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근 2년이나 펼쳐진 인터넷에서의 키보드 전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택광으로 대표되는 라캉 옹호파와 아이추판다로 대표되는 '이택광 비판'세력이 왜 그토록 치고 받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전 글에서 설명했다. 여기서는 그동안 펼쳐진 주요 논지에 대한 정리와 내 입장을 더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내가 바라보는 일련의 논쟁 지점은 다음과 같다.
부록. 라캉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인가?
그럼에도 최소한 다른 분야에 적용시킬 때의 유용성을 통해 어느 정도의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예로 한의학의 침술을 들어보자. 침술은 아직까지도 플라시보(僞藥) 효과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으로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수행과정을 거치면 결과가 그럭저럭 나오는 것이다. 즉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본다면 그 논증이 비과학적일지라도 어느 정도 먹힐 수 있게 마련이다.
물론 정말로 미국 심리학계 (사실 이택광 라인에서는 이게 상당히 혼란스러운데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를 혼용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 이택광이 이야기한 문제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주장하는 자기 자신이 제대로 된 근거를 내놓지도 않으면서 이게 대안이라 이야기하는데 이게 어떻게 '논증'이 될 수 있겠는가? 사업계획서를 쓸 때도 이런 식으로 써서 내면 사장은 커녕 과장에게도 욕 먹는다. 최소한 제대로 된 사례 정도는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학문이건 남의 영역 끼어들기는 좋은 버릇이다. 이른바 '나와바리'를 지키려는 태도는 점점 많은 학문이 통합하고 연계되는 요즘 세상에서 도움이 될 리는 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남의 학문을 건드리려면 최소한의 이해는 담보해야지, 그것을 곡해하면서까지 자기 학문을 정당화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다만 '학문'의 이름으로 서기에는 좀 모자라 보인다. 지금까지 라캉에 기반한 이야기가 왜 설명능력이 떨어지는지를 이야기했는데, 이가 라캉에 근거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정합성이 떨어지는 것 뿐이지, 뭐라고 이야기하든은 그 사람의 자유다. 즉 엄밀함을 갖춰야 하는 것은 학문 내 일이지, 우리같은 민간인이 사적 영역에서 지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종종 등장한다. 아래 철학도님의 글은 라캉의 문제점과 동시에 나름의 유용성(문학비평)을 보여주고 있다.
블로그를 열었다 닫았다를 취미로 삼고 있는 알렙 역시 라캉의 유용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글은 이미 사라졌지만 제 마음 속에 살아있어요, 헤헤...
사실 라깡의 통찰은 부분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미지적인 것(영상계), 문자적인 것(상징계), 그리고 이 둘에 포섭되지 않는 실재계라는 구분 같은 것이 그렇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라깡 역시 일종의 교조에 대한 숭배와 도그마의 옹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면서 그러한 약간의 통찰과 불필요한 많은 현학과 무의미한 언사들이 패키지로 주어진다. 흔히 말하는 저열한 비유를 가져다 쓰자면, 고수는 이런 위험을 알기 때문에 그 흠이 잘 드러나지 않고, 하수가 될수록 재앙에 가까워지지만 (데리다와 그 아류들 사이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라깡보다는 라깡을 이용하는 이론가들에게 그나마 더 끌리는 이유가 그래서인데,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쓰면서 자기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서 교조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라깡주의에 경도된 담론들이 다른 담론과 배타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건 문제일 거다.
라캉이 사이비라고 해도 여기에서부터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발전시켜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용이다. 즉 상황에 맞게 활용되어야지,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윤형이 쓴 라캉 정신분석과 비평의 문제를 인용하자면...
여기서 1번은 이미 내가 '부록'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맞다고 봐야 한다. 사이비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고 과학이란 이야기 안 들으려면 잘못된 과학적 근거를 폐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2번은 좀 애매하다. 1번이 개념과 영역의 문제라면 2번은 실제 세계에서 미치는 영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한윤형의 문제제기를 둘로 나누어 바라보기를 권한다.
2-1. 라캉 이론에 근거한 정치/문화평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2-2. 라캉 이론의 오류 수정 없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권하는 행위가 문제가 된다.
한윤형이 내놓은 질문 2-1은 솔직히 모르겠고 별 관심도 없다. 일단 세력도 미미하고 학자층이 세상에 영향 미쳐봐야 얼마나 미칠까 싶은 정도니까. 하지만 2-2는 확실히 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검증이 되지 않은 학문을 아해들에게 알린다면 그 문제점 정도는 인식하면서 알려야 할 것 같은데, 라캉주의자들에게 라캉은 거의 교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은 '학문 그 자체'를 배우는 것보다 '학문하는 태도'를 배우는 곳인데 말이지.
물론 따지고 보면 학계에서 이런 힘싸움이 작용하지 않는 곳은 없다. 경제학과에서 좌파 경제학이 취급이나 되던가?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현실을 통해 균열이라도 간다. 그런데 라캉의 주장은 애초에 현실 적용능력이 원채 없다보니 무슨 주장을 해도 균열조차 가지 않는다. 즉 '검증 불가능'한 주장을 가지고와서 맹신해버리면 대체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차라리 '이건 종교에요'를 확실히 드러낸 채플 수업을 듣는 게 맞겠다.
여기에 더더욱 문제가 되는 몽매주의자 라깡이 결합되면 상황은 더 가관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라깡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라깡을 공부하기 위해 사회 현상을 동원하는 일이 벌어진다. 왜 라깡 이론이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나요? 사회 현상을 라깡의 이론을 통해서 보라. 이건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일 뿐이다.
여기서 한윤형은 살짝 엇나가 있다. 라캉을 차용하는 문화비평을 완전히 폐기할 필요는 없지만, 이택광의 말이 제대로 된 설명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이다. 사람이 '설득' 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신뢰할만한 주장'이라고 간주하는 건 무리가 있다. 또 어떠한 주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 그보다 더 나은 설명이 굳이 나올 필요는 없다. 설명력이 없음만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택광식 글쓰기의 문제가 있다. 맘대로 떠드는 건 자유이지만 그것이 당최 설명력이 없다는 것. 대놓고 이야기해서 알지도 못하고, 공부도 안 하고 적당히 끼워맞춘다는 거다. 이택광의 소녀시대, 오빠들의 판타지를 보자. 너무 멋진 글이라 전문인용하겠다.
그 경우 제반 지식을 몽땅 글에 드러내놓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글을 읽을 변태는 많지 않다. 그러니 이 부분은 적당히 손을 놓는 게 맞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과 학계를 상대로 하는 글은 엄연히 한계가 있다. 한국은 그 지식상이 특히 부실한 문제가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이 글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로스님의 글 이택광, 문화비평, 블로그, 일기를 인용해보겠다. 참고로 링크된 글은 이택광의 분석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는 훼이크고 이 부분은 잠시 미완으로 두고 싶다. 사실 이 글은 벌써 6개월 전에 작성된 글인데 다시 보니 아직 문화비평에 대해 내가 논할 깜냥은 아닌 것 같다. 최대한 근일 안에 쓰고 싶지만 솔직히 앞으로 벌려놓은 일도 많고,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지라 쪽팔려서 못 쓸 것 같다. 단지 내가 이런저런 관심은 꽤 있는지라, 혹시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같이 모임이라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진심이다! 홍성일 횽이 끼워주려나 ㅋㅋㅋ)
혹시라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이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이다. 난 남이 내 글 읽는 말든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지만, 글을 난잡하게 쓰기로 유명한 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정말 힘든 일이었을테니까. 여하튼 5번 문제에 대해 논하는 건 뒤로 미루고 지금까지의 관전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남기겠다.
이택광 : 남의 말 좀 들으삼. 들으려면 진작에 들었겠지만... ㅋㅋㅋ
한윤형 : 나 한윤형씨 글 좋아해서 책도 샀음. 그런데 이 쪽에 오면 왜 그런지 모르겠(...) ㅋㅋㅋ
아이추판다 : 나 판다씨 좋아하니까 끝까지 싸우삼... 이라고 하고 싶지만 더 생산적 글이나 쓰는 게 ㅋㅋㅋ
알렙 : 언제나 적절한 지적질을 해 주셔서 감사... ㅋㅋㅋ
김우재 : 초파리옹, 언제 돌아올 거임? ㅋㅋㅋ
저련 : 언제쯤 이 인간이 쓴 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임새는 언제나 ㅋㅋㅋ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이택광이 어쩌고보다도 진보계가 점점 이 쪽 계열 필자들을 좋아한다는 거다. 필자가 그렇게 없나? 블로그만 둘러봐도 진보계가 좋아하는 몇몇 필자들... 뭐 예를 들자면 이택광, 김현진, 박가분... 등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지적질이 넘친다. 종종 디씨에서도 발견된다. 왜 그렇게까지 '필진의 성(城)'을 쌓고 좋은 필진을 섭외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건가? 콘텐츠의 질보다 정치적 성향과 이너서클이 중시되는 건 정말이지, 답답한 일이다. 물론 그 누군가들은 신나하겠지만.
최종후기... 아... 다 쓰고 나니까 속시원하기는 커녕 개뻘짓한 느낌이다. 내가 6개월 전에는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잉여력이 넘치는 인간이었구나. 요 몇 년 동안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한 달에 5권 정도씩은 책을 읽고 살았는데, 최근 10년만에 2개월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대한민국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냥 뭐랄까... 요즘 사는 게 좀 팍팍해요. 누구 나한테 술 좀 사줘.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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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능. 짤방이 끝까지 읽는 힘을 줬다능.
ㅋㅋㅋ 내용 없는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술 먹은 다음날 긴 글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군요. =_=
머리가 아프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쓰는 저는 어땠겠습니까=_=;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힘이 크다고 한다'
단, 이승환님처럼 텍스트에 걸맞은 이미지를 골라내는 능력이 하늘을 찌를 때.
너무 재밌어요.
어머, 신비님이 여기까지. 방가방가에요~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고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이런글은 왠지 읽는이로 하여금 피 끓는 오기와 묘한 승부욕을 자극하므로... 이글을 보면 요즘의 블로그 포스트들이 뭔가 짧고 쉽고 간결할 것에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처럼 재미있네요.) 완독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 숨이 막힐지경이네요.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ㅎㅎ
이거 공감합니다. 이택광 씨는 라캉에 대해 비판만 들어오면 '반지성주의'의 발로라고 떠들기만 하지 제대로 된 반박을 하는 꼴을 못 봤습니다. 그뿐이면 말을 않겠는데 심지어는 '라캉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야말로 라캉의 이론이 그들의 무의식을 건드렸음을 방증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나와버리니 이건 뭐…….
개인적으로 저 논쟁을 거의 초창기 때부터 지켜봤는데(아이추판다, 한윤형, 노정태 씨가 싸울 때부터) 그때부터 구도가 하나도 바뀌질 않더군요. 맨날 '라캉은 인문학이니까' 운운, '반지성주의' 운운. 이젠 오히려 이택광 씨 글 못 알아먹겠다는 사람이 더 짜증나요. "거봐! 역시 반지성주의!"라고 면피할 빌미를 자꾸 준단 말이죠.
늘 하던 갑론을박이 떠드는 사람과 들이미는 학자들 이름만 바뀌면서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이젠 아주 관심을 끊어버릴까 합니다.
저도 아마 더 이상 논쟁에 끼지 않을 것 같... 지만 이미 키워질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대단한 잉여인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픈 욕망이 듭니다.
역시 저는 병신인가 봅니다(...)
이야~~ 좋은 글이넹...
물론 짤방만 봤습니다만..
내 얼굴도 봐 줘.
ㅎㅎ 글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