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의 증명실력의 증명

Posted at 2006. 7. 9. 02:02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예전 알고 지내던 사람 중 늘상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공무원 된다고 하는 사람이나 대기업 간다고 하는 사람들 다 한심하다며 자신은 경영에 대해 잘 아니까 그렇게 한심하게 살지 않고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던 어느 날 갑자기 번역을 하겠다고 하며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번역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영어 논문지도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몇년 째 말만 나오는 사업은 안 하냐고 하니 자신은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취미생활조로 하면서 사업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러던 그가 결국 이들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전혀 엉뚱한 길이었다.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늘상 스스로가 잣대가 되어 모든 것을 평가했다는 점이었을테다.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인격을 훌륭히 평가하니 반대로 사회나 다른 이들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결국 이 때문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길에서 멀어진 것이다.

비록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자기 스스로가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실력이 사회에서 실현되지 않는 이유로 사회의 시스템을 탓한다. 일정 정도는 사실일수도 있다. 실력은 있지만 재야에 파묻힌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실력이 없으나 운이 좋아서, 혹은 주류 시스템에 편승해 사회적 지위를 얻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훌륭하게 각 구성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과 도덕성을 갖췄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점이 있다. 실력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즉 스스로가 잘 한다고 해서 잘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잘 한다고 인정해야 잘 하는 것이며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남이 좋은 사람이라 인정해야 좋은 사람인 것이다.

이런 일이 조금은 잔인해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판단은 대개 이러하며 또 이러해야만 한다. 다소 엄격한 경우이겠으나 우리가 왜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복제하지 못했다고 하는가? 우리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의 설명이 과학의 규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이라는 규준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고 있는 것은 그것이 한계를 가짐에도 그러지 않을 경우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에서 실력을 따지는 경우 과학계만큼 엄격하게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이처럼 사회에서 공적으로 받아들이는 잣대를 가지고 평가할 경우 앞에서 말한 시스템의 한계라는 문제점은 잔존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정말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생각해보라. 누군가가 갑자기 대학에 찾아와 자신이 경제학 잘 한다고 교수 채용해달라고 하거나 기업 면접에서 일단 발탁하면 잘 할테니 발탁부터 하라고 한다면 인사담당이 받아들일 리 만무할 것이다.

낮은 가능성이겠지만 더 큰 일에 매진할 수 있을 사람에게 더 나은 사회 시스템에 끼어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정말 억울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는 오직 인재발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재를 발탁할 때 나름의 탐색비용을 염두해두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토익의 진실성을 전혀 알지 못해 토익 점수를 보는 게 아니다. 인재발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효율성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인재를 위해 그 많은 인원에게 영어심층면접을 실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필터링을 위해 토익 등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꼭 주류의 길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실력은 성과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주류건 비주류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현실을 두고 이야기하면 비주류라면 더욱 이러해야 한다. 비주류를 택한 이상 주류보다 몇 배는 더 나은 성과물을 내놓아야 인정받는 게 우리 세상일테니. 물론 이가 대단히 부당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송곳이 예리해도 주머니가 두꺼운 상황을 보면 나 역시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실력은 성과물만이 대변한다는 생각을 버려서는 사회는 물론 자기 자신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전에 내공을 쌓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실력은 아니다. 어쩌면 수 많은 이름있는 학자들 이전에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뚜렷하게 이야기하면 빌 게이츠 이전에 그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진 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은 생각에 머물러 있을 때는 죽은 것이지만 그것이 발현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현실이 된다.


ps. 내 학점은 아직 2점대다, 얼른 업데이트 좀 되라 -_-... 문제는 되어봤자 끔찍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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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아, 공감해요. 선생님들에게 아무리 사바사바를 잘해도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오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말씀이시죠? -_- ..아, 이거랑은 좀 다른가요? ..(...)


    근데, 요새 왜 이렇게 저와 이글루스 행동 반경이 같으신 겁니까. -_- 어째 제가 가는 곳마다 승환님의 덧글이 보입니다. ㅠ
  2. 이방인
    "실력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정체성"이라.....
    옳은 말씀이긴 하나 동시에 무서운 말씀이군요.
  3. 오랜만입니다... ^^
    간만에 샤샥 돌아왔습니다...
    2점대 수준급 투수의 방어율을 가진 학점...
    동병상련의 아픔이 싸하게 느껴집니다... ㅠㅠ
    다행히 저희 학교는 취업시 0.3이 추가되어 다행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게 옳은 길이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실상 사회는
    인정받는 메이저의 길을 걸어야... 평범하게나마
    살 수 있는 현실이니까요...
    서글프죠... 지금의 대학생들에겐... 훗...
    • 2006.07.10 22:57 [Edit/Del]
      하하, 반갑습니다. 뚝심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역시 매일같이 느낍니다. 그저 삶으로 말없이 증명하는 수밖에 없겠죠 ^^

      지금의 대학생... 제 모습을 보면 정말 안습 ㅡ.ㅡ;;
  4. 저는 보통 서재응과 김병현 방어율 사이를 마크하는데,(요즘 방어율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변에 박찬호방어율을 마크하는 아해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더군요.

    신해철은 재학시절, 선동열 일본 마무리시절 방어율을 마크했다고 하더군요.-_-;
    • 2006.07.11 17:36 [Edit/Del]
      신해철은 집이 빵빵한데다가 그 당시 일류대생은 별로 학점 걱정할 시대도 아니었겠죠 -_- 신해철이 실력 이상으로 오버평가되는 것은 있지만 기획사의 지시에 따르는 앵무새 연예인들만 득시글거리는 세상에 신해철만한 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재응, 김병현 요즘 다 안 좋던데 -_- 장학생이신가요?
      (설마 서재응의 AL 방어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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