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의도 찾기'는 이제 그만'숨은 의도 찾기'는 이제 그만

Posted at 2010. 11. 29. 14:13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아는 게 없어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지만 본성이 호사가라 지겹도록 펼쳐지는 라깡 및 이택광 씨에 대한 생각 정리... 개인적으로 이택광 씨가 나름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또 학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은 학계에서 본받을만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정신분석학이란 이름으로 쉽사리 상대방의 의도를 단정하고 논리를 펼치는 모습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쓰려다가 이제야 씀;;;


정신분석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낸다는 행위가 매우 매력적으로 비추어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도를 추측하여 쓰는 글들은 그럴듯한 사실이나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다보니 반증조차 불가능한 이야기이거나, 심지어 근거로 삼는 이론이 이미 부정된 것일 때가 많다. 쓰는 건 자유이겠지만 보는 입장에서 '추측한 의도'를 근거삼고 있는지 '사실관계'를 근거삼고 있는지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면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가지고 귀신같이 범인을 찾는 일이 생긴다. 이른바 '프로파일링'을 하는 건데 실제로 수사현장에서 잘 행해지는 일이다. 물론 드라마처럼 잘 맞아 떨어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 힘든 작업은 과학적인 방법론이 자리를 잡으며 점점 발전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프로파일링은 깊숙히 들어가면 프로이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세기 내내 심리학자들은 범죄적 인성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나온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고 성적인 이상행동을 설명하는 오늘날의 심리학적 기반은 여전히 프로이트 이론들이다. <프로파일링, 브라이언 이니스>

그러나 기반이 어디에 있든 실제 활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은 과학적으로 수없이 반박당했다. 위 책에서도 '프로이트 이론은 범죄적 인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현대 심리학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많은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요약하자면 프로파일링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FBI에서 발간한 보고서와 퇴임 심리분석가들을 통해 그들의 수많은 성공사례가 대중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면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색적으로 부각되는 연속범죄의 범인을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했음은 그만큼 프로파일링이 '많은 자료'를 요구함을 알 수 있다. 약간의 범죄로는 그 단초를 찾기가 힘든 것이니. 더군다나 이들이 말하는 것은 대부분 성공사례이고, 실패사례 역시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수없이 프로파일링을 한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상대방의 숨은 의도를 추측한다. 인간은 파편화된 사실 속에서 의미를 생산해낸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 그대로 거기까지다. 의도를 추측하는 건 항상 인과적 논리를 '구성'하려는 인간 뇌의 당연한 시도이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입 밖에 내놓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수사가 용인되는 정치권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사회에서 이래서 생기는 문제야 한둘이 아닐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딱지 붙이기'가 여기에 해당되는 문제 아니겠는가?


저 놈은 좌빨이니까...


저 놈은 전라디언이니까...


저 놈은 사기꾼이니까...


셋 중에 하나는 맞는 것 같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이야기하는 순간 모든 것은 꼬여버린다. 대부분의 의도 추정은 근거가 부족하다. 의도를 밝히는 것은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추측'이다. 심지어 당사자가 그렇게 이야기한 경우에도 그것을 확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를 놓고 왈가왈부함은 호사가들에게는 즐거운 일이겠으나 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다. 뭐 떠드는 거야 자기 자유겠지만 많은 경우 의도 파악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사안 자체의 논점을 희석화시키기 쉽다. 위의 딱지 붙이기처럼 어느새 문제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의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에 바빠진다. 연평도 피격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래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해 보자. 


한 쪽은 쉽게 의도를 가정하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면...

나름대로 이 사건은 '논리'를 갖추었고 북한의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에 큰일은 아니다. 다만 민간인 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북한을 평화세력이나 인민의 벗으로 보기에 어렵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11/23

북한은 지금 당장 전쟁을 할 생각은 없지만 '전쟁이 최후의 정치'라는 슈미트적 명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 노선을 혁명적이라고 간주하는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난관에 봉착했던 세계혁명의 문제점이 다시 반복 중이다. 11/25

조지워싱턴호가 굳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작전을 벌이겠다는 이유가 뻔하지 않는가. 한 마디로 남의 집 앞마당에 들어가서 세간살이 다 들여다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11/28 <이택광 트위터>


다른 한 쪽은 사실관계를 통한 논리 정립을 꾀하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매우 오래전부터 반복해서 예고된 것이었으며 남측은 국지전적 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북의 오랜 경고에 의하면 전면전 불사, 세계평화 위협의 서막이다. 다음을 보자. 

이제 다시 서해해상에서 무장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난 시기의 서해교전과는 대비할 수 없는 싸움으로 될 것이며 지상과 공중을 포함한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우리 민족의 생사는 물론 세계평화도 엄중히 위협하게 될 것이다. - 《로동신문》, 2006.6.25; 조선신보 재인용

위 인용문은 이번 연평도포격 관련 논평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6월 25일 <노동신문>의 기사이다. 북은 연평도포격을 통해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오랫동안 참고 인내해 왔으며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미 항공모함이 서해를 향해 오고 있고 북의 포문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교전이 발생했을 때 마다 북측 정권의 의도부터 추리하는 맥락읽기가 앞서나갔지만 이같은 의도 읽기는 정작 사건 자체의 본질을 가리는 역할만 해왔다. 맥락을 짚어 숨겨진 의도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나 공개되고 확인된 사실로부터 사건의 경위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통일뉴스, 이시우 기자>


당연히 후자 쪽의 과정은 지난한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후도 글이 꽤나 - 이 글만큼이나 - 긴데 읽기도 귀찮고 글 쓰기도 귀찮았을테고 글을 쓰는 과정의 자료 수집과 분석은 더욱 힘들었을테다. 그럼에도 '숨은 의도 찾기'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니, 아마도 꽤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기 쉬울 것이다. 의도의 명확함은 서사구조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인식구조상 더욱 와닿기 때문이다. 덤으로 정치적 성향의 유사성이 겹쳐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고.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연쇄적 사실들을 억지 설명이나 논리적 연결고리, 즉 화살표에서 벗어나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가리킨다. 설명은 사실들을 엮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기억하기가 용이해지며 납득하기가 용이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해했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그 순간, 이러한 습성은 과녁을 빗나간다. <블랙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최악의 경우는 그 '추측한 의도'를 적극적으로 믿는 경우에, 더군다나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자 할 때 생겨난다. 미소녀든, 모에든 모든 것의 이론화는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있고 그것을 근거삼아야 하는데 이러다보면 새롭게 구성되는 이론은 필연적으로 협소해질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와 근거들을 무시할 때는 상상의 나래만이 펼쳐질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학자'이기보다 '신도'에 가까울 것이다.

그나마 신이 신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심지어 내가 방금 인용한 글을 통한 나름의 인과관계 구성도 그럭저럭 설득력 있지 않은가? 이유는 이것도 근거보다는 나름 서사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상당히 상대방의 숨은 의도 찾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제대로 그 논리를 까고자 한다면 이택광씨의 트윗이 왜 사실관계에 어긋나는지 조목조목 비판해야 옳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내 잘못이 맞다. 그렇다면 과연 많은 이들이 추종하고 있는 이택광씨의 글은 어떠한지도 한 번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정 근거 까기에 관심이 있다면 아이추판다 오빠의 글들을 참조하고... 요즘은 이 분도 일종의 반 라깡 덕후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PS. 간만에 긴 글인데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댓글 달지 말았으면 한다. 나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에라이, 누가 술이나 사 줘...


  1. randoll
    숨은의도를 찾기전에 술부터 사달라는 고도의 구걸글
  2. 간만에(?) 좋은글입니다. 수령님~!

    ---------------------

    본인이 수읽기에 능하다 하여..
    남에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물론 옆에서 신경 써주는 일이야
    고마운 일이지만...

    억지추측까지 해주시는 분들은
    솔직히 사양하고 싶습니다 ㅠㅠ
  3. 수령님의 지적능력에 또한번 감탄??!! ㅋ

    블로그질을 한지 얼마안되었고 또한 라깡에 대해선 이름정도 간신히 아는 정도라.....
    스스로의 무지함을 발견하여 기쁘고 또한 유익한 포스팅을 읽어서 기쁩니다 ㅋㅋㅋㅋ

    여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것 역시 자신의 색수상행식이 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전 역시 자신의 내부로 파고드는 쪽을 택하고 싶군요..

    자신도 모르는데 하물며 남이야...
  4. 방귀를 꼈더니 그 방귀에 대한 숨은의도를 찾다보니 이 새끼 날 죽이려고 생화확공격을 했다고 ...... ㅡㅡ;
  5. 술 먹고 와서 읽으니까 어려워요
  6. 술 먹고 와서 읽으니까 어려워요 (2)
  7. 지나가며
    일단 긴거는...할말 없음...ㅡㅡ...
  8. 마오
    전에 술을 마시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내용과 비슷하네... 왜 김기덕 영화를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와...

    영화를 보면서 "우와!! 예술이야~~"라고 혼자서 느끼는건 자유지만, 그것이 예술이라고 증명하는 것은 개인의 인식과는 별개과정을 거쳐야 한다는거... 물론 개인의 인식에 기반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세상에 예술이 아닌 것은 없거나, 투표해서 정해야 하겠지...

    그 날은 술이 올라서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는...
  9. 문득 허세쩌는 댓글을 남겼다는 것을 깨달아 졸라게 쪽팔린 1인
  10. 대우일렉초미녀
    간만에 유익한 글을 만나네요
    저의 멘토가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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