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정체성의 허상과 모자이크적 인식단일 정체성의 허상과 모자이크적 인식

Posted at 2011. 1. 31. 02:38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인간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될까? 생물학적으로는 DNA에 따라 규정된다. 그 사람이 가진 유전자 코드는 마치 바코드처럼 완벽한 식별 코드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철학자들은 이를 두고 재미있는 사고 실험을 한다. 예컨대 나와 이명박의 몸이 바뀐다고 생각해보자. 내 DNA는 여전하지만 그 안에는 이명박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이명박인 걸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승환의 몸에 이명박의 정신이 깃든 무언가를 이명박이라 칭할 것이다. 이는 정체성이 단순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삶, 또는 기억을 내포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보여주는데 정체성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게 스스로도 정체성을 타인에 의해 형성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여성 의사가 남성 의사들 사이에 가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반해, 여성들 사이에 가면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처럼 정체성은 타인에 의해 구성되며, 이에 맞추어서 자기 자신도 식별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간다. 즉 다수의 페르소나를 형성한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수많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겨났다. 인간은 도구를 활용하지만 도구는 인간을 규정하고 형성한다. 블로그는 블로그형 인간의 페르소나를 창출하고, 트위터는 트위터형 인간의 페르소나를 창출한다. 이처럼 수많은 도구가 존재함은 그만큼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형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친구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나, 직원으로서의 나... 이처럼 다양한 가면을 우리는 때와 장소에 맞게 써 왔으며 여기에 몇 개의 가면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당신의 단 하나의 정체성만을 보아 왔다.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당신은 누군가의 친구일 뿐이고 - 친구의 가면만을 보아 왔고 - 누군가의 직장 동료일 뿐 - 직장 동료의 가면만을 보아 왔다 - 이다. 그런데 이제 웹을 통해 당신의 수많은 페르소나를 보게 되었다. 대개의 경우에는 그들이 보아 온 정체성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이런 면도 있군'이라고 생각할 수준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들이 보아온 페르소나와 일치하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상대방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것이고, 이가 다수에게서 일어난다면 아마 당신조차도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시 정체성으로 돌아가보자. 불교에서는 '나'라는 고정된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자판을 두들기는 게 아니라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존재'가 나다. 내가 이 글을 쓰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고 있는 존재'가 나다. 엄밀히 말한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체성의 구성은 의외로 '편의'에 있을 수 있다. 정체성을 '구성'하지 않아도 개체는 생존할 수 있지만, 사회는 무너져내린다. 모두가 기억상실자인 세상을 떠올려보라.  우리는 편의를 위해 상대방의 정체성이 지속된다는 가정을 가진다. 즉 타인을 규정한다. 

그런데 이 규정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자아를 드러내는 툴이 다양화되며 그 툴의 특성에 따라 자연히 다양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 사람이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 대해 한두개의 가면을 보았을 뿐이고, 기실은 잘 몰랐던 것 뿐이다. 또한 우리 '마음대로' 복잡한 개체를 선형적으로 인식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을 마음대로 판단해왔다. 그 마음대로 하는 판단을 유지하기에 너무나 많은 정보공개, 더군다나 자연스러운 정보공개가 이루어지며 타인에 대한 기존 인식 구조를 바꾸라고 명하고 있다.

미래의 정체성 인식은 어떨까? 좀 더 모자이크적인 인식이 강화되지 않을까? '그는 A와 B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그는 'A와 not A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수의 정체성을 내비치며 살아가고 있고 타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살아가니까. 그러다보면 사람들도 조금씩 그것에 익숙하게 되고 피드백이 강화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한다. 스타나 정치인의 과거 발언을 가지고 현재를 꾸짖는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모습은 약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아니기도 하니까.


결론은 양서류의 말대로 표심에 따라 말과 얼굴을 바꾸는 정치인들은, 미래형 인간(...)

  1. 저와 원빈이 몸이 바뀐다면 제 몸에 들어간 원빈은 원빈이 아니게 되지만 원빈의 몸에 들어간 저는 원빈이 아니지만 원빈이 되게 됩니다. 제 몸에 들어간 원빈은 진짜 원빈이지만 거울을 볼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되며 자기소멸(?)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단편적인 정보로 정체성이 규정되기도 합니다. (말하려는게 그게 아니잖...)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보고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능....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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