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은 인문학만의 것일까?교양은 인문학만의 것일까?

Posted at 2010. 1. 20. 13:09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오랜만에 쓴 글이 민노씨보다 길고 aleph씨보다 불친절한 글이지만 알아서 읽어 주시길... 읽기 싫음 말고 뭐...

교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골치 아프다. 현재 '교양 있음'은 '돈 되는 것 외의 무언가를 알거나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으로 많이 쓰인다. 예로 문학에 대해 좀 알면 교양 있는 사람으로 칭해진다. 또 바이올린을 잘 켜도 교양있는 사람으로 칭해진다. 여기에 한 가지 필수조건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제도적으로 정착해 뽀대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소녀게임 덕후를 가지고 '교양 있다'고 하지 않는다. 또 '야동의 황제'를 가지고서도 '교양 있다'고 하지 않는다. 

조교수까지 올라 간 야동왕, 그러나 돈이 안 되 본업이 아닌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물론 개념 가지고 장난 칠 생각은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어떤 개념이 기존 개념이 가지고 있는 범위를 넘어 널리 쓰인다면 그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즉 기존의 '사전적 교양'이 가지고 있는 뜻만이 '교양'의 올바른 쓰임이고, 요즘 쓰이는 '적당히 된장맛나는 교양'은 '교양'의 올바른 쓰임이 아니란 소리는 옳지 않다. 둘 다 교양이고 교양이 한 가지 뜻만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 글의 출발은 나름 좋아하는 논객인 한윤형씨의 '우리 시대에도 '교양'은 가능할까? 라는 글이다. 그러나 한윤형씨가 바라보는 교양은 조금 아쉽다. 대개의 인문학도가 그러하듯, 그가 바라보는 교양도 '인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가능한 ‘교양’에 대한 두 가지 정의(definition)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교양지식을 그냥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취미생활로 만드는 것이다. 가령 ‘회사원 철학자’로 유명한 강유원은 말한다. 2천 년 전 그리스에서 쓰인 책이 지금 현실에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멍청한 거라고. 여기서 강유원과 그의 지지자들은 ‘인문 오타쿠’들로 전락(?)한다. 물론 나는 서구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해 ‘쓸모’를 묻는 이들이 존재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질문은 인문학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의 ‘성질’을 긁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인문학의 쓸모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포기해서는 안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아 돌아서라도 쓸모가 있기 때문에 인류가 이 돈 안드는 한심한 취미생활을 수천년 간 지속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필요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그 필요성은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재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형이상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질문에 대해 요상한 대답을 내렸다가는 신기한 사람이 된다. 가령 빵상 아줌마와 허경영 본좌님을 보라. 그분들은 자신들만의 확고한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이런 길로 빠지지 않고 진짜로 ‘앎에 대한 앎’을 가지고 싶다면 필요한 게 많다.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비평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비평의 재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위 문단에서 드러나듯 한윤형씨는 '인문학'과 '교양'을 사실상 등치시킨다. 물론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과 '현실을 위한 인문학'으로 구별지으며 차별점을 두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말하는 교양은 여전히 '인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아래 문단에서도 '비평'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여전히 '앎에 대한 앎', 즉 '형이상학'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교양'을 인문학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양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에 입각, 개발하여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이다.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가 '덕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과 결과' 라면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에 입각, 개발'은 '올바른 판단과 그것을 위한 학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습은 언제나 중요하다... 특히 몸으로 하는 그것은...


덕 있는 인간이 되는 일이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니 넘어가자. 내가 언급하고픈 부분은 '올바른 판단과 학습' 쪽이다. 올바른 판단이란 즉 '사리분별'이다. 그렇다면 '분별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칠게나마 두 층을 나누어 생각해본다면 첫 번째는 '올바른 가치'이며 두 번째는 사실에 부합하는지의 '진위 판별'이다. 

전자인 '가치 판단'은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가치'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어떠한 가치가 더 우월함은 결국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동성애'나 '줄기세포'와 같은 인간과 관련된 것도 그렇고, 인간 외 존재를 다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예로 이명박을 반병신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팼다고 가정해보자. 혹자는 '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동물이므로 괜찮아'라 할 테고 혹자는 '그래도 동물학대는 안 됨'이라고 할 테다. 여기에는 온갖 윤리학적 논의가 일어날 수 있겠으나 결국 '내가 싫음'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적 상대주의로 볼 수는 없기에 인간과 세계에 대해 성찰하는 인문학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때리기 게임은 여기서 즐길 수 있다. 난이도 꽤 높음...


하지만 인문학은 '진위 판별'과는 거리가 있다. 니가 말한 것이 옳은지, 내 생각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인문학은 입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과학'이며, 과학 역시 이 시대의 교양으로 널리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과학 만능론을 주창함도, 과학 잡지식을 잔뜩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위를 가리기 위한 방법, 규준으로서의 과학'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어느 정도는 '과학적 마인드'가 갖춰져 있어야만 충분한 분별력을 가질 수 있다. 

이명박을 비판할 때를 생각해 보자. 다들 '4대강은 나쁘다'라고 이야기할 때 '왜'라는 물음에서 인문학은 답을 줄 수 없다. '4대강이 환경을 파괴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는 '4대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건 인문학이 아닌 과학이다. 물론 과학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수단에 비하면 '좀 더' 신뢰가 가는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과학이 오용되어 사실과 반대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한다면 좀 미안하지만, 그 잘못된 결과물을 깨는 것조차 과학이 수행할 것이지, 인문학이 수행할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전문가 수준으로 수치를 해석할 능력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뻘짓을 판별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각은 분명히 필요하다. 좋든 싫든 우리가 근거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이미 상당수가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 즉 모든 학문의 기반에 일정 정도 철학이 깔려 있듯 현재 각종 사회과학은 과학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비판을 위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전제될 필요가 있다. 

앞서가는 쿨가이, 하지만 현실은 지못미


'이론 없는 실천이 맹목적이라면,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문학 없는 과학이 맹목적이라면, 과학 없는 인문학은 공허하다'라고도 바꿔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과학 없다고 인문학 막장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치 판단과 사실 판단,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과학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이자 교양이 아닐까 한다. 이가 없이는 많은 상황에서 절대 '분별력' 있는 판단을 내리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1. 절대적인 분별력이 없으니 이래저래 다툼이..
  2. 뷁뷁 ㅎㅎ
    간만에 아주 좋은 글입니다.. 호호호... 하지만 인문학이 강조 되는 건 뭔가의 문제점을 인식하는데 조차 둔감한 현대인들의 습성때문이 아닐지.. 수령님의 말대로 과학이 없는 인문학은 공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현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제 하였을 때의 문제이고.. 예초에 기본적인 '생각하는 능력'조차 없으니 인문학이 '교양'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제 생각입니다..
    • 2010.01.21 13:33 신고 [Edit/Del]
      전 꼭 '인문학'을 통해 이를 얻어야 함에 좀 반대하는 입장이라서요. 여느 학문이나 기본적인 인문학은 그 안에 녹아들어 있고, 사례를 통해서도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 아거
    "오랜만에 쓴 글이 민노씨보다 길고 aleph씨보다 불친절한 글.."을 보고 위에서 아래로 바로 죽 내렸습니다. ㅎ ㅎ
    그런데 김규항님은 언급이 안됐는데 왜 태그에 있는걸까요?
  4. 저련
    괜찮음. 나보다 짧고 친절하면 된거임.
  5. "I might be wrong, so prove me wrong"으로 요약되는 과학적 사고법이라던가 하는 건 좀 교양으로 삼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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