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MVP, 기록 속 MVP기억 속 MVP, 기록 속 MVP
Posted at 2010. 2. 7. 20:29 | Posted in 정력은국력 체육부
너무 아파서 기운도 없는지라 예전에 쓰던 글이나 정리. 사실 이런 글 100개는 더 있는데 이미 다 쉰 떡밥인지라;

그래도 낚시는 계속되어야 하기에-_-...
한국시리즈(KS) 7차전이 끝나고 기아 우승 후, 나지완이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나서 논란이 좀 있었다. 로페즈의 KS 성적이 너무 좋았기 때문. 3경기 등판 17과 2/3이닝을 던지고 2승에 1.53의 엄청난 자책을 기록했으니 항의가 있을만도 하다.
김홍석 씨는 61표 중 41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기자들을 질탄하고 있다. 기자들은 나지완에게 2/3 이상의 표를 던졌다고 하지만, 역으로 팬들은 2/3 이상이 로페즈 MVP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미안한 이야기인데 나도 7차전을 거의 다 봤지만 기억 속에 로페즈는 없다. 나지완의 마지막 홈런과 그 순간의 전율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난 위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MVP라는 개념부터가 사실 꽤나 애매한 개념이다. Most Valuable Player, 그러니까 직역하면 '가장 가치 있는 선수'란 소리다. 그런데 '가치'라는 게 딱 뭐라 정의할 수 있는 객관적 개념이 아니다. 최고 연봉자와 최다 홈런 선수는 객관적이지만 '가치 있는'에 객관은 없다.
각하의 뇌구조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만 이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닥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래서일까? 한국과 미국만 해도 MVP의 척도가 많이 다르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팀 성적을 중시한다. 지난 메이저리그 20년 동안 MVP 40명 중 8명만이 플레이오프 탈락 팀에서 나왔다. 야구는 타 스포츠에 비해 선수 한 명의 영향력이 매우 미미한 종목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30팀 중 단지 8팀만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럼에도 팀 성적을 중시했기에 최근 20년 동안 80%의 MVP가 플레이오프 진출 팀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다지 팀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MVP를 뽑는 편이다. 28년 간 3위 이하 팀에서 배출된 MVP는 무려 10명이며 2위 팀에서 배출된 MVP는 8명, 1위 팀에서는 10명이다. 메이저리그는 일단 플레이오프 진출하면 1위건 와일드카드건 별반 이득이 없는 데 반해 (그 팀들끼리 토너먼트를 치룬다) 한국은 1위의 어드벤티지가 엄청난 걸 생각하면 (3-4위간 준플레이오프, 승자와 2위간 플레이오프) 팀 성적에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농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단 한국에서 13시즌 동안 10차례 정규리그 우승 팀에서 MVP를 배출했지만 기본적으로 선수 개인 성적을 중시했다. 그 일례로 지난 시즌 MVP는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한 (프로농구는 10팀 중 무려 6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KT&G의 주희정이었다. 출장시간 1위에 국내 선수 중 득점 2위, 리바운드 5위,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를 차지했으니 사실상 국내 선수 중 최고 성적을 올렸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주희정이 미국에서 이런 성적을 냈다면 이야기가 꽤 많이 달랐을 것이다. 최근 20년 간 93-94의 하킴 올라주원, 01-02시즌의 팀 던컨, 05-06 시즌의 스티브 내시를 제외한다면 최소한 (동부or서부)지구 선두 팀에서 MVP가 나왔다. NBA 팀이 30개나 됨을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이 광고가 유행이더라, 짤방 찾기도 귀찮은 판에... 근데 얘는 왠 정의의 사도인 척임;;;
이처럼 MVP를 뽑는 기준은 다양하다. 미국처럼 팀이 이겨야만 가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반면, 한국처럼 혼자서라도 분발해도 가치 있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로페즈가 호투하며 팀을 이끌어 온 것도 가치 있겠지만, 반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을 정리한 나지완이 가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걸 결정할 건 개인의 주관일 따름이다.
내가 여러 스포츠를 보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시리즈가 둘 있는데 하나는 이번 나지완이 끝내기 홈런으로 정리한 2009 한국시리즈이고, 또 하나는 97-98시즌 프로농구 플레이오프이다. 현대가 기아를 4승 3패로 승리했으나, 내 기억에는 허재가 온 몸에 붕대 감고 나와서 원맨쇼하는 장면만 남았고, 허재는 결국 준우승하고도 MVP를 수상했다.
흔히들 스포츠는 '기록이 남는다'고 하지만 실상 우리 뇌에 남는 건 '기록'이 아닌 '기억'이다. 기억은 기록보다 강렬하며, 때로는 자제해야 할 필요다. 예로 형사 처벌같은 경우 남은 기록보다 개인의 주관만을 내세운다면 그 체계는 붕괴될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와 같은 게임이자 축제에서 기억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끝나고 MVP 투표인단의 머리 속에 남은 게 나지완일까, 로페즈일까? 로페즈가 MVP를 수상한다고 한들 조금도 이상할 게 없듯이, 나지완이 MVP를 수상한 사실 역시 절대 흠이 될 일이 아니다. 기억은 기록보다 강하고 또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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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시다니 몸조리 잘하시길... 늙어서 아프면 아무도 안챙겨줘요..ㅋㅋㅋ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ㅋ"
순수한 의미에 스포츠라....지난 무한도전에서 나온 권투소녀들이 생각나네요~~
그러라고 MVP를 선정하는 사람들을 특정 자격을 지닌 사람들로 제한하는 걸 테고. MVP가 인기 투포가 되어선 안 될 테니. 인기와 아주 무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긴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