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부끄러워말고 부러워하라한국야구, 부끄러워말고 부러워하라

Posted at 2006. 12. 5. 13:05 | Posted in 정력은국력 체육부

한국, 日 아마팀에 참패 '야구국치일'
韓야구 ‘국치일(國恥日)’…아마추어에 패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을 좀 하다보니 한국 프로야구 대표팀이 일본 사회인 야구 대표팀에게 지니까 다들 망신이라고 한다. 아무리 찌라시라지만 12 2일이 국치일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걸 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게다가 인터넷 포털도 그런 분위기고. 어쨌든 오랜만에 듣는 국치일이다. 내 기억에 대중적으로 인정하는 국치일은 을사조약, 한일합방 정도인 것 같으니 반백년을 넘어서야 드디어 국치일이 찾아온 게니까. 사실 한국 야구 대표팀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없지는 않다. 우선 상대팀이 사회인들을 들고 나오다보니 데이터 자체가 별로 없었을 게다. 솔직히 일본 야구대표팀이 프로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지던 이기던 이렇게까지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하거든. 어느 정도 약점을 파악하고 그 쪽만 집중적으로 노릴 경우 일본 프로 일진과도 큰 차이가 없는 한국 대표팀 투수들에게 10점을 뽑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지. 그리고 결과론이지만 김재박의 전략이 몇몇 부분에서 실패한 것도 사실인 것도 인정해야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리 찌라시라고 해도 좀 너무한 소리네. 왜 그리들 흥분하는 거지? 살다보면 야구 좀 질 수도 있지, 골프 치다보면 아마츄어가 프로보다 한 두 홀 더 못 치는 것은 일도 아니잖아. 물론 야구가 단체종목에 플레이시간이 길다는 점을 염두하면 동급으로 볼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울상지을 것도 없어. 미국 농구대표팀이 그리스 농구대표팀에게 졌다고 미국 농구대표팀의 위치를 그리스 농구대표팀의 아래에 두지 않잖아. 물론 상대적인 강약은 존재하고 스포츠의 기본 정신이 이긴 자가 강한 것이지만 단기전을 가지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어. 그럼 니들은 WBC에서 일본 두 번 이겼다고 우리가 일본보다 야구 잘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리고 사회인야구라고 너무 무시하면 안 되는 게 대학 선수들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고 실업야구 하는 애들 중 이번에 나왔는지는 몰라도 드래프트 거부권 행사로 잠시 실업팀에서 뛰는 애들도 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사회인이라기보다는 준프로라고 봐야지. 그래도 프로는 아니지만.

그런데 지금부터 중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한국 야구가 어떻고 일본 야구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승패를 떠나 내가 아쉬워하는 점이 하나 있어. 일본 사회인 야구에게 졌다고 쪽팔린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왜 일본 사회인 야구를 부러워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지.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 사회인 야구가 한국 프로야구에게 승리하는 일은 비록 가능성이 낮은 일일테고 그게 이번에 터진 것이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이야. 반대로 생각해봐. 한국 사회인 야구 대표팀이 일본 프로야구 대표팀에게 승리를 거뒀다면 그게 보통 대단한 일이겠어? 축구의 경우 FA컵에서 실업팀이 프로팀 한 번 이기기가 힘든데 말이야. 이건 정말 부러워할만한 일이지.

그런데 앞에서 내 맘대로 한 가정이 과연 가능할까? 한국 사회인 대표팀이 일본 프로야구 대표팀을 이긴다? 이건 진짜 맘도 안 되는 소리지. 일본 사회인 야구 대표팀은 어쩌다가 한국 프로야구 대표팀을 이길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절대 이뤄질 수 없지. 김인식 감독이 WBC를 치루면서 일본이 비록 최강팀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와 비슷하거나 가까운 수준의 팀을 훨씬 많이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공언이 아니야. 레벨이 낮아질수록 한일 양국의 야구격차는 점점 커져. 국가대표는 비슷할지언정 1군 프로야구, 2군 프로야구, 대학1, 대학2진으로 내려갈수록 그 차이는 점점 커지지.

무엇 때문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차이가 커질까? 이유는 단순해. 일본은 비록 한국처럼 입시지옥이 존재하지만 학내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가 상당히 활성화된 국가야. 한국 애들은 야구 한 번 하려고 하면 사람 모으기조차 힘들지만 얘네들은 구장이 널려 있지. 그리고 한국처럼 백 개도 안 되는 야구부가 맨날 빠따질 당하면서 하는 엘리트 체육도 물론 존재하지만 4000개 이상의 고교에서 단순히 취미로 야구를 하면서 갑자원 진출을 노리지. 이러니까 맨날 빠따질 당하며 큰 애들 중에 잘 하는 놈은 일본에 딸리지 않을지 몰라도 그 저변에서는 비교가 안 될 수밖에. 솔직히 한국에서 조기축구회 들어간 사람이라도 그렇게 많나? 황량한 운동장 하나 빌리려고 발품 팔아야 되는 나라에서 말이지.

비단 야구만이 아니야. 아예 생활체육 대회 하나 만들어서 해 보면 재미있을 거야. 한국 맨날 일본보다 메달 수 많다고 좋아하는데 아예 대학이나 실업 같은 준프로 빼고 경기하면 한국 거의 전 종목 패배할걸? 간단해. 우리는 얘네들처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거든. 요즘들어서 웬 웰빙에 몸짱 열풍이 불어서 사람들이 운동은 하지만 그것은 신체미용이나 건강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강하지,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지. 비단 일본뿐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 각국들은 한국보다 전체 수업시간은 적어도 체육은 많아. 미국? GDP를 보면 그들의 학교 풍경이 떠오르지 않아?

이거 부럽지 않아? 솔직히 나 학교 다닐 때 황량한 운동장 하나에 허름한 농구 골대 몇 개가 다였어. 50명 가까이 되는 인원 중 10명 가량 농구하러 가고 10명은 어디서 뒹구는지 알 길이 없고 30명 정도가 황량한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데 거 참 위험했어. 가끔은 여러 반이 함께 뛰어다니기도 했으니까. 야구하는 인간들까지 있으면 아주 장난 아니었다. 축구공 쫓아다니느라 정신없는데 하드볼이 날아다니고 하니까. 게다가 비록 축구를 했을지언정 축구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는 없다시피 했다. 무슨 어린이 축구단 떠드는데 서울에서도 힘든 게 지방에서 제대로 가능했겠나, 말 그대로 똥볼 차는거지.

자고로 모든 스포츠는 알고 하면 더 잘 되고 더 재미있는 법, 하지만 나는 그럴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어. 굳이
라고 붙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강산이 변하지는 않았을테고 내 윗세대들이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우리가 대개 스포츠를 즐기는 방식은 바로 직접 뛰어서가 아니라 티비를 보면서지. 특히 강한 민족의식과 맞물려 국가대표전을 보면서 즐거워하는데 이거 내가 볼 때 참 슬픈 일이다. 다른 나라 애들은 직접 뛰면서 즐거워하는데 우리는 태릉 선수촌에서 혹사당하는 선수들 메달 보면서 즐거워해야 하다니. 물론 이게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일은 아니야. 생활스포츠 활성화된 국가에서도 국가대표 소집훈련은 당연히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생활스포츠 부분이 거의 결여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 하다못해 프로스포츠 관람조차도 다른 나라보다 활성화되어 있지 않잖아. 이거 가지고 맨날 KBO KBL (축구협회는 아주 포기 상태) 이 말이 많은데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애들이 어릴 때 제대로 안 해서 그런거지. 축구 자주 해 봐야 축구 보는 맛을 알고 야구 자주 해 봐야 야구 보는 맛을 아는건데 그게 제대로 안 되니까. 스타크래프트 중계 보면서 즐거워하는 놈 중 스타크래프트 안 해본 놈 있어? 아니잖아.

긴 말이 많았는데 정리할게. 우리 야구 진 거 하나도 쪽팔리는 일 아니야. 그럼 GDP 넘치는 일본이 우리보다 메달 적은 것도 쪽팔려야 할 일인가? 비록 아마츄어리즘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최소한 경기에서 지면 쪽팔릴 것은 선수들이지, 우리들이 아니야. 쓸데없이 쪽팔린다, 국치다, 할 시간에 우리는 일본을 좀 더 부러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생활스포츠도, 프로스포츠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저 국가대표전에만 열광하는데 그것은 스포츠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뿐, 전부가 아니야. 물론 국가대표전을 통해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 수도 있겠으나 상당한 한계가 있어. 2002 월드컵 이후 잠시동안 K리그는 만원이었지만 이내 관중들은 K리그를 외면했잖아. 이는 단순히 마케팅 능력의 부족을 넘어 관중들이 생활 속에서 이를 접할 기회가 적었음에 그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

하지만 일본은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을 수없이 건설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그렇기에 비록 국가대표전에서 패배할지언정 사람들은 그 스포츠의 즐거움을 생활 속에서 누리고 있어. 학교에서 그것을 즐길 기회를 부여받고 사회 진출 후에는 직접 참여하거나 관람하거나 하며 그 즐거움을 이어갈 수 있는거지. 한국도 좀 그래야 해.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메달 좀 못 따면 어때? 좀 지면 어때?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럴수도 있는 거지. 지금부터라도 각 스포츠협회는 국가대표전 좀 졌다고 쪽팔려하지 말고 애들 닥달하거나 룰 개정하기에 앞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그 스포츠를 좀 더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어떨지언정 이 쪽이 장기적으로 스포츠의 흥행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편일게다. 우리 입장에서도 맨날 국가대표전 할 때마다 빨간 옷 입고 애국자되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공 한 번 차고 방망이 한 번 휘두르는 게 더 장기적으로 즐거운 삶을 담보해 주는 일일테고 말이다.

  1. 은하
    Gooood!!!-_-b 나날이 포스가 장난이 아니십니다.ㅠㅠ
    완전 공감, 특히 여성들은 운동하기 더더욱 힘들죠. 학교 체육시간에도 실기평가 기간 끝나면 그냥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수다떨라고 그래요. 애들이 거기 옹기종기 앉아 마피아를 하죠-_-;;; 남자애들 운동장에서 그나마 축구하고 있고.

    금메달 필요없으니 어디 마음놓고 운동할 공간과 클럽이나 있었으면(우리학교 이번에 운동장에 잔디깔아놓고 잔디관리한다며 학생들이 이용할때조차 이용료 내라고 합니다...-_-;;;;)
    • 2006.12.07 00:55 [Edit/Del]
      마피아는 어지간한 운동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_-
      우정도 좀 파괴하고 말이죠...
      사람들이 일단 저는 죽이고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_-

      잔디깔고 이용료 내라는 것은 좀 그렇네요. 하긴 어지간한 학교는 잔디도 없죠 -_-
  2. 처음 댓글을 남깁니다.
    위의 분 말마따나 '글발'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내용은 물론 십분 공감하고요.
    공감하면서도, 아이들이 운동을 즐길 기회가 없는 현재의 시스템이 바뀔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점이 우울하네요.
    • 2006.12.07 00:57 [Edit/Del]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복귀하셨네요 ^^

      현재의 시스템이 거의 바뀔 가능성은 보이지않지만 열린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는 물론 주변 아이들에게까지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 )
  3. 으아...제가 딱 하고 싶은 말이네요.
    아픈 곳을 벅벅 긁은!ㅋ
  4.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후후
    (저는 그래서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갑니다 비록 거의 맨땅이지만 우후후)
    잘 지내시는거지요?
    • 2006.12.07 01:01 [Edit/Del]
      헉, 부럽... 저는 그냥 밤에 찬바람 맞으며 열심히 뜁니다. 제 사정은 뭐 보시는대로 중국 표류입니다 -_-...;
  5. Schneebly
    일본 만화 중에는 왜 그리 갑자원을 소재로 한 만화가 많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균 2-3만을 넘어서는 미국 마이너리그 관중수도 그랬고, 레드삭스의 하드코어팬들을 보고도 궁금했더랬습니다.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유년시절에 야구를 몸소 즐기며 땀을 흘려본 사람이 가진 무엇을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저도 스타크래프트 생각을 했었고. 일본 고등학교 야구부가 전국에 몇 천개라는 이야기는 맨날 player pool에서만 다뤄졌지, 정작 fan pool 차원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관련된 글을 써보려는 마음이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굉장히 큰 글이 될 것 같아 엄두도 나질 않고, 또 워낙 게을러놔서... 무거운 내용을 그리 무겁지 않게 잘 쓰셨네요. 마지막 문장은 특히 좋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2007.02.22 00:17 [Edit/Del]
      헉, 답글만 봐도 대단한 글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제 글은 그냥... 남들 다 아는 이야기 좀 복잡하게 해 놓은 것 뿐이라 ^^ 다음에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