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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다룬 영화는 물론 만화까지도 매우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재 자체를 특이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영화는 다른 ‘얼굴’을 다룬 영화와는 진행 방식이 매우 다릅니다. 대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본의에 의해 얼굴이 바뀌게 된 것이 아니거나 어떠한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의로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경우는 한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에게 점점 질려가는 남자에게서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로 스스로의 얼굴을 고쳐버리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자가 여자에게 지겨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시간의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해결책이라 여긴 것이죠.
이것이 다른 이유는 전자, 즉 이제껏 일반적인 케이스는 기본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은 얼굴을 바꾼 상태의 삶을 괴로워하며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요. 그러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어떠한 목적 때문에, 혹은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내부의 갈등을 다룹니다. 그러나 ‘시간’에서는 반대로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얼굴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 정체성을 버리려 합니다. 여기에서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 하소연도 하고 땡깡도 부려 보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 않음은 남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남자의 선택은 더욱 끔찍한 선택입니다. 그녀를 정체성의 갈등에 들어서게 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버린 것입니다. 여자는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 올 남자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결국 여자에게 돌아온 것은 예전의 그 남자가 아니라 새로운 남자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 혼란에 빠질 뿐입니다. 마치 남자가 예전의 그녀와 새로운 그녀 사이에서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그러했듯 여자는 과거의 남자만을 좇고 여자가 그러했듯 새로운 남자는 과거의 남자가 아니기에 도망갈 뿐입니다. 그의 빈자리를 매울 수 있는 여자가 새로운 그녀가 아니었듯이 그녀가 좇는 남자는 새로운 그가 아니니까요. 결국 둘의 추격전은 잡는다고 해도 무엇 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한 추격에 불과합니다. 아니, 이미 시간을 거스르려고 하고 시간을 멈추고자 할 때부터 이미 이러한 비극적이고 무의미한 추격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설사 시간을 멈추게 하고 거슬렀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예전의 그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들이 두려워 한 시간은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겨워지는 만큼 또한 잊혀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시간이니까요.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반복하지만 정말 대단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이제껏 이토록 한 영화에 집중했던 적은 정말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집중이 깨지는 순간은 모두
뭐랄까, 그리 좋아하는 영화들은 아닌데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면에 있어선 꽤 좋습니다. 김기덕 감독 영화들은 말이지요.
김기덕 감독을 보면 "전 세계에서 인정해줘도, 고향에서 박대받으면 그닥 마음이 편치 않는가보다. 대체 인간에게 고향이란 의미는...-_-" 이런 걸 생각해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