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스승의 은혜

Posted at 2006. 10. 7. 02:45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은 좀 정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영화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디선가 본 듯한 스토리를 답습하는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호러 영화는 가장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 장르입니다. 호러는 미숙한 감독이라도 대충 룰에 맞게만 제작하면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할 수 있는 장르니까요. 소설에 비유한다면 일부 작가들이 아주 공장장인 듯 찍어내는 무협지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특이한 영화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저도 변태는 아닌지라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논리를 갖추지 않는 영화에는 도저히 정이 가지 않습니다. 그저 특이하기만 한 것이 대단하다면 사실 제 소설만큼 대단한 것도 없겠죠.


그러나 스승의 은혜는 이런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을만한 영화입니다. 진부한 공식에 매달리는 영화도 아니며 나름 논리도 괜찮은 편입니다. 우선 설정에 있어서는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설정이 눈에 띕니다. 이는 일반적인 호러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설정입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이들은 ‘심리적으로’는 스스로를 그저 피해자로 여기고 있을 뿐, 가해자라는 생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단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바로 자신이 복수를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자신에게 피해를 받은 이 역시 자신에게 복수를 해도 좋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는 ‘살인자는 희생자들에게 니들이 복수의 자격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셈’이라는 이규영님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작품 내에서의 논리에 대해서 부실하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듀나님의 평론에서는 ‘하필이면 희생자만 모인 생일파티’와 ‘이야기와 주제를 산만하게 흐뜨러트리는 토끼 살인자’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논리에서 중요한 점은 설정이 얼마나 황당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주어진 설정 내에서 얼마나 짜임새 있게 이야기가 이어지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소설이건 영화건 모두 픽션입니다. 이름이 있는 오멘, 링 등도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적어도 그 설정 안에서는 분명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스승의 은혜 역시 그러합니다. 물론 살인자가 언제 그렇게 잔인하게 살인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할 시간이 되느냐는 등의 사소한 문제는 존재하지만 영화 자체의 몰입력이 충분히 커버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연출력은 한국 공포영화 중 최고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우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연출은 시종일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스승과 제자 관계를 좀 더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에 대해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한국 문화상 그들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곳이 한국이니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복수심을 숨기기는 하나 복수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즉 이 영화는 굳이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의 특색을 포착했다기보다는 그것을 대체 가능한 관계 정도로 그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딱히 교사의 폭력을 비판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에요. 이 외에도 잔혹한 장면이 뒤로 갈수록 그 강도와 빈도가 약해진다는 점도 조금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거나 사소한 설정에서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제가 볼 때는 불필요한 반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전강박인지 아니면 짧은 플레이타임이 불만이었는지, 혹은 한국 영화 특유의 감성적 여운을 주려고 했는지는 감독만이 알겠지만 이것이 다소 무리한 설정에 사실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 이끌어온 긴장감을 무너뜨림은 물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관계 사이에의 딜레마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 오던 논리적 구조마저도 무너뜨리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랫만에 호러영화다운 호러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다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호러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포와 긴장감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9명이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여자들이 꺅꺅거리는 부분도 꽤 있고 전체적인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하필이면 이 영화에 이어 아파트를 보았는데 감상평을 써야할지 망설여질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던 영화였습니다. 관객수는 아파트가 훨씬 많다는 점은 한국 영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부분인 것 같아 스승의 은혜는 끝맛이 좀 찝찝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야동후후식 영화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쿄 좀비  (7) 2006.11.12
송환  (6) 2006.11.05
한반도  (8) 2006.11.05
스승의 은혜  (13) 2006.10.07
시간  (9) 2006.08.30
꼬뮌 / 문화창작집단 '날'  (4) 2006.07.04
  1. 사엘
    아 스포일러 즐
  2. wenzday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꽤나 흡족했던 영화였지요. (떠오른 유령)
  3. 영화는 보지 않았으니 텍스트는 스킵하고 사진만 저장해둠. -_-;
  4. 글쎄 쓸모없는 반전이라... 나는 어느정도 예상을 했었던기억이 난다... 음... 그모든일을 한 선생님이 할 수 가없다는 생각을 했지... 그것도 수많은 아이들에게...후후후 그런데 이영화의 마지막의 반전에서 한놈을 빼놓았지 뭐니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을 안하더라.. 그왜 선생님한테 성희롱 당하던아이있잖아... 그건 주인공이 안당한건데 그건 좀... 그랬어...음.....
    거기에 약간 반전이 전체 스토리를 감싸지 못한게 있었던듯.
    그리고 동물원 이야기 보고 완전 의자 뒤로 넘어갔음....덕택에 옆방에서 들리는 20살 남녀의 동거 잡음이 안들린다... 훗훗...너라면 엄청 아쉬워 했겠지... 듣고 싶음 언제 한번 놀러와 러시아어과 애들인데 시험기간때 더해.. 으~~
    그건 그렇고 그나저나 잘있지??
    • 2006.10.12 23:47 [Edit/Del]
      난 영화력이 짧아서 그런 반전은 생각도 않고 있었구만. 아주 멋진 스토리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아주 흥을 깨버리더군. 나도 성희롱 남자 생각은 했는데... 그 남자는 뭐 그냥 잘 생겨서 뽑았나... 생각하고 넘어갔지 -_-;

      러시아어과 애들 녹음이나 해서 한 번 올려보게나. 난 뭐 그저 그렇네, 국경절 연휴 때문에 많이 망가졌는데 놀다보니 이제 의욕이 다시 솟는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남은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걸 이룰 수 있다고 믿네, 그려...
  5. 음 열심히 하리라 믿는구려... 내 한번 녹음해 한번 드립 십지...
  6. 서민
    애들 수업 때문에 슬라이드 만들려고 관련자료 검색하다가 이 사이트 발견했습니다. 전 그냥 사진만 따오려 했는데 글이 재밌어서 계속 읽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영화는 웬만하면 다 보는 편인데 평이 워낙 안좋아서 지나쳤어요. DVD로 꼭 봐야겠군요. 님 덕분에 잊혀질 뻔한 좋은 영화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6.11.25 15:52 [Edit/Del]
      제 관점에서는 그런데 사실 실망이라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서민님도 그렇게 될까봐 벌써부터 긴장이... -_-; 다들 재미있다는 면에는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