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D-day

Posted at 2007. 1. 16. 02:53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비록 과거와 강도는 다르겠지만 입시생에게 있어서는 한국 전체가 거대한 기숙학원이라고 해도 딱히 잘못된 비유이지 않을 것이다. 고액 학원을 가건, 학교에서 야간 자습을 하건,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건 한국의 모든 입시생들은 입시 지옥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물론 그러한 기존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학창 시절을 추억한다면 공부와는 담을 쌓은 친구들을 누구나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에 대한 비참한 평가와 현실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여자 재수생 기숙학원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의 그러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D-day는 당연히 그들이 기다리는 동시에 피하고 싶어하는 수학능력시험의 날이고.

이 영화도 다른 호러영화들처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나 물리적 폭력을 행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하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그러한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기숙학원 내에서, 입시제도 내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일년간 아무런 자유도 없는 생활을 누려야 하고 당연히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떠한 학생은 애초부터 자유를 제한당한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어떠한 학생은 자신의 떨어지는 성적에 압박을 받으며 괴로워하며 어떠한 학생은 그 속에서 망가지는 인간관계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일률적이다. 모두가 참고 있고 그냥 참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충고한다. 이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그런데 이 충고 자체가 무서운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즉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해서 난관은 존재할 것이며 그 때마다 참으며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수도 없다. 만약 포기한다면 기숙학원 입학식의 방송처럼 '실패자'로 받아들여질 뿐이니까. 그야말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다. 무엇 하나 좋을 것 없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질문을 받는 당사자에게 죽는 것이 나쁜 것보다 좋을 리 없고 당연히 학생들은 이 질서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숙사 퇴소가 결정된 한 학생은 원장에게 미치도록 빌어댄다. 앞으로 잘 할테니 한 번만 봐 달라고. 그 학생에게 정말 두려운 것은 지옥이 아니라 지옥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지옥은 너무나 견고해서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받으면서까지 벗어나기 힘든 곳이다.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던 기숙사 건물에 갑자기 문이 열린다. 바깥에는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여느 호러영화처럼 흉기를 든 살인마가 아니라 기숙학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소한 아이의 손을 이끌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난 이 장면이 흉기로 사람을 난도하는 여느 호러영화의 장면보다 훨씬 잔인하게 느껴졌다. 제발 이 곳만은 싫다고 애걸하며 끌려오는 학생은 어머니에게 있어서조차 인격체가 아닐진데 성적순으로 자습실 책상 번호가 결정되는 학원에게 다를 리 없다. 어디에서건 그 학생은 오직 기존 질서에 무조건 편입되어야만 하는 무언가이다. 비단 이 실패자로 규정된 학생뿐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 학생과 다른 학생들의 차이란 단지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존질서를 따르는 '나쁨'이 아닌 기존질서를 벗어난 '죽음'을 택했을 뿐이다. 결국 그 의지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해 '나쁨'을 강요하는 지옥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영화의 결말은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도 모두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다. 물론 현실과 판타지의 벽이 모호하지만 어느 쪽이든 학생들은 이 이지선다의 잔인한 선택에 포섭되어 있음은 별다를 바 없다.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서울대 아니면 안 된다던 학생도, 처음에는 낮은 성적이었지만 부단한 노력과 친구의 도움으로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학생도, 애초부터 입시지옥이라는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했던 학생도, 이들 모두를 지켜보았던 학생도 모두 죽거나 혹은 나쁠 뿐이다. 결국 이 속에서 끝의 끝까지 망가졌던 학생은 질문한다. 정말 학원의 방송처럼 지금은 실패자이지만 정말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올 수 있는지. 마치 애원처럼 들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옳을까, 그저 기존 질서에 편입하며 참아가면 정말 좋은 날이 올 수 있는건가? 아니, 그 전에 정말 좋은 날이 있기는 한 걸까? 그 좋은 날이란 어쩌면 학원 내에 몰래 들여놓은 햄스터에게 던진 '매일 주는 야채나 쳐먹고 챗바퀴나 돌리며' 좋아라 하는 그러한 날들이 아닐까?

드러내어 보려고 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덮어놓고 바라보기에는 더 가슴 아픈 현실이다. 대체 언제쯤 우리의 아이들은 경쟁까지 해 가면서 '나쁨'을 선택하는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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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오한 철학이 담긴 공포영화인거군요.
    컨셉 자체가 독특하군요. (-_-)ㅋ
  2. 오랜만의 포스팅이군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근데 중국에서 한국영화를 어떻게 보시는건지 궁금합니다. ㅇ-ㅇ
  3. 은하
    으헉 리뷰만 보아도 정말 잔인하다...ㅠ_ㅠ
    죽거나 나쁘거나. 제가 하는 과외 일이 이 제도에서 끝까지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곁에 앉히는 '저 기숙학원'일과 다름없겠지요. 아아 어제는 소인수분해 가르쳤고, 낼은 최대공약수랑 최소공배수 가르치러 가야 하는데..ㅠㅡ 돈 때문에 한다고는 해도, 마지막 말에는 정말 공감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4. 이제 공포영화의 소재가 학교에서 기숙학원까지 확장되었군요.
    현실 자체가 곧 공포군요 휴우.......
    저도 어릴 때 잠시 기숙학원에 몸 담아본 적이 있는데 끔찍하긴 해요.
    담배 좀 몰래 피웠다고 허벅지 시꺼멓게 되도록 두들겨패는 경우를 봤지요.
    대학만 가면 미래가 팍팍 풀리느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닌데......
    어차피 공부란 스스로 해야 하는 건데 말예요.
    • 2007.01.23 00:50 [Edit/Del]
      덧글과는 좀 관계 없는데 전 학교에서 온 몸이 시커멓게 맞은 적이 있어요 -_-

      그리고 전 같이 공부하고 싶은 편인데 사람들이 절 피해요 -_-
  5. 저런.... 이승환 님도 체벌 피해자시군요.
    하긴 뭐 우리나라에서 체벌 피해자가 흔하지요. 저도 그 중 하나랍니다.
    체벌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요.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기대해봐야지요.

    좀 엉뚱한 연상입니다만, 이토 준지 만화가 생각납니다.
    등 뒤에 귀신이 붙어있으면 사람들이 그 귀신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푸닥거리를 하면 귀신이 도망가려나요? 엑소시스트인지...... 그냥 맘대로 공상이었고요. ^^;
    원래 공부는 혼자 하는 거 아니던가요?
    팀 별로 토론수업을 한다던가, 정보교환을 한다던가, 연구조사를 한다던가 그러는 거야 가능하지만, 책 읽고 문제 푸는 건 원래 혼자 해야지요.
    사람들이 뭔가를 같이 할 때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방법이 있으니,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거니와, 필요할 때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서 시도해보아야겠지요.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같이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지요.
    서로 원하는 방향, 추구하는 목표가 비슷해야 어울리기 쉽답니다.
    • 2007.01.25 17:12 [Edit/Del]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팀 공부는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또 서로 감시하는 분위기로 학습을 지속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저는 모여서 술만 먹게 되지만서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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