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안병영 교수님의 종강록연세대 안병영 교수님의 종강록

Posted at 2007. 1. 4. 02:10 | Posted in 실천불가능 멘토링부

잠시 산동지방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돌면서 신년인사 드려야 하는데 지금 중국 인터넷 상황이 말이 아닌지라 힘들 것 같네요. 여행기는 사진 용량상 한국으로 돌아가서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년인데 제 짧은 삶과 부족한 생각에서 그럴싸한 덕담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참에 지인의 싸이에서 좋은 글을 하나 발견해서 퍼 옵니다. 다들 신년 매일매일 새해 첫날처럼 희망을 가득 안고 생활하셨으면 합니다.


종강록 - 안병영


이미 학기도 저물고 내 경우 종강도 했다. 이번 학기가 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이니 대학 강단에서의 내 역할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처음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선지 42, 전임교수 생활 35년의 긴 여정이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앞선다. 이제 정말 자유로운 영혼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을 온전한 내 것으로 취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교수 초년병 때처럼 가슴이 설렌다.

이 지면을 통해 행정학과 학생들에게 마지막 강의삼아 학창생활에 도움이 될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목도 종강록 이라 정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데 다섯 가지로 줄였다.

첫 번째 부탁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처럼> 살라는 얘기다. 큰 맘 먹고 처음 시작했을 때의 꿈, 목표, 희망, 열정, 의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보다 긴장과 결의, 그리고 순수함이 깃들여 있다. 그것은 새벽 창문을 열고 처음 느끼는 신선한 찬 공기처럼, 우리를 무섭게 흔들어 깨우는 힘이 있다. 따라서 초심에서 멀어져 가는 자신을 다그치며, 초심으로 회귀하는 노력을 줄기차게 계속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일상의 늪에 빠져 <그날이 그날>같은 삶을 살게 된다.

두 번째 부탁은 <‘deep play’를 하라>는 것이다. 매사에서 피상적인 것, 겉치레하는 것, 상투적인 것을 피하고, 가능하면 본질에 접근하는 노력과 진지함, 의미 찾기, 깊게 파고들기를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요새 많이 쓰는 말로 생각과 행동에 진정성이 배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이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deep player>에게 사회적 신뢰로 보상한다.

세 번째 부탁은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바로 내 주위 곳곳에 행복의 값진 실마리들이 산재해 있다. 내 가족과 이웃들, 친구들, 집 근처, 통학 길, 그리고 내 일상(日常)이 모두 내 행복의 귀한 보금자리들이다. 그것들을 그냥 스쳐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우선 연세대학교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회들을 고르게 <착취>해야 한다. 자과(自科)중심의 강의나 교육과정에 파묻히기 보다는 폭넓게 강의선택을 해야 하고, 교내에서 일년 내내 진행되는 각종 국제회의, 세미나, 특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서관의 각종 프로그램, 서클활동, 연구모임에도 선택적으로 참여하자. 많이 줄어들었기는 하나 아직도 꽤 남아있는 연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산책로를 개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네 번째 부탁은 <시간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기 시간의 관리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어차피 <시간싸움>이다. 지나치게 촘촘한 미시적 시간계획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가끔 시간의 여백을 마련하고 정신적 이완을 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큰 줄거리의 시간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장기, 한 학기, 그리고 하루의 시간의 배열, 우선순위의 설정,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체리듬에 유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참고로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전형적인 <새벽형>이다. 대체로 늦어도 새벽 5에 일어나 아침 7시 반까지는 공부를 한다. 정부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그 시간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절대 시간>이다. 그러면 그 날 다른 일로 쫓겨 다시 책상 앞에 앉지 않아도 네트(net)로 최소한 그 시간은 챙길 수 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로 이동할 때는 언제나 잠시나마 <조각잠>을 잤다. 그게 얼마나 달콤했던지. 내 제자 한 사람은 학창시절에 먼 곳에서 통학을 했는데, 붐비는 버스 간에서 항상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도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지금 유엔 차석대사로 일 하고 있다.

다섯 번째의 당부는 <미래를 낙관하라>는 것이다. 비관적 미래조망, 자포자기, 쉬운 포기는 금물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은 일의 성취를 위해서도 필수적이지만,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최상의 묘약이다.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고, 안되거니 생각하면 정말 될 일도 안 된다. 미래는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고 있다. 빛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그림자를 가능한 한 줄이는 방식으로 미래를 미리 앞서서 관리하면 풍성한 과실을 거둬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정체절명의 위기를 인생최대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때, 여러분은 모두가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쓰다보니 할 얘기가 너무 많다. 한 가지만 더 보태자. 행정학이 실용적 학문이라, 좋은 점도 많지만, 걱정되는 점도 적지 않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길목에서 가끔은 <내가 왜 사는 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지나치게 <(), 불리(不利)>를 따지기 보다는 <(), 불의(不義)>를 가리는 노력도 함께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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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구절절 좋은말씀 잘 읽고 갑니다. ^^
  2. 유상훈
    이분께서 8~90년대에 썼던 글들을 읽노라면 등줄기에 땀이 흐릅니다. 학생으로서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요즘 스타학자인 최장집, 강준만 이런 분들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사유를 펼치셨던것 같더군요.
  3. 루즈해지는 삶에서 감동스런 글귀를 오랫만에 읽었네요 ^^
  4. 멋집니다... :)
    승환님 오랜만이죠? 후훗~
    블로그 도메인도 이전하고
    올핸 뭔가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는 희망만... ㅎㅎ
    승환님도 복 많이 받으시구요...
    이제 자주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
    • 2007.01.09 00:31 [Edit/Del]
      앗, 반갑습니다! BK님도 좋은 한 해 되시길 바래요.

      이런 덧글을 남기는 이유는 중국 인터넷이 똥인지라 접속이 안 되서 그렇습니다 -_-
  5. 그런거죠. 블로그는 생각을 반영하는데 행동이 따라주질 않아서..
    -_-;;
    중국에 계셔서 그런지 포스팅 업뎃이 잘 안되네요 ㅋㅋ 옛날글이나 시간나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2007.01.16 03:05 [Edit/Del]
      그러게 말입니다 -_- 저와 비슷하네요. 중국에 오니 시간은 도리어 많이 남는데 (지금 시험기간인데 -_-...) 인터넷 환경이 많이 좋지 않아요. 다음 주부터는 잠시 상해생활을 하게 되는데 좀 개선될지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_-;
  6. 선인장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시간관리'뿐.
    정기휴가 복귀하는 마음이라 그런가!?
  7. 새해에는 많이 바쁜가보군요.

    저는 와우로 바쁘답니다.
    • 2007.01.16 03:08 [Edit/Del]
      새해에는 지진으로 인터넷이 안 될 뿐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12월 들어서부터 너무 공부를 안 하게 되어버렸다. 영화와 드라마만 줄창 봤지...

      그래도 와우보다는 나은 선택인 듯 하다 -_- 엘윙님, 죄송...
  8. 덕분에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되풀이해 읽으면서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9. 가이
    수업에서 보았던 글을 여기서 또 보네요...

    다만... 직접 교수님 수업을 들어보지 못한사람들은, 절대 알수없는 졸음이 함꼐 하지요...

    딱 3분이면 게임오바 입니다... 아 교수님 존경합니다 ㅠㅠ.. Zzz..
  10. 메진이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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