로. 모든 학생들이 더하기 빼기 밖에 못해도 나는 곱셈할줄 알면.. 1류대학교 가는거고. 그 학생부모나 학생 자신은 아무런 불만이 없음..

    어차피 궁극적인 해결책은 학생들이 대학에 안가고 대신에 공장에 가서 선반돌리고..자동차 조립하고 배만들고.. 목수되고. 등등..

    기술이 되도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고 괜찮은 월급 다들 받고 잘살수 있으면 됨..

    대학에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가면 되고...

    누구나 알지만 사회를 이런식으로 구조를 바꾸기는 힘드니까 그렇지..
  3. 헛소리
    그리고 교육의 다양성을 좌파들이 무시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헛소리임.

    많은 대안학교들 세우는 사람들은 좌파임.ㅋㅋㅋ

    미국에서도 차터스 스쿨이라고 해서. 이런 대안학교 만드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좌파임..

    우파들이야 말로 선택권이 없지.

    오직 선택할수 있는건 공부잘하는 학교, 공부 못하는 학교뿐이니까. 그사람들 세계관에서는..
  4. 헛소리
    학교가 2원화 될거라는건 꽤 설득력 있는 예상임..

    돈은 좀 없는데 공부좀 잘하는 상위층은.. 국립대 갈거고..

    아주 공부 잘하고 돈좀 있는 애들은 인기 사립대로 몰릴테고..

    다만 우리나라 사립대 지원이 터무니 없이 낮은 수준이므로..

    사립대 지원을 늘려서 공교육 강화시키는건 긍정적일수 있음..

    물론 일류 사립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연히 국립대도 아닌 어정쩡한 학교들은 다 퇴출당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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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간극똑똑한 바보들 :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간극

Posted at 2012.11.04 19:09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원제는 The Republican Brain. 그러니까 공화당 지지자의 뇌… 정도가 되겠다. 팀장님과 정신없이 소주를 까다가 대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때 팀장님이 추천한 책.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 자체가 다르다는 게 이 책이 하는 소리다. 편도체는 보수가 더 민감하고 (위험에 민감) 전대상피질은 진보가 더 발달해 있어서 오류 검증과 대안 모색이 쉬움. 일단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구분 자체가 더럽게 애매하니 정리하자. 저자는 보수주의자를 두 가지로 정리한단다. ‘변화에 대한 저항’과 ‘평등에 대한 저항’으로. 진보주의자는 이해, 변화, 포용 등을 ‘요구’하면서,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회피한다. 아무튼 이렇게 다르니 친해질 리가 없다.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보수는 진보보다 성실하고, 보수보다 진보가 훨씬 더 개방적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 주장을 바꾼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학계를 진보주의자들이 장악하는 건 이러한 이유. 특히 과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이에 반해 보수주의자들은 더럽게 자기 신념을 안 바꾼다. 특히 ‘똑똑한’, ‘많이 배운’ 보수일수록 자기 의견을 디럽게 안 바꾼다. 보수주의자 중 권위주의자로 꼽히는 계층은 거의 꼴통 수준(…)

 

전반적으로 책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냉랭하다. 사실이 그러니까. 심지어 진보주의자들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원자력 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보수주의자들이 더 민감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저자는 진보주의자와 함께 보수주의자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은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조직력이 강하고, 추진력이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보완해줘야 세상이 잘 굴러간다는 이야기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또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분열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 또 보수주의자와 대립할 때 굽히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보수주의자는 굽히지 않으니까, 협상 떠봐야 손해라는 이야기. 진보주의적인 뇌는 애초에 정치를 하는 데 효율적이지 않으니 보수를 좀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충고다.

 

뭐, 대략 이런 이야기고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책에서는 ‘진보주의자’라 되어 있지만 미국 상황상 ‘민주당 지지자’가 좀 적절하다. 아마 한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 야당 지지자’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인식하고 보면 대충 들어맞는다. 노무현 이후 민주당 내부 리더십이 개판이 되자, 당 분열로 정신이 없었다. 새누리당이랑 쇼부 이상하게 치다가 망테크 탄 게 한두번이 아니고.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는?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보수주의자의 거울’같다. 보수주의자 이상으로 교조주의적이고, 비타협적이다. 책에서는 ‘진보주의자는 호기심이 많아 과학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한국 진보는 근거도 없이 과학 까느라 정신 없고. 진보주의자는 비권위적이라 하는데, 한국의 진보 쪽 권위주의는 기존 제도권 저리 가라 수준이고.

 

이런 얼굴이면 거울이라도 좋겠으나(...)

 


두께에 비해 메시지가 많이 담긴 책은 아니지만 그 메시지가 꽤나 소중한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찝찝했다.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엄청 진보주의자인데, 난 스스로를 보수라 이야기하면서 살고 있고… 모르겠다.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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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 금융위기에 대한 좋은 요약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 금융위기에 대한 좋은 요약

Posted at 2012.11.02 00:35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어찌된 게 책 제목이 하이만 민스키 띄우는 제목으로 됐는데 원제는 The Origin of Financial crises : Central banks, Credit bubbles and The efficeient market fallacy다. 


내용도 원제에 훨씬 부합한다. 이 책은 효율적 시장 가설과 정책이 어떻게 망했는지 설명하고, 중앙은행과 버블을 다룬다. 아마 이 책보다 금융위기, 버블을 잘 설명한 책이야 많겠지만 쉽게 설명한 책은 없을 듯하다. 요약하기 귀찮지만, 이 책도 안 볼 게으른 누군가를 위해 주요 내용을 바치자면...


-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중앙은행 자체가 없어야 한다. 금융시장도 효율적이니 가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효율적 시장론자들은 되려 중앙은행이 시장질서를 교란한다고 맞선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임. 중앙은행 없을 때도 금융위기 잘 터졌음. ㅋ 한마디로 금융위기가 중앙은행을 낳은 거임.


-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하며 신용을 유지하려 했는데, 역으로 최종대부자가 있으니 사람들이 막 빌리고 은행은 막 빌려주는 모럴해저드가 종종 발생. 그리고 정부는 재정 없다고 은근슬쩍 돈 찍으려고 지랄함. 물론 돈찍으면 인플레이션 대박 확률이 높음. 망했어요. ㅋ


- 케인즈는 경기 위축 때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풀어야 한다는 '절약의 역설'을 이야기했음. 정부지출 증가가 기업이윤 높이고, 차입 촉진하며 경기팽창 선순환이 된다는 것. 여기에 민스키는 '과식의 역설'이라는 위험성을 추가로 이야기함. 선순환 되면 돈이 더 돌고 여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또 더 투자하고... 그러면 뭐? 버ㅋ블ㅋ


- 근데 요즘 왜 이리 심심하면 버블이냐고? 과거에는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돈을 풀었는데, 요즘은 경기 위축의 우려만 있으면 선제적으로 돈을 막 풀어버린다. 그렇게 막으니까 사람들은 기대감 형성에 계속 신나게 자산을 사들이고 버ㅋ블ㅋ 유럽은 상대적으로 이게 덜한 편인데 중앙은행이 훨씬 보수적이기 때문. (이번 위기는 재정위기에 가깝고)


- 여튼 중앙은행에 달렸음. 중앙은행은 다소 모순적인 업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함. 하나는 금융안정을 위해 신용창조를 억제하는 것과 수요관리를 위해 신용창조를 촉진하는 것 사이. 또 하나는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화폐발행을 억제하는 것과 신용팽창 촉진책 성공 후 나타날 경제위축을 피하기 위해 화폐발행을 촉진하는 것 사이.



뭐, 대충 이런 이야기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수준의 이야기인데 정리가 참 잘 되어 있음. 결론? 직접 읽어보셈. 별 거 없으니까. 이 책에 나오는 제안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원채 어려워서 그렇지. 그보다 금융자본이 어떻게 국회를 움직이는지가 더 궁금한데...


어쨌든 정부는 언제나 돈을 뿌리고픈 욕구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나타나면 어떨까? 이를 저자는 '술취한 주인에게 술을 줄 수 없는 하인의 딜레마'에 비유한다. 요즘처럼 복잡한 세계경제에서 중앙은행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정부와 한통 속이면 이미 망한 거다. 하인이 주인이 술 달라고 계속 주면 그 집은 끝인 거니까. 


그런데 요번 정부가 그랬지롱.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괜히 세계 최악의 중앙은행 총재로 지목된 게 아님. 평가가 적절한데 '경제성과보다는 정치적 이해를 감안한 정책 결정을 내리고, 시장 대응에서도 실수를 거듭해 오명을 쌓아왔다'란 이유.


참고로 김중수는 야근은 축복이라 한 그 아저씨 맞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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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30년 : 대한민국 인기도서의 지형도베스트셀러 30년 : 대한민국 인기도서의 지형도

Posted at 2012.10.31 00:38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언젠가 메신저 대화.


리승환 : 시간나면 연대별로 대한민국 베스트셀러나 한 번 정리해보지 않을래요?

예인 : 너무 힘든 작업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책이 있더라.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의 연간 베스트셀러를 죽 정리한 책.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내가 얻은 결론은 '베스트셀러의 법칙 따위는 없다'는 거다. 크게는 시대정신이 들어가지만 시대정신은 그다지 일방적이지 않다. 개인주의가 커지면, 그만큼 공동체에 대한 반동의식도 함께 작동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들이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찌른 것만도 아니다. 그런 책은 많았을 거다. 어쨌든 베스트셀러는 살아남았고 많이 팔렸고, 이들이 오히려 트렌드를 창조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왜 많이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을 통해 성공의 요소를 찾는 건 좀 아닌듯. 물론 이 책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긴 호흡으로 보자면 30년간 일정한 변화의 흐름은 보인다. 이전 책에 비해 요즘 책은 깊이, 정확히는 주제의 무게가 떨어진다. 어떠한 문제에 천착하려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또 예전에 비해 확실히 읽기 편한 형태로 나온다. 예로 실용서라면 지침이 확실하게 가거나 특정 인물을 통하는 식. 도전적, 진취적이기보다는 현실에서 위로와 따뜻함을 찾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 먹물들의 표현에 따르면 점점 '싼마이'스러워지고 있다.


하지만 별로 아쉬워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는 독서라는 경험이 이전에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중산층으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 당연히 머리와 문화자본이 딸리고 좀 더 낮은 수준의 독서경험을 가질 수밖에. 이런 수준이 더 높아질지에 대해서는 '글쎄요?'이지만, 어쨌든 출판계의 치열한 경쟁 덕택에 이전보다 좋은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온 건 사실이다. 날 잡아서 이 책들만 죽 다 읽어도 재미있을 느낌. 



뱀발. 저자가 출판업계에 오래 있어서 출간 과정에서의 뒷얘기를 전해주는데 이게 찰지게 재미있다.


아... 이 책이 좋은 점 하나 더! 여자 앞에서 허세 떨 소재를 꽤 많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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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이 짤방은 두고두고 봐도 웃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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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컬처 리뷰 : 한국에서 잡지만들기매거진 컬처 리뷰 : 한국에서 잡지만들기

Posted at 2012.10.29 00:20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김봉석 옹 덕택에 알게 된 책. 최근 회사 일도 있고 해서 강의도 듣고 책도 사 봄.



 뭔가 범죄자스러운 프로필의 김봉석 옹(…)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단 이 책 자체가 꽤 잘 만들어진 잡지의 느낌이다. 4파트로 딱 나눠져 있다. 형식이 몽땅 인터뷰라 좀 질리는 감이 있다. 특히 1, 4 부분은 대동소이한 질문으로 짜여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마 사람에 따라 맘에 드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고 그럴 듯. 디자인이 꽤나 훌륭해서 보는 맛은 감질나는 책.


1. 한국의 주요 잡지를 소개

2. 한국의 잡지 에디터들의 이야기

3. 한국의 아트 디렉터들 이야기

4. 셀프 퍼블리싱 이야기




아무튼 감상. 잡지가 위기라는 말은 젖혀 두자. 지금 위기가 아닌 시장을 세 가지만 대봐라. 내가 굳이 들자면 카지노, 모바일 게임, SPA 정도가 떠오르는데, 얘네들도 규모의 경제에 따라 죽어나는 곳 많을 거다. 카지노야 규제산업이니 제쳐두고(…) 


그래서 잡지가 위기냐고? 그렇다. 우선 사람들이 잡지를 ‘본다’는 경험의 축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신문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다 버릇이다. 그러니까 신문사는 기 쓰면서 고등학교에 신문을 뿌리는 거고. 하지만 잡지는 그럴 여력은 없다. 


반대로 잡지는 기회를 만났을 수도 있다. 최근 소셜 업계에서는 큐레이팅이라는 말이 화제다. 난 이해가 안된다. 단 한번이라도 모든 미디어가 큐레이팅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글도 여기저기 널린 지식들을 정리해서 올린 글이다. 그럼에도 ‘큐레이팅’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커지는 이유는, 정보 과잉이 그 중요한 이유다.진중권도, 변희재도, 이간결도(…), 기타 등등 다 떠들다보니 특정 이슈에 대해 정제된 정보를 받아보고픈 욕구는 넘친다. 그런데 이 ‘큐레이팅’에 가장 어울리는 미디어가 바로 잡지 아니겠는가?


 

이런 간결한 정리가 필요한 시대



그래서 잡지는 잘될 수 있을까? 그건 오직 ‘사람’에 달린 문제다. 포기하면 편하다지만 포기하기에 잡지를 만들 환경 자체는 좋아졌다. 기술의 발달로 제작비가 떨어졌다. 막말로 웹으로 가면 코스트가 제로에 가깝게 수렴한다. 인터넷 덕택에 정보를 모으기도 편해졌다. 또 웹을 통한 저렴한 홍보도 가능해졌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취향이 엄청 다분화됐다. 잡지가 에디팅과 큐레이팅의 영역이라면 어떻게든 쑤시고 들어갈 구멍은 있는 셈이다. 물론 바닥에서 생존하는 지혜와 요령은 필요하겠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일을 ‘누가’ 수행하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현업 종사자들은 잡지의 지속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편집장들은 조금씩 다른 의견을 내세운다. 하지만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에디터의 곤조, 독자의 즐거움, 수익 창출이다. 정리하면 에디터십, 컨텐츠, 사업감각이겠다. 이 3가지를 어떻게 믹스하느냐의 문제인데 현재 주요 상업잡지들은 이미 광고주에게 좌지우지되는 상태다. 잘나가는 몇 잡지들은 ‘자신들은 다르다’고 강변하는데 솔직히 좀 우습다. 그건 라이선스지가 잘나가서이거나, 아니면 본사에서 매출 압박을 덜 주는 요인이 큰지라(…)


좀 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앞으로 한국 잡지는 많이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패션뷰티 관련 라이선스지가 여전히 강세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다양한 종의 잡지들이 생존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질을 높이지 않을까 싶다. 또 소자본을 통해 정말 니치마켓을 다룬 다양한 잡지들도 계속해서 등장할테고. 아쉬운 점이라면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이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에디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도 많이 등장할 것 같다. 솔직히 잡지들 보면 너무 무게가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지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뭔가 경쾌하고 발랄함은 없단 말이지. 물론 된장심을 일정 수준 충족시켜줘야 사람들이 잡지를 사겠지만, 된장심으로 컨텐츠를 커버하기보다는 컨텐츠로 가벼움까지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잡지를 보고 싶다. 인터넷에 싸지르는 글과는 좀 달라야겠지만(…)



이런 개발랄한 잡지가 보고 싶다



대충 책 평을 내리자면 간만에 잡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살려줬다는 점만으로도 괜찮은 책. 앞으로 주말마다 도서관 가서 잡지나 뒤져봐야겠다. 


뱀발. 김봉석 옹이 몇 차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는데데 감사의 표현으로 이벤트를 실시한다. 여기에 비밀댓글을 남기든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쏘건, 트위터에 DM을 쏘건 4분을 내 맘대로 추첨해서 책 한 권씩 보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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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벤트 벌써 마감됐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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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인터넷 리뷰 : 인터넷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불편한 인터넷 리뷰 : 인터넷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Posted at 2012.10.28 01:16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팀장님이 책을 배송받은 즉시 내게 넘기며 “승환씨. 이거 한 번 읽어봐.”라고 한 책. 팀장님은 만렙에 가까운 쿨게이다. 나는 쪼렙 쿨게이지만 어쨌든 딱 어울리는 책을 추천받은 듯. 굉장히 좋은 책이다. 필자가 여럿이다보니 중언부언 겹치는 내용이 더럽게 많다는 문제는 있다. 고로 대충 읽기를 권한다.


원제는 The Offensive Internet : Speech, Privacy, and Reputation이다. 이쪽이 확실히 내용을 잘 보여준다.


인터넷은 위대한가? 그렇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으니. 효율성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질문. 인터넷은 아름다운가? 글쎄. 때로는 그렇고 어딘가는 그렇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고, 어딘가는 그렇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은 우리 사는 세상의 반영이니까. 우리 삶도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어둡다. 또 어딘가는 아름답지만 어딘가는 지저분하다.


이 책이 하는 이야기는 인터넷의 어두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한국에서 인터넷을 이야기하는 진보 측은 이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한다. 모욕죄는 시대착오적이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인터넷에는 어두운 구석이 너무 많다. 아래 짤을 보자. 





짤방 내용은 엔하위키를 참조하자. 위 여성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순간 조리돌림감이 됐다. 사람의 멘탈에 따라서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래는 어떨까?




해당 여성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까일 정도의 발언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다. 루저녀는 두말할 것도 없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의 문제로 들어가보자. 아웃팅은 생각보다 흔하다. 내 지인은 잘나가는 논객들이 그의 오프라인 세계 정체성을 까발리자, 트위터 활동을 접은바 있다. 나 역시 유사한 일로 커뮤니티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적이 있다. 또 어느 학교, 학급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의 성적 정체성(게이, 레즈 등)이 까발려질 것이다. 이 때 가해자에게는 어떤 책임이 돌아갈 수 있을까?


명예훼손은? 한 유명 논객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매도했다. 그러자 사정을 모르는 한 사용자는 그 논객 너무 쿨하다고 트윗했다. 이렇게 내 이미지가 왜곡되고 망가지는 속에서 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책임을 물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법에 의존하는 것 자체를 그다지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정? 글쎄... 생각보다 모든 사안을 합리적으로 검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씨발, 나도 얘처럼 쿨하고 싶은데(…)



모욕은? 종종 학교 커뮤니티에는 실명을 거론하면서 남자, 혹은 여자를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는 바람둥이, 쓰레기가 되고 여자는 걸레, 창녀가 된다. 이게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문제고, 아니라면 더 큰 문제인데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가?


인터넷의 자유가 자정을 낳는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의 자유가 자정을 낳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너무도 많은 사적인 영역에서 ‘악의적 공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이. ‘공적인, 뉴스거리가 있는’ 경우야 개소리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 곳에서도 공사가 애매한 위험 발언들이 오간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상처와 피해를 입는다.


인터넷은 이미 우리의 삶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인터넷이라고 딱히 오프라인과 달리 적용받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몇 가지 이유로 인터넷은 더 위험하다. 탈맥락적이고, 빠르게 확산되고, 어떠한 조치가 없을 경우 영구히 남는다. 오프라인 세계가 그러하듯 온라인 역시 규제가 필요하다.

 

물론 여가부 규제에 대해서는 이것밖에 할 말이…



규제는 필요하다. 물론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규제의 선’을 찾으려는, 즉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서, ‘자유’만을 외친다면 그 주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 힘들 것이다. ‘악플러’, 혹은 ‘루머 유포자’에게 책임을 물릴 수도 있다. 물론 그 선은 너무나 애매하다. 인터넷은 아직 보급된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규제와 자유의 위험한 물타기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최근 일베에서의 목소리를 나는 ‘글을 쓸 수 없었던 계층이 글을 쓰게 된 시대’ 때문으로 보고 있다. 즉 앞으로는 더 많은 인터넷의 부작용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더 이상 인터넷은 중산층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더 자기 절제 능력이 없는 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벌일 것이다. 그 사람은 아마 당신의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일 것이며, 그 피해자는 당신이 될 수 있다.


‘규제’라는 말이 듣기 좋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책임’은 필요하고, 이는 ‘규제’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 자정작용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그건 아마도 지식인 층에서나 가가능 일일 테다. 당장 트위터만 봐도 당대의 위대한 지식인들이 쉴새없이 뻘소리를 해대고, 거기에 사람들은 큰 소리로 환영을 날리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은 우리 사회가 그렇듯이 때로 아름답고, 때로는 아름답지 않다. 분명한 것은 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책임'이 필요하다. 진보 역시 이러한 부분을 함께 언급해야 좀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피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자유·쾌락의 극대화에 우선할 것이니.



뱀발. 국내에서 네이버 까기에 바쁜데 여기서는 살짜쿵 구글도 까인다. 검색 알고리즘 모르고, 그 알고리즘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구글도 책임져야 한다고 하며, 네이버 등과 같은 중간사업자(OSP)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난 여기에 동의하는데 그냥 냅두면 그야말로 엄청난 피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 물론 이 역시 엄청난 줄타기가 펼쳐지겠지만.

 


이딴 꼰대스러운 이야기나 하니까 여자가 안생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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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독자3호
    결론 : 야겜을 하자.
  2. 결론 : 야겜을 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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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리뷰라고 남겨본다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리뷰라고 남겨본다

Posted at 2012.10.18 22:20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아는 누님 작업실에서 업어온 책. 제목에서부터 딱 꽂힌 책이다. 내가 예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한 게 “여성용 야동은 드라마다!”였으니. 일단 나랑 취향 맞는 사람이라면 미친듯이 재미있게 볼 책이다. 실생활에 아무 도움은 안되겠지만 이런 분야에 흥미 있는 사람이라면 사두고 읽어볼 책.  


과학적으로 남녀의 성욕과 신호에 대해 분석한다. 뭐, 생리적인 반응을 실험하고 이를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는 거야 이제 꽤 일상화되기는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있는 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검색어’를 가지고 연구조사한 게 꽤 들어간다. 다들 알겠지만 인터넷만큼 날것을 마구 뱉는 곳이 어디 있겠나?


내용은 요약하면 별 거 없다. 남자 새끼는 원래 애새끼를 낳을 확률이 40% 정도인데다가, 아무데나 뿌리는 게 유전자 남기기 좋은 반면, 여자들은 애새끼 낳을 확률이 80%나 되고, 멀쩡한 남자 안 만나면 애도 병신이고 자기 삶도 병신 되니까 졸라 가리고 또 가린다는 것. 아… 불쌍한 남자. 성재기를 칭송합시다. 우리 슬프고 슬픈 남자여…



...라고 끝날 정도의 시시한 책은 아니고… 뭐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남자에게 성적 신호가 무엇인지를 야동 사이트 검색어로 본다거나… 남자는 가슴이랑 엉덩이, 발(…)에 꽂힌다. 그리고 얼싸물(…)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그 순간 여자 감정을 볼 수 있는 샷이라서 그렇단다. 그리고 남자의 대가리는 OR 로 짜여져 있어서 심심하면 꼴린다.


반면 여자는 남자 신체에 별 관심이 없다(…)면 오버고 적어도 거시기에는 관심이 없다. (남자는 되려 관심이 많다) 로맨스 소설에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야동 사이트에서도 찾지 않는다. 눈빛, 턱선, 가슴 등등 별의별 걸 다 보던데 여튼 허벅지랑 어깨가 짱이에여! 라고 해도 이것도 뒷전이고 결국 능력이다. 더러운 세상. 로맨스 소설 보면 살인마, 강간범 같은 막장도 잘 나오는데 이것도 능력의 상징일 때 먹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결될 건 아닌 게 여성의 대가리는 AND 로 짜여 있는지라 관문이 더럽게 많다. 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쉽게 안 대준다는 것. 능력은 물론이고 지성을 겸비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마음 속은 따뜻하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무슨 관문이 이렇게 많아? 그러니까 우리 모두 고자, 아니 게이가 됩시다…


그래서 게이 이야기도 나오는데 게이는 성적 취향은 남성을 좋아하지만, 성적 신호는 대부분 남성을 따른다고 한다. 그래서 얘네도 이성애자 남성에게 더 끌린다고. 왜냐면 이 쪽이 훨씬 남성적일 확률이 높으니까. 재미있는 건 여성은 게이를 또 좋아한다(…) 남녀가 떡치는 포르노는 남성 중심적이라 싫어하지만, 게이포르노는 재미있게 잘 본다고 한다(…) 이쯤에서 여성 독자를 위해 빌리 성님이나 소환해보자.



뭐, 좀 뻔한 소리 같다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그렇다. 둘 다다. 뻔한 소리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특히나 여성은 문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좀 핡핡할 일이 많겠지. 물론 이딴 블로그 들어오면서 생을 낭비하는 우리에게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어. 걱정마라. 대한민국 남성도 일본처럼 포기하고 초식남화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 문화의 힘은 유전자의 힘만큼이나 무섭다. 


우와! 이건 10분만에 썼다! 신난다! 그럼 기념으로 현실로 돌아와 다들 고자... 아니 게이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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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자의 대가리는 OR 로 짜여져 있어서 / 여성의 대가리는 AND 로 짜여 있는지라' 여기 밑줄 긋고 싶네요.
  2.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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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리더다... 를 읽고 잡평문제는 리더다... 를 읽고 잡평

Posted at 2012.10.18 20:26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문제는 리더다.


맞는 말이다. 물론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까 국개론1(국회의원개새끼론)에 이어 국개론2(국민개새끼론)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국의 문화는 여전히 리더에게 막강한 권력이 있고, 또 리더에게는 엄청난 시선이 모인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사회를 움직인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가 훌륭한 리더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리더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2012년 대선을 통해 5년간 대한민국의 리더가 될 이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인터뷰집이다. 정관용이 4명의 멘토(?)에게 질문한다. 남재희, 김종인, 윤여준, 이해찬이 그들이다. 이 중 이해찬은 다른 세 명에 비해 확실히 격이 떨어진다. 지식이나 경륜이 아니라 시야가 좁다. 다른 셋에 비해 정파성이 강하고, 자신의 과거를 떼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머지 셋의 이야기는 꽤나 경청할만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갈등 조정의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모두 박정희에 대해 소극적으로나마 공을 인정한다. 어쨌든 나라는 그럭저럭 조용히 돌아갔다. 노태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영삼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편지풍파가 심하지 않았다. 김대중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어쨌든 리더십 발휘를 인정한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인간적으로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리더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건 팬클럽에나 어울리는 일이고, 실제로 노무현식 정치는 그러했다. 그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집권한 이후 대한민국은 양극화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호황을 누렸는데도 말이다. 


이명박? 그야말로 최악으로 꼽고 있다. 촛불시위는 그의 갈등 조정 능력, 그 이전에 감수성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통렬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지금까지의 대통령 모두 자신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권력 남용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명박처럼 갈등조정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 결과가 실제 국민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전까지의 대통령들은 갈등 조절을 위해 노력했다. 박정희가 그래도 인정받는 건 국민들이 그에 대해 향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정치’를 했다는 증거다. 순환논리 같지만 결과가 곧 근거인 세계가 정치다. 실제로 위 세 사람은 대한민국 성공의 이유를 ‘국민’에서 찾는다. 그리고 리더들은 (인터뷰이마다 각각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차이는 크지만) 민의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고 본다. 


씨발놈들아, 내 말 좀 들으라고저는 미쳤습니다



이게 10년간 깨져버렸다. 내 생각에 잃어버린 10년은 노무현부터 이명박이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김대중까지를 제왕적 리더십이라 하지만 글쎄. 좀 더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손익, 그리고 반응에 대해 세심히 살펴왔던 시기가 김대중까지가 아닐까? 


세 명의 인터뷰이는 2012년을 이끌 리더십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인물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해찬은 재미있게도 2017을 언급하며 유시민, 박원순을 언급하는데 글쎄…) 내가 봐도 세 후보 모두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리더의 그릇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후보는 당내가 엉망진창이고, 한 후보는 배타적인 정파성으로 당의 나머지를 도외시했으면, 한 명은 아예 그럴 정당도 없다. 


제목에 백 번 동의한다. 문제는 리더이고 리더십이다. 10년간 정당이 너무 엉망이 됐다. 이 기반에서 좋은 리더가 나온다는 기대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리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 꾸역꾸역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어디겠나? 인적 자원과 외교 환경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2012 대선도 역행의 5년을 만들어낼지 모르겠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내 암울한 기대를 떨치고 ‘좋은 정치’까지도 아닌 ‘정치’를 되살려주기를 기원한다. 


여튼 4명의 인터뷰이에 대한 인상비평은 아래와 같다.

윤여준 : 큰 그림을 그려내는 냉철한 책사.

김종인 : 절대 물러남이 없는 강인한 무사.

남재희 : 화합을 도모하는 따뜻한 선비.

이해찬 : 똑똑하고 경륜도 있는데 결국 노빠.



서평을 20분만에 쓰다니. 웬지 기분이 좋아졌다. 기념으로 야짤을 남기니 좋은 딸감으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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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 왜 글에 쓸데없는 크롤러들만 댓글을.. 으허ㅓ허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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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에게 추천하고픈 책 릴레이각하에게 추천하고픈 책 릴레이

Posted at 2011.08.28 23:05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최근 모종의 이유로 잠시 웹에서 뜸했는데 릴레이 바톤을 받아서...

세상에는 4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게으르고 똑똑한 사람 : 어지간하면 남들 괴롭히지도 않고 오래 있지도 않아서 아주 좋은 직장 동료.
2. 게으르고 멍청한 사람 : 그야말로 HELL. 잘리거나 지 발로 옮기기에 별 문제가 안 됨.
3.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 : 이상적인 직원. 물론 이런 사람은 거의 없으니 여기 별 문제가(...)
4. 부지런하고 멍청한 사람 : 최악의 직원. 각하가 이 유형에 속함. 문제는 각하는 무려 대통령!


 
부지런하고 멍청한 상사와 있으면 그야말로 괴로움 그 자체다.

- 쓸데없는 일을 시킨다.
- 쓸데없이 수정을 시킨다.
- 그것도 없으면 쓸데없는 일을 만든다.
- 쓸데없이 야근을 한다.
- 쓸데없이 야근도 시킨다.
-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
- 정작 필요한 일을 하면 욕을 한다(...) 



이런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있으니...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단해지는 거다. 그래서 각하에게 추천하고픈 책은 이 책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게을러 터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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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좀 늦긴 했지만 릴레이를 받아주셔서 캄사 ^^;;; 근데 릴레이를 계속 이어볼 생각은 없으신건가요?
  2. Manglobe
    제 직장 상사도 그런 유형 -_- 아 피곤해 죽겠슴다 ㅠ 게으르고 멍청하기라도 하면 그냥 내할일 잘 끝내면 되는데 부지런하고 멍청하니 자꾸 필요없는일 시키고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하면 짜증내고. 아 게다가 남자인데 매일 생리하는것도 아니고 극도의 예민함+짜증+막말 이상적인 조합이지요.
  3.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도 충분하죠 :) 올만입니다.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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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을 여행하는 잉여를 위한 안내서라캉을 여행하는 잉여를 위한 안내서

Posted at 2011.06.18 19:14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종종 주변 잉여들이 라캉과 정신분석학에 대해 물어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난 이 둘을 잘 모르고, 성격상 모르면 찌그러지는 비겁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 모난 성격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근 2년이나 펼쳐진 인터넷에서의 키보드 전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택광으로 대표되는 라캉 옹호파와 아이추판다로 대표되는 '이택광 비판'세력이 왜 그토록 치고 받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전 글에서 설명했다. 여기서는 그동안 펼쳐진 주요 논지에 대한 정리와 내 입장을 더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내가 바라보는 일련의 논쟁 지점은 다음과 같다.

1. (특히 라캉에 기반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설명력을 가질 수 있는가?
2. 라캉주의자들이 과학 외의 방법으로 설명력을 확보할 수 없는가? 
부록. 라캉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인가? 
3. 라캉주의가 설명력이 없으면 입 닥치고 있어야 하는가?
4. 이택광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반지성주의'인가?
5. 문화비평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1. (특히 라캉에 기반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설명력을 가질 수 있는가?

답을 내리자면 거의 설명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윤형의 글쓴이의 가독성과 글쟁이의 밥그릇이라는 글은 뭔가 오해하고 있다. 애초에 (귀찮아서 아이추 뺌) 판다가 주장한 것은 글의 가독성 문제가 아니다. 판다측(?) 주장을 대략 요약하자면…

라캉주의(?) 측에서 이야기하는 글의 논거인 라캉의 주장이 기본적으로 여타 학문의 과학적 연구에 위배된다는 것. 그리고최소한 이가 허용되려면 타 분야에 대해 강한 설명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가 그다지 튼실치 않다는 것.


‘그럴 듯해 보이는 것’과 ‘그러한 것’의 차이는 크다. 예로 슴가가 큰 언니들 중에서 유독 슴가가 작아 보이는 언니들이 있는데 이는 슴가의 모양새와 입는 옷, 속옷의 보정력에 따라 모양새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가는 분은 반대로 '슴가가 작은 언니'가 '슴가가 커 보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빠르겠다.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힘이 크다고 한다


이택광의 라캉에 대한 설명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러한 것'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라캉이 이야기하는 '거울 단계'는 기존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정반대로 인용하기까지 한 실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론적 근거이다. 근거가 잘못되었는데, 그 이론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라캉의 문제는 일단 증거 여하를 떠나서 인용 자체가 엉망진창이라는데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이론인 거울 단계도 쾰러의 거울 실험의 결과를 정반대로 인용한 데서 비롯한 것입니다. (아이추판다)

However, close rhetorical examination shows inaccuracies in his citations about the behaviour of children and chimpanzees in reaction to mirror images. Moreover, the evidential basis that he cites is neither supported by contemporary psychology, nor, more seriously, did it suggest what Lacan was claiming at the time of his writing. (Lacan's Misuse of Psychology Evidence, Rhetoric and the Mirror Stage)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한윤형은 뜬금없이 ‘가독성’을 붙들고 이야기한다. 한윤형이 언급한 부분은 아마도 이택광의 글에 대한 비판들 중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식의 반응이 많아서일 듯. 하지만 알렙, 김우재, 판다의 지적질은 이 반응들과는 다른 영역에 속해 있다. '모르겠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가 아니라 '당신이 말하는 주장의 근거가 부족하다니까'에 가까운 것.

그래도 라캉의 설명이 땡긴다고? 반복하자면 '그러한 것'과 '그럴듯한 것'은 다른 거다. 

 만약 같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원덕이거나 카퀴, 난 걸스데이 팬이라서 제대로 보인다


2. 라캉주의자들이 과학 외의 방법으로 설명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행보는 뻘짓으로 보일 뿐이다. 

잠시 '설득력'과 '논증'을 구분해서 생각해 보자. '설득력'에 과학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수사에 가깝다. 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 불, 세계 7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에, 아무런 과학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에 혹했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하지만 '논증'은 그 기준이 엄격한지의 차이가 있을 뿐, 과학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여기서 과학은 '자연과학'이 아니라 '규준'을 이야기하는 것 - 그러니까 '과학적 방법론'에 가깝다는 - 이다.

허나 과학 외의 방법으로 논증의 확보가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직관이나 축적된 경험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거나 다 지를 수 있는 건 아닌데, 일단 과학이 끼어들기 힘든 분야이어야 한다. 수학이나 논리학은 우리의 감각과 무관한 개념들을 사용하며, 경험적이거나 재현 가능하지도 않다. 이런 놈은 필연적으로 직관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최소한 다른 분야에 적용시킬 때의 유용성을 통해 어느 정도의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예로 한의학의 침술을 들어보자. 침술은 아직까지도 플라시보(僞藥) 효과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으로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수행과정을 거치면 결과가 그럭저럭 나오는 것이다. 즉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본다면 그 논증이 비과학적일지라도 어느 정도 먹힐 수 있게 마련이다. 

비슷한 예로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는 각하의 말도 과학과 아무 관계도 없지만 많은 남성들이 공감한다


문제는 경험을 통해 라캉의 설명력을 높이기에는 아예 축적된 경험 자체가 없다. 오히려 근거도 없이 막나가는 주장을 할 뿐이다. 이택광은 조승희의 정신분석을 통해 말한다.

대니 노버스는 치료 관점에 치중한 정신의학이나 에고 심리학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7살짜리 아이를 진찰하는 과정에서 자기 친구심리학자는 기계적 스캐닝이나 약물검사만 할 뿐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황당해했다.중요한 건 그 아이가 무얼 원하는지'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심리학자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라고 시키기만 했을 뿐,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려는 노력을 하지않았다고 한다. (중략)

조승희 사건은 이런 '심리치료'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조승희에게 필요했던 건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가 아니라, 정신분석이었다. 그가 정신분석을 받았다면, 그의 공격성은 창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심리학에 대한 편견 (또는 이해부족) 을 기반으로 한다. 판다의 인용을 살펴보자. 

상담자는 듣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상담자는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그대로 내담자를 수용함으로써 신뢰와 지지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동맹 관계가 없으면 많은 내담자들은 변화할 수 없다. - < Scott T. Meier, Susan R. Davis, 이동렬, 유성경 옮김, "상담의 디딤돌", 시그마프레스, 5쪽 >

경청은 기본 면담법 중 가장 먼저 거론될 만 한데, 상담이라는 것은 내담자의 말을 듣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 < 김환, 이장호, "상담면접의 기초", 77쪽 >

 
 
물론 정말로 미국 심리학계 (사실 이택광 라인에서는 이게 상당히 혼란스러운데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를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 이택광이 이야기한 문제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주장하는 자기 자신이 제대로 된 근거를 내놓지도 않으면서 이게 대안이라 이야기하는데 이게 어떻게 '논증'이 될 수 있겠는가? 사업계획서를 쓸 때도 이런 식으로 써서 내면 사장은 커녕 과장에게도 욕 먹는다. 최소한 제대로 된 사례 정도는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적은 표본에 따른 심각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록. 이쯤에서 나오는 질문. "라캉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니까요?" 

이택광의 정신분석학과 문화비평을 들여다보면...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혔지만, 내 입장은 이렇다. 정신분석학은 임상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문제를 근대적 임상의학이라는 협소한 영역에 가둬두는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임상을 하지 않으면 정신분석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 또한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분석학 자체가 기존의 철학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을 만들어낸 지적 원천들은 다양하다.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와 스피노자, 그리고 헤겔, 더 나아가서 비엔나학파와 신칸트주의를 고려하지 않고 정신분석학의 의미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사회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화인류학의 성과에 근거해서 많은 논의들을 펼쳤다. 

사실 내 박사논문 또한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다양한 학자들이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연구들을 많이 내놓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을 좁은 임상의 틀에 가둬두려는 행위는 랑시에르의 말처럼 정신분석학의 정치성을 거세하는 일에 불과하다. 내가 목표로 삼는 것은 정신분석학의 정치화이고, 이를 통해 주체에 대한 이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정신분석학에서 제기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분과학문의 성과들을 고찰하고 종합하는 것이지, 정신분석학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배제해버리는 것이 아니다. 바디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분석학은 그 자체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된 진리를 판독하는 것이다. 진리의 판독이라는 중요한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문화비평이 이런 정신분석학의 힘을 빌리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것은 근대과학의 문제라기보다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인문학 본연의 욕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 문화비평을 위해 정신분석학을 빌리든 말든은 내 문제가 아니고... 그냥 라캉이 과학적으로 좀 틀려도 철학이니까, 혹은 정신분석학이니까 상관 없는지에 대해서만 살짝 알아보고 넘어가자.

철학이라고 맘대로 질러서야 곤란하겠지만 굳이 철학에서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사실일테다. 하지만 그 전에 선결 과제가 있다. 최소한 과학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철학적 정당화의 방법은 잘 모르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뭐라하고 싶지 않은데, 어느 學이든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일단 과학적으로 잘못된 근거들은 폐기하고 들어가야 옳다. 자기들이 먼저 온갖 인용을 하고 과학적·경험적으로 논박 가능한 잘못된 근거를 써 놓고서 '철학'임을 주장하는 건 좀 우습지 않은가? 철학은 까임방지권이 아니다.

어떤 학문이건 남의 영역 끼어들기는 좋은 버릇이다. 이른바 '나와바리'를 지키려는 태도는 점점 많은 학문이 통합하고 연계되는 요즘 세상에서 도움이 될 리는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남의 학문을 건드리려면 최소한의 이해는 담보해야지, 그것을 곡해하면서까지 자기 학문을 정당화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근본적 해결책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킬 건 지키고 주장하자


3. 라캉주의가 설명력이 없으면 입 닥치고 있어야 하는가?

떠드는 것은 상관없다. 대한민국은 리승만 정부 이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이다. 말하고나면 조용히 끌려가서 문제일 뿐이지.

저 청년의 순수한 마음을 꺾는 슬픈 장면을 보라...


다만 '학문'의 이름으로 서기에는 좀 모자라 보인다. 지금까지 라캉에 기반한 이야기가 왜 설명능력이 떨어지는지를 이야기했는데, 이가 라캉에 근거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 뿐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든은 그 사람의 자유다. 즉 엄밀함을 갖춰야 하는 것은 학문 내 일이지, 우리같은 민간인이 사적 영역에서 지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종종 등장한다. 아래 철학도님의 글은 라캉의 문제점과 동시에 나름의 유용성(문학비평)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프랑스 학계에서는 반죽음 상태입니다. 적어도 현재 상태는 그렇습니다. 그들에 대한 박사 논문은 외국인들, 특히 들뢰즈의 경우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주로 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다른 당대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는가.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영문학에서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이 주목하는 한,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 특히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반식민지에서 미국의 주목에 주목하는 것은 또한 자연스럽다는 것. 실제로 한국에 라깡을 들여온 것은 경희대 영문과 권택영선생이었다는 점. (중략)

이 프랑스 철학의 추종자들은 대개 철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문학전공자들입니다. 말한 대로 한국의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고, 특히 라깡은 제가 알기로 진태원 선생과 김석 선생이 귀국하기 이전까지 강의된 적 조차 없습니다. 철학과에서 운영되는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라깡을 다룬다는 말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 국문과든 그 과의 세미나 커미큘럼에는 지젝이 있고 라깡이 있더군요. 도대체 번역서도 없는 마당에 뭘 읽는 것인가 싶기는 하지만.



블로그를 열었다 닫았다를 취미로 삼고 있는 알렙 역시 라캉의 유용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글은 이미 사라졌지만 제 마음 속에 살아있어요, 헤헤...

사실 라깡의 통찰은 부분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미지적인 것(영상계), 문자적인 것(상징계), 그리고 이 둘에 포섭되지 않는 실재계라는 구분 같은 것이 그렇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라깡 역시 일종의 교조에 대한 숭배와 도그마의 옹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면서 그러한 약간의 통찰과 불필요한 많은 현학과 무의미한 언사들이 패키지로 주어진다. 흔히 말하는 저열한 비유를 가져다 쓰자면, 고수는 이런 위험을 알기 때문에 그 흠이 잘 드러나지 않고, 하수가 될수록 재앙에 가까워지지만 (데리다와 그 아류들 사이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라깡보다는 라깡을 이용하는 이론가들에게 그나마 더 끌리는 이유가 그래서인데,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쓰면서 자기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서 교조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라깡주의에 경도된 담론들이 다른 담론과 배타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건 문제일 거다.

 

매일 찌질거리는 저도 고추가 커서 칭찬들었어요, 헤헤헤헤...



라캉이 사이비라고 해도 여기에서부터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발전시켜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용이다. 즉 상황에 맞게 활용되어야지,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윤형이 쓴 라캉 정신분석과 비평의 문제를 인용하자면...

논점을 정리하다 보니 너무 많아서 핵심적인 줄기를 짚어봐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라캉과 그에 기반한 비평활동을 공격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아이추판다에게 있어 이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아이추판다에게 이 확신은 확고한 것인데, 이것들은 따져보면 좀 안이한 소리들이다.

1) 라캉 이론은 사이비 과학이다.
2) 라캉 이론에 근거한 정치/문화평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여기서 1번은 이미 내가 '부록'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맞다고 봐야 한다. 사이비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고 과학이란 이야기 안 들으려면 잘못된 과학적 근거를 폐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2번은 좀 애매하다. 1번이 개념과 영역의 문제라면 2번은 실제 세계에서 미치는 영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한윤형의 문제제기를 둘로 나누어 바라보기를 권한다.

2-1. 라캉 이론에 근거한 정치/문화평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2-2. 라캉 이론의 오류 수정 없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권하는 행위가 문제가 된다.



한윤형이 내놓은 질문 2-1은 솔직히 모르겠고 별 관심도 없다. 일단 세력도 미미하고 학자층이 세상에 영향 미쳐봐야 얼마나 미칠까 싶은 정도니까. 하지만 2-2는 확실히 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검증이 되지 않은 학문을 아해들에게 알린다면 그 문제점 정도는 인식하면서 알려야 할 것 같은데, 라캉주의자들에게 라캉은 거의 교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은 '학문 그 자체'를 배우는 것보다 '학문하는 태도'를 배우는 곳인데 말이지.

물론 따지고 보면 학계에서 이런 힘싸움이 작용하지 않는 곳은 없다. 경제학과에서 좌파 경제학이 취급이나 되던가?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현실을 통해 균열이라도 간다. 그런데 라캉의 주장은 애초에 현실 적용능력이 원채 없다보니 무슨 주장을 해도 균열조차 가지 않는다. 즉 '검증 불가능'한 주장을 가지고와서 맹신해버리면 대체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차라리 '이건 종교에요'를 확실히 드러낸 채플 수업을 듣는 게 맞겠다.

물론 총재님은 진실이습죠, 가석방시켜서 월드컵을 출전시키면 우승도 가능합니다


마무리로 알렙의 글을 다시금 인용한다. 이 글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지만, 그렇다면 나도 뭐 굳이 이야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겠다.

진짜 문제는 정신분석을 집단적인 이론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구조와 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구조로부터 개인의 행위를 설명하는 것이나 개인의 이해로부터 집단의 특성으로 넘어가는 것 둘 다 그렇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이론들이 어떻게든 매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비해 정신분석을 사회 비평으로 확장시키는 이론들은 이 논리적인 비약에 대해 유비 이상의 논리적 정당화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정신분석은 원인과 증상을 연결시키는 '인과적'인 과학 이론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과 사회(혹은 집단적 행위)에서 동일한 구조와 메커니즘을 '읽어 내는' 인문적 해석학으로 변모해 버린다. 사실 이건 매우 편리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론 생산 방법이기도 하다. 자, 사회는 개인과 같다(이건 플라톤부터 알고 있던 거지?). 그래서 사회에도 무의식이 있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 제도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회적 행동의 무의식이다. 그래서 그 무의식의 회로는 욕망의 논리를 따른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의도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정신분석을 통해 보면 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저러한 것들을 욕망하는 행위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런 식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평론의 생산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문학이나 영화 비평과는 달리 (여기엔 작중인물이나 창작자등 '개별적인 인간'들에 대한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하다) 매개 없이 사회적 현상에 적용되는 정신분석적 설명은 실은 지적으로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정신분석이 상징을 읽어내는 심오한 해석학으로 변모하는 척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은 임상의 언어를 빌자면 일종의 진단인데, 그 진단에 맞춰서 적절한 처방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이 이론이 얼마나 그 진단을 책임질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라면 충분한가?

여기에 더더욱 문제가 되는 몽매주의자 라깡이 결합되면 상황은 더 가관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라깡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라깡을 공부하기 위해 사회 현상을 동원하는 일이 벌어진다. 왜 라깡 이론이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나요? 사회 현상을 라깡의 이론을 통해서 보라. 이건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는 것

 
4. 이택광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반지성주의'인가?

한 마디로 이택광은 문화비평을 할 때 근거를 찾기보다 끼워맞추는 논리비약이 심각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택광식 해석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여기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이 글을 쓰는 본인은 빠돌이다. 맨날 아이돌이나 보면서 침 흘리며 헤헤거리는 아저씨란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택광이 당최 아이돌에 대해서 뭘 알고 떠드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끼워맞추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윤형은 라캉 정신분석과 비평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를테면 소녀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택광의 글쓰기의 무의미함을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택광이 제시한 질문, (가령) “아저씨들은 왜 소녀시대를 욕망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심리학의 대체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이택광이 쓴 글보다 ‘단순한 가설’은 무한하게 내놓을 수 있다. “그냥.” // “유행이라서” // “유전자는 원래 남자에게 어리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게 하니까?” // “최초의 흥행 이후엔 그냥 자본에 의해 고고씽! 최초로 흥행한 이유는 멜로디를 막 분석해보면 답이 나올 듯?” //  다 좋은데 이 중에서 ‘심리학만으로’ 설명이 된 예시는 하나도 없다. 즉 ‘심리학만으로는’ 이택광이 비평한 대상의 내용을 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심리학을 ‘까기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심리학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렇게 심리학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이런저런 방법론을 활용한 복수의 비평이 나오는 것은 심리학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아이추판다가 하는 것처럼 정신분석담론을 전파하는 지식인들의 글에 나오는 사례 중 심리학적으로 오류임이 입증된 사례를 비판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이 오류의 비판만으로 비평 자체를 쓸모없는 일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다.



여기서 한윤형은 살짝 엇나가 있다. 라캉을 차용하는 문화비평을 완전히 폐기할 필요는 없지만, 이택광의 말이 제대로 된 설명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이다. 사람이 '설득' 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신뢰할만한 주장'이라고 간주하는 건 무리가 있다. 또 어떠한 주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 그보다 더 나은 설명이 굳이 나올 필요는 없다. 설명력이 없음만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택광식 글쓰기의 문제가 있다. 맘대로 떠드는 건 자유이지만 그것이 당최 설명력이 없다는 것. 대놓고 이야기해서 알지도 못하고, 공부도 안 하고 적당히 끼워맞춘다는 거다. 이택광의 소녀시대, 오빠들의 판타지를 보자. 너무 멋진 글이라 전문인용하겠다.

소녀시대를 볼 때마다 박진영이 죽 쒀서 이수만 줬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뮤직비디오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건 초창기 원더걸스 뮤직비디오 분위기이지 않은가. 배경을 미국으로 옮겨 놓은 이국적 미장센은 현실성을 탈색시키는 장치인데, 이를 통해 소녀시대에 대한 직접적 리비도의 투여를 은폐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중간에 Brand new sound, one more round, 정말 가사 내용 쩐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 뮤직비디오는 자신의 목적성을 드러낸다. 윤서인보다도 더 '솔직'하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이제 '다른' 소녀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소녀시대, 이제 좀 있으면 어른이야.' 

<해리 포터> 시리즈가 다른 판타지 장르와 다른 점은 성장소설의 원리를 판타지에 가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리 포터>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논리에 부합할 수 있었다. 소녀시대가 한국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해리 포터>가 보여줬던 것처럼, '성장'이라는 전형적인 교양소설의 주제를 오늘날 한국적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자기계발 담론으로 적절하게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심장>은 이 '새로운' 성장담론의 일단을 보여주는 토크쇼이다. 이 쇼를 통해 소녀시대나 걸그룹들은 '사연의 세계'를 창조하고, 뮤직비디오는 이 사연의 세계를 '승화'시킨 초자아의 목소리로 귀환하는 것이다. 이 초자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소녀시대를 다시 즐겨라!"라는 자본주의적 정언명령이다. 

흥미롭게도 이 뮤직비디오에서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이런 소녀시대를 소유할 수 있는 상상적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 공간은 모든 주이상스를 가질 수 있다고 우리가 '믿는' 아버지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 아버지야말로 모든 소녀시대의 멤버들을 독차지할 수 있는 원초적 권력이고, 우리가 제거해버린 금지의 기원이다. 원초적 아버지의 공간을 침범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자리를 감히 '내'가 차지할 수 없다는 원죄의식을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는 불러일으킨다. 소녀시대를 바라보는 '오빠들'의 갈등은 이런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소녀시대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안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 때문에 소녀시대를 갖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아는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금지는 이런 '비굴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빠들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잠시 긴 글에 지친 여러분을 위해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가독성을 높이는 것은 글쓴이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 아무리 쉽게 써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로 지금은 거의 떠나간 김우재가 내게 초파리 연구를 아무리 쉽게 보여준다고 해도 내게는 겉핥기 수준의 이해를 넘지 못한다.

그 경우 제반 지식을 몽땅 글에 드러내놓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글을 읽을 변태는 많지 않다. 그러니 이 부분은 적당히 손을 놓는 게 맞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과 학계를 상대로 하는 글은 엄연히 한계가 있다. 한국은 그 지식상이 특히 부실한 문제가 있는 것이고.

하지만 이택광의 위 글은 당최 근거가 없는 주장의 향연이다. 이택광을 옹호하는 분들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반지성주의', '난독증' 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오히려 이해 못 하겠다는 쪽이 정확하게 이 글을 읽었고, 반지성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반지성주의를 더욱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들풀님의 전문가의 방언과 대중의 자학을 인용해 보자.

나는 최근 화제가 된 한 글에 대한 논란에서, '단어'만 거론이 되고 논리가 거론되지 않는 것을 매우 희한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필자가 '어려운 단어'를 썼다고 질타하고 성내고 나무랐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이들 용어 탓, 혹은 이 용어들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없는 탓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 점이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 해당 글의 문제는 전문 용어를 썼다는 점이 아니라, 글의 논리가 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논리에 설득력이 없었다고 해도 된다. 어떻게 표현하든,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논리였다. 문제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어려운 단어가 출몰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논리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글에서 돌출하고 있는 개개의 개념 사이에 연결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 글에서 쓰인 특정 술어나 개념들을 쉬운 말로 바꾸어 놓더라도, 글은 여전히 이해불가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해당 글에 가득 찬 비논리적이고 즉흥적인 진술들의 결함이, 어려운 술어 덕분에 오히려 면책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논리로 보자면, 해당 글의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지만, 표피를 들추면 필자의 '쓰고자 하는 욕망' 이상의 것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러한 문장들이 일관되거나 합리적인 논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이런 상황을 아주 부드럽게 표현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다. 유로스님의 글은 이러한 점을 제대로 지적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도 원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놀라운 정성으로.



마찬가지로 이 글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로스님의 글 이택광, 문화비평, 블로그, 일기를 인용해보겠다. 참고로 링크된 글은 이택광의 분석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인문학이 언제나 모호하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인문학자들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단순명쾌하게 자신의 전공학문의 틀에 맞춰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외부 세계의 실제 행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그들이 배운 학문적인 메커니즘을 어떻게 세계 속에 대입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제 사회 속에서 사회를 인식하는 일반적인 사람들(뭐, 이를 대중이라고 불러도 좋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간극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공부'하는 '태도'가 되어있지 않다고 엄숙하게 꾸짖기까지 하는데, 우스울 뿐이다.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 단지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그 인문학적 문화비평이라는게, 실은 그리 단단한 기초 위에 있지 않은 것임을 본능적으로 꿰뚫을 뿐이다. 대중들이 인문학/문화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어려운 말을 써서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 문화비평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단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이 보이면 일단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일견 비판적인 경우라도, 글의 말미에서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말을 적당히 써가면서 가치를 인정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주기만 하면, 적어도 고깝게만 보진 않는다. 

이글루스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글루스에서 글쓰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학문을 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학문을 하기 위해 글을 쓰려 했다면, 적어도 지금의 이런 방식으로 쓰면 안 된다. 그들의 글은 학문적인 글이 갖춰야 할 명확함이나 세밀함, 엄밀함 등을 갖추지 못한 채 관념적인 말 사이를 적당히 미끄러져내리고 있다. 그렇게 쓴 글들은 학자들 개인의 '일기'로서는 기능할지 모르나 다른 '학문하려는 자세가 된 사람들'과 서로 학문적인 소통을 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고 설익은 글일 뿐이다.

태도의 문제는 오히려 학자 블로거들, 소위 블로그로 '학문' 비스무레한 행위가 가능하리라 믿는 블로거들에게 되물어주고 싶다. 그들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실제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의 태도에 입각해, 엄격하게 집필되고 있는지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글은 엉망이고, 학문을 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나태하다. 그저 '열심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보다도 더 불성실하다.

 
가뜩이나 긴 글에 인용까지 막 해제껴서 좀 미안하긴 한데 그만큼 이 글들이 이택광의 글이 가지는 문제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문화비평이건 문학비평이건 하고 싶으면 아무나 해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택광의 글들이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않고,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노력조차도 결여되어 있따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대중은 문화에 대해 이택광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택광의 끼워맞추기 글이 와닿을 리가 없다. 게다가 내용은 없는 주제에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꽤 많기 때문에 짜증까지 불러일으킨다.

직장 동료면 이렇게라도 하지...
 

이러니까 대중은 이택광을 거부하는 거다. 단순히 '반지성주의'로 몰만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택광 측의 책임감 문제다. 주장만 늘어놓고 근거가 없는데 왜 이를 받아들이란 말인가? 최소한 틀린 근거라도 있어야 이해하건 말건을 하는데, 이건 이해하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김우재의 아이유는 소녀시대의 주이상스다는 이러한 이택광식 글쓰기에 대한 신랄한 패러디로 보인다. 물론 이 글은 키보드워리어 김우재가 삭제했다(...)


5. 문화비평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는 훼이크고 이 부분은 잠시 미완으로 두고 싶다. 사실 이 글은 벌써 6개월 전에 작성된 글인데 다시 보니 아직 문화비평에 대해 내가 논할 깜냥은 아닌 것 같다. 최대한 근일 안에 쓰고 싶지만 솔직히 앞으로 벌려놓은 일도 많고,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지라 쪽팔려서 못 쓸 것 같다. 단지 내가 이런저런 관심은 꽤 있는지라, 혹시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같이 모임이라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진심이다! 홍성일 횽이 끼워주려나 ㅋㅋㅋ)

혹시라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이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이다. 난 남이 내 글 읽는 말든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지만, 글을 난잡하게 쓰기로 유명한 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정말 힘든 일이었을테니까. 여하튼 5번 문제에 대해 논하는 건 뒤로 미루고 지금까지의 관전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남기겠다.

이택광 : 남의 말 좀 들으삼. 들으려면 진작에 들었겠지만... ㅋㅋㅋ
한윤형 : 나 한윤형씨 글 좋아해서 책도 샀음. 그런데 이 쪽에 오면 왜 그런지 모르겠(...) ㅋㅋㅋ
아이추판다 : 나 판다씨 좋아하니까 끝까지 싸우삼... 이라고 하고 싶지만 더 생산적 글이나 쓰는 게 ㅋㅋㅋ
알렙 : 언제나 적절한 지적질을 해 주셔서 감사... ㅋㅋㅋ
김우재 : 초파리옹, 언제 돌아올 거임? ㅋㅋㅋ
저련 : 언제쯤 이 인간이 쓴 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임새는 언제나 ㅋㅋㅋ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이택광이 어쩌고보다도 진보계가 점점 이 쪽 계열 필자들을 좋아한다는 거다. 필자가 그렇게 없나? 블로그만 둘러봐도 진보계가 좋아하는 몇몇 필자들... 뭐 예를 들자면 이택광, 김현진, 박가분... 등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질이 넘친다. 종종 디씨에서도 발견된다. 왜 그렇게까지 '필진의 성(城)'을 쌓고 좋은 필진을 섭외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건가? 콘텐츠의 질보다 정치적 성향과 이너서클이 중시되는 건 정말이지, 답답한 일이다. 물론 그 누군가들은 신나하겠지만.


야~ 신난다~~~


최종후기... 아... 다 쓰고 나니까 속시원하기는 커녕 개뻘짓한 느낌이다. 내가 6개월 전에는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잉여력이 넘치는 인간이었구나. 요 몇 년 동안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한 달에 5권 정도씩은 책을 읽고 살았는데, 최근 10년만에 2개월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대한민국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냥 뭐랄까... 요즘 사는 게 좀 팍팍해요. 누구 나한테 술 좀 사줘. 헤헤헤...


그러니까... 넌 입 닥치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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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 읽었다능. 짤방이 끝까지 읽는 힘을 줬다능.
  2. 술 먹은 다음날 긴 글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군요. =_=
    머리가 아프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3.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힘이 크다고 한다'
    단, 이승환님처럼 텍스트에 걸맞은 이미지를 골라내는 능력이 하늘을 찌를 때.
    너무 재밌어요. :)
  4.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고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이런글은 왠지 읽는이로 하여금 피 끓는 오기와 묘한 승부욕을 자극하므로... 이글을 보면 요즘의 블로그 포스트들이 뭔가 짧고 쉽고 간결할 것에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처럼 재미있네요.) 완독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 숨이 막힐지경이네요.
  5. Noname
    이거 공감합니다. 이택광 씨는 라캉에 대해 비판만 들어오면 '반지성주의'의 발로라고 떠들기만 하지 제대로 된 반박을 하는 꼴을 못 봤습니다. 그뿐이면 말을 않겠는데 심지어는 '라캉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야말로 라캉의 이론이 그들의 무의식을 건드렸음을 방증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나와버리니 이건 뭐…….

    개인적으로 저 논쟁을 거의 초창기 때부터 지켜봤는데(아이추판다, 한윤형, 노정태 씨가 싸울 때부터) 그때부터 구도가 하나도 바뀌질 않더군요. 맨날 '라캉은 인문학이니까' 운운, '반지성주의' 운운. 이젠 오히려 이택광 씨 글 못 알아먹겠다는 사람이 더 짜증나요. "거봐! 역시 반지성주의!"라고 면피할 빌미를 자꾸 준단 말이죠.

    늘 하던 갑론을박이 떠드는 사람과 들이미는 학자들 이름만 바뀌면서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이젠 아주 관심을 끊어버릴까 합니다.
    • 2011.06.21 22:33 신고 [Edit/Del]
      저도 아마 더 이상 논쟁에 끼지 않을 것 같... 지만 이미 키워질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대단한 잉여인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픈 욕망이 듭니다.
      역시 저는 병신인가 봅니다(...)
  6. 이야~~ 좋은 글이넹...
    물론 짤방만 봤습니다만..
  7. 시시
    ㅎㅎ 글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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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을 까는 아이추판다를 까는 이들의 논리정신분석학을 까는 아이추판다를 까는 이들의 논리

Posted at 2011.06.17 23:33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집에 와도 할 일이 없으니 키워질이나 하게 된다. 아래 논쟁에 대한 일종의 관전평이라 보면 속 편하다.


화이팅, 키워들!!!


최근 정혜신 - 아이추판다 - 한윤형을 둘러싸고 이른바 관심법 대전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아이추판다는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 (정확히 3분 정도 보고 두세마디 나눴다) 지만 대충 아이추판다의 대답은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관심법의 대가거든. 내 말이 틀리면 판다가 댓글 달겠지.

 일단 첫 번째 논점은 정혜신이 정신분석을 전제에 깐 인간이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당연함.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아니라고 한다면 사기꾼이고, 맞다고 한다면 뭐 그럴 수 있는 거. 다음 문제로 정혜신이 심리학을 커버할 수 있는 양반이냐는 건데 그건 꽤 애매하다. 정혜신은 의대 출신이다. 내가 의대 코스를 잘 몰라서 뭐라 하기는 힘든데 어찌 되었든 전공자인 아이추판다만큼 정통할 것 같지는 않다. 실제 판다의 지적처럼 정혜신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판다가 짜증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판다와 한윤형이 부딪히는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한윤형 : 판다색히, 넌 왜 자꾸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을 대체하려 한다는 가정을 두는 거냐? 무슨 관심법 쓰냐? 그러니까 자꾸 억지스러운 결론이 도출되는 거고 너의 논증은 유령 논증에 불과해.
  
아이추판다 : 아... ㅅㅂ... 그런 가정은 없고 난 그냥 저 과학적 근거 없는 정신분석학 하는 애들이 왜 자꾸 과학을 까고 심리학을 왜곡시키느냐는 거지. 그래도 우리는 최소한 근거 갖고 까는데 쟤네들은 근거도 제대로 없으면서, 근거가 튼실한 심리학에 문제가 있다고 떠들며, 결정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시키고 있잖아.



내가 맘대로 내놓은 대답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한윤형이 관심법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싶다. 아이추판다가 부분적 몇 마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끌어내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저 몇 마디로 정혜신이 과학적 심리학이나 약물 치료를 완전히 부정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적어도 한윤형의 지적질 중 이 부분은 맞다. 하지만 아이추판다는 이런 극단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았다. 역시 플라톤의 대화로 풀어나가자면...

한윤형 : 븅신아. 정혜신은 그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물치료가 더 맞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담치료가 더 맞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니까? 넌 왜 자꾸 극단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심리학 대체라는 상황을 몰고가고,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사람에게 정신분석학이 무력하니 사이비라고 그러니? 라캉이야 뭐 어느 정도 말이 먹힐지 몰라도 정혜신은 그냥 정신과 의사잖아?

아이추판다 : 꼴통아... 누가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을 대체하려는 운동이라도 있었대? 어차피 정신분석학 써먹어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지 밥그릇 어떻게 돌리든 난 상관 안 함. ㄲㄲ. 근데 정혜신의 조언이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혼동한 채 나오고 있고, 토대를 쌓아 온 과학적 심리학의 무지에 기반한 발언이잖아. 그러면서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간접적으로 심리학을 까대니 전공자 입장에서 빡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근데 사실 정신분석학이야말로 정말 임상치료에서의 근거가 희박하거든요?



정신분석학이 부르주아 학문인지의 이야기에서는 좀 엉뚱한 데로 새어버린다. 판다가 이야기하는 논지는 정신분석학이 부르주아적이라 진보적일 수 없다는 거고, 한윤형은 학문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일정 정도 진보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진보적이라고 무조건 좋을 것도 없다고 본다.

이 부분은 한윤형의 말에 동감한다. 다만 판다는 (내가 또 한 번 관심법을 쓰자면) 정신분석학에 대한 짜증으로 '부르주아 학문하면서 진보질 하네'라고 정신분석학을 디스하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그가 '부르주아적'이라 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비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현실 기여 측면에서 중산층 이상에게 봉사하는 것이고, 역사적 측면에서 근거에 기대지 않은 낭만적 학문이라는 점이이다. 한윤형의 비판은 전자에는 적실할 수 있지만, 후자까지 커버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뭐 알아서들 해결하시길...

한윤형 : ㅋㅋ 자본에 봉사하면서도 진보적인 행위 할 수 있는 거 아님? 뭐 학문 전체를 싸맴?

아이추판다 : 아이쿠, 차라리 부동산 투기질하면서 기부하세요. 정혜신이 얼마 받는지 알기나 함? ㅋㅋ

한윤형 : 정신분석학이 부르주아적 학문이라는 건 오케이. 근데 이제는 니가 공부하는 심리학까지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하네. 상대 공격 논거만 있으면 팀킬까지 하삼? ㅋㅋㅋ

아이추판다 : ㅇㅇ. 나도 부르주아 학문 공부함. 근데 논리만 서면 되지, 팀킬이 어때서? 니 논리나 똑바로 세우삼. ㅋㅋㅋ

한윤형 : 그래, 정신분석학 부르주아 학문이라 하자. 그렇게 따지면 돈 많이 들이는 핀란드 교육보다 교실에 애들 몰아넣고 패면서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이 진보적일 수도 있겠네?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보면 어떻고 보수면 어떻냐는 거야. 진보라고 성과가 좋은 게 아니잖아. ㅇㅋ?

아이추판다 : 나도 그 부분에서 진보건 보수건 관심 없음. 문제는 어쨌든 정책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거기에 과학적 프로세스는 필요한 거잖아. 근데 같은 부르주아 학문이라 쳐도 정신분석학은 별 근거도 없이 노가리를 까대는 거고, 심리학은 과학을 기반에 두고 있으니까 이걸 어디에든 제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거지.



혹자에게는 판다가 전체 글의 맥락에서 너무 지엽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짜증이 날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정혜신과 젊은이들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은 별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의 어디를 보든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엽적인 부분의 논리가 옳은지 그른지이고 판다가 좀 오버는 해도 기본적인 논리는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난 판다같은 양반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체 어디에서 정신분석학이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한국에서 심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를 알 수 있겠는가? 이는 단순히 정신분석학 (정확히는 한국에서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이는 이들) 이 문제임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이비 과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학자를 까봐야 그저 빈정거림이나 돌아오는 세상에서, 자신에게 도움도 안 될 글을 열심히 지르고 있다.

이런 키워야말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크고 아름다운 덕후가 아닐까 한다.  


PS. 그런 점에서 떠나간 키보드워리어 김우재가 그립다. 우재횽, 돌아와... ㅠㅠ
PS2. 좀 까기는 했지만 나 한윤형 꽤 좋아한다. 근데 이 바운더리만 들어오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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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오 적절한 요점정리. "근데 이 바운더리만 들어오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음"에 백표 추가합니다. 과학을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 경향이 좀;;;
  2. 감사. 이만한 정리가 없는 듯. 근데 저도 정신분석이라는 게 과학적인 근거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어떤 로망 같은 게 있어요. 제 주변의 문학도들도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관련이 얼마나 있는 예인지 모르겠지만 『꿈의 해석』을 읽다가 좀 황당했던 부분이 기억나네요: "어떤 분이 자신이 꾼 끔찍한 꿈을 이야기해주며 '꿈은 소원성취'라는 나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꿈은 소원성취'라는 나의 주장이 반박되길 원해서 그 꿈을 꾼 것이니 그 꿈은 당신의 소원성취요."
    이런 논리라면 프로이트는 어떤 토론에서도 지지 않을 수 있었겠다 싶어요.
    • 2011.06.21 22:34 신고 [Edit/Del]
      저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융처럼 좀 신비주의적으로 나가는 게 특히...
      그런데 유사과학 쪽으로 나가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ㅎㅎ
  3. 아거
    역쉬.. 정리의 달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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