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방향 과거청산역방향 과거청산

Posted at 2007. 2. 1. 18:51 | Posted in 없는게나은 정치부


긴급조치는
維新유신정권이 국민을 令狀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고 평상시에 민간인에게 비상군법회의 재판을 받도록 했던 非비민주·反반인권제도였다. 따라서 당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과거사위가 나서는 것은 있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판사 명단 공개는 차원이 다르다. 명단이 정식으로 공개되면 정권의과거사 캐기 바람 올라탄 세력들은 해당 판사들을독재정권에 順應순응한 反반민주 판사 몰아붙일 뻔하다. 정권과 코드를 맞춘 사람들은 벌써부터 끈질기게 사법부의 人的인적 청산을 요구해 왔다. 긴급조치사건을 맡았던 판사들은 대부분 하필 그때 직책에 있었기에 어쩔 없이 판결문에 이름을 남기게 됐을 것이다. 과거사위의 이번 결정은 판사들더러 法典법전을 보지 말고 나중에 욕먹지 않을 판결만 궁리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없다.


과거사위 생각대로 관련자 명단 공개가 긴급조치문제를 정리하는 길이라면 공개 대상은 긴급조치 위반사범을 잡아들였던 정보기관과 검찰
·경찰, 긴급조치 발동 논의에 참여했을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들까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결국엔 유신헌법 국민투표에서 90% 넘게 찬성해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을 줬던 국민의 책임까지 물어야 될 판이다.

<조선일보 사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은 박정희의 유신 그 자체가 아니라 박정희가 암살 당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박정희의 독재는 사실 어느 정도 필연성을 지닌 것으로 정치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 극도의 정치불안성, 기본적인 생존조차도 보장하기 힘든 개발도상국에서 국민들은 강한 정부와 영웅을 갈구하게 되고 군사쿠데타는 매우 쉽사리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정보조작과 폭압이 있었음에도 박정희 정권은 말기로 들어서기 전까지 상당한 지지율을 얻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쿠데타의 책임을 단순히 박정희 1, 혹은 군부에만 몰아가는 것은 어폐가 있다. 동시에 이 상황은 국민들이 어느 정도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철권통치라 해도 장기간 정권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다. 독재정권 하에서 계속해서 권리를 누리지 못한 국민들이 언제까지 가만히 있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국부가 집적되면 국민들은 그간 누리지 못한 자유와 부를 요구하게 된다. 국민들의 의식의 흐름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말기는 국민의 의식과 정권의 억압 사이에서 그 모순이 극도로 집적된 시기이다. 부마항쟁을 비롯해 이곳 저곳에서 국민의 항쟁이 일어났고 이미 정권은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시기까지 온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이제껏 사용한 초법적 수단을 통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간문제였다. 그저 어떤 형태로, 어떻게 물러나느냐, 정권을 이양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김재규의 어이없는 총성은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모두 망가뜨렸다. 사람들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김재규는 박정희를 불사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우선 그 덕택에 박정희는 재판정에 설 수 없게 되었고 그의 모든 과오는 처벌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에 대한 처벌은 그 사람에게 형을 내림으로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피해자와 주변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데 목적이 있겠으나 권력자에게 형을 내리는 것은 이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지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올바른 가치를 깨닫게 하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의미를 함께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재판정에 설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박정희 1인의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본인에 그치지 않고 그 정권의 정당성을 물음이 힘들게 됨이 더 큰 문제이다. 그렇기에 비록 많은 부를 축적했으나 이제 우리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전두환, 노태우와 달리 박정희는 그 정권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직접선거를 거치고 폭압이라 할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노태우는 차치하고서라도 전두환 정권과 비교해보면 사실 박정희 정권이 크게 다를 점은 없다. 양 쪽 모두 큰 경제발전을 이뤄냈으며 양 쪽 모두 국민의 저항에 강한 억압으로 맞섰다. 그 정도에 있어 박정희가 딱히 뒤지는 것도 아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해 시위가 더 많았던 것은 억압이 강해서가 아니다. 전두환 정권은 3S 정책, 임금 상승정책 등 유화책을 활용하는 등 오히려 박정희 정권에 비해 억압의 정도는 약한 편이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자유를 원할 정도의 부를 획득했음에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박정희는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으며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박정희 정권에 대한 과거사 청산 작업은 제대로 행해지고 있지 않다. 가끔 경제발전에 대한 공을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박정희 정권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은 그래프만으로 느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업적이고 박정희 정권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 간 모든 분에게 감사해야 할 큰 선물이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판정을 잘못 내렸다고 보복판정을 내려서는 안 되듯 공은 공대로, 실은 실대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역사이다.


칠레 역시 한국과 유사한 길을 걸었다. 쿠데타와 독재 정부 속에서의 강한 억압, 동시에 겪은 빠른 경제성장은 지구 정 반대편의 국가이면서도 이게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후 펼쳐지는 과정은 대조적이다. 칠레의 법정과 의회는 끊임없이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면책특권과 기소라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물론 피노체트는 역사의 심판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다했지만 아마 피노체트 뿐만이 아닌 그 정권 전반에 대한 심판은 계속될 것이다.


요즘 박정희 정권 동안 여러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명단 공개를 갖고서 말이 많다. 다시금 맨 위의 사설을 돌아보자. 사실 난 이들의 주장에 일정 정도 동의한다. 마지막 문장은 빼고서 말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온갖 정보조작과 초법적 권력을 행하고서 국민에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참으로 비겁한 행위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전혀 틀린 말만은 아니다. 사실 판사들에게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저항한다고 해도 누군가 대체해서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니 자기 삶 내놓으며 얻을 것 없는 저항을 할 바에야 그냥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법에 따른 것이라는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서 말이다. 또한 사실상 기계와 같은 역할을 한 이들보다 긴급조치 위반사범을 잡아들였던 정보기관과 검찰
·경찰, 긴급조치 발동 논의에 참여했을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 등의 역할이 훨씬 컸으며 이들에 대한 심판이 더 중요한 것도 사실이고 이들에 대한 심판은 위에서 서술했듯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판사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점은 조금 앞뒤가 바뀐 듯한 인상이 없지 않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이었음은 자명하다. 그 누구도 이들의 아픔이 단지 판사들의 탓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이들의 역할이 대단히 미미했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들부터 앞장서 과거를 반성해 나간다면 그것은 과거사 정리에 대한 좋은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위에서부터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아래에서부터 과거를 반성하며 정리한다면 위라고 그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판사들은 지금처럼 억울함을 토로하며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것보다 작은 과오라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어떨까.


이미 대법원은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겠다고 천명하며 그러한 판결이 스스로의 과오임은 시인했다. 어설픈 도덕주의로 나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이미 긴 시간 동안 묻혀 있었던 정권의 진실을 파헤쳐 과거를 청산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과 같이 조용히 묻어가야 할지가 분명하다면 어디부터 어떻게 과거를 청산하느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위에서부터의 청산을 기다리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 잘못일지라도 앞장서 반성하며 과거를 정리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그 답은 판사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에 달려 있다.

  1. 프리스티
    김제규 -> 김재규

    판사 명단 공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걸 계기로 물타기를 하려는 세력이 더욱 더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 나라는 정말-_-;
  2. 합당한 말씀입니다....
    추천 꾹~ 누르려 했는데 없군요..^^
  3. 사법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역할을 해야 하죠.
    비록 사법부의 적절한 판결로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하더래두 그건 개인에게 의지한 불안한 발전이죠. 뭐 19세기 미국처럼 사법부의 올바른 판결이 큰 발전을 이루게 해주기도 했지만 우리는 확립된 법체계를 따라가는 입장이니까...
    여튼 엄청 많은 7급 공무원 경쟁률이 1000:1이 넘어가는 우리나라 정부는 공무원의 질이 상승해 정부의 질만큼은 반드시 발전할거라 확신합니다-_-
    • 2007.02.05 16:51 [Edit/Del]
      아무래도 시스템이 개개인보다는 믿을 법하겠지, 문제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 하에서는 그런 시스템조차도 무력해진다는 거겠지만...

      7급 공무원은 어차피 공익근무 때문에 별로 할 일 없지 않나 -_-;
  4. 저와 비슷한 의견이시군요...
    암살 사건이 되려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를 희석시킨 것 같다는...
    박정희도 박정희고... 전두환도 전두환이고...
    참... 그놈의 과거 청산이 그리도 힘이 든건지...
    • 2007.02.05 16:52 [Edit/Del]
      아마 민중운동으로 물러나게 되었다면 지금처럼 좋은 이미지로 남기는 힘들었겠죠, 민주주의 의식도 발전했을테니 국가적으로도 좋을테고... 박정희는 양날이지만 김재규 선생은 정말 좋게 보기 힘들군요, 그것조차 개인의 의지만큼은 아니겠지만...

      과거청산이 힘든 것은 싸이월드 문 닫은 사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_-
  5. '악법도 법이다'는 잘못된 신화(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편의적으로 왜곡한 일제시대의 한 일본 법학자의 창작물이라고 하지요. 우리야 유신시대 교과서를 통해 사실처럼 배워왔지만..)에 기초한 조선일보 사설이군요. 어쨌든 조선일보의 기사나 사설을 비판하는 건 정~말로 힘든일이지요. 욕 보셨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당사자의 진심어린 반성이 있을 때 비로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승환 님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 2007.02.05 16:54 [Edit/Del]
      법의 정신에 따른다면 악법은 절대 법이 아니겠죠, 사실 그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정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공개하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물론 이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부끄럽더라도 숨기기보다는 좀 더 떳떳하고 투명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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