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도 웃지 않는 프로기사들이기고도 웃지 않는 프로기사들

Posted at 2007. 6. 30. 00:42 | Posted in 정력은국력 체육부

 제가 요즘 먹고 살기 위해서 바둑대국을 좀 보러 다니고 있는데요. 물론 저 같은 아메바 대가리가 바둑은 무슨 바둑입니까? 고스톱도 배우는데 몇 년이 걸렸는데.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열심히 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흥미도 슬금슬금 생기네요. 더 이상 관심분야가 늘어나면 안 되는데 큰일입니다.

그런데 기원에서 프로들의 대국을 보다보면 참 신기한 부분이 있는데 기사들이 이겨도 져도 표정변화도, 별다른 내색도 없습니다. 팀리그에서는 자기 팀이 이기고 돌아와도 박수는 고사하고 웃음 하나 없죠. 상대팀도 다들 잘 아는 기사들이고 또 워낙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보다는 하나의 문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격투기도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양측 세컨의 거리는 매우 가깝지만 이들 역시 경기에서 이기면 그 여흥을 즐겨요.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유독 바둑만큼만은 침묵을 지키죠. 이 장면만 보면 누가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기쁨을 나타내다보면 좀 민망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름만 들으면 동네 원숭이도 알 모기사 두 분이 다 끝난 대국에서 왜 빨리 GG치지 않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이 말을 듣는 상대팀 표정이 가히 안습이었어요. 이 팀이 3:0, 3:0, 3:0으로 3연속 캐발림을 당하다가 처음으로 2:2까지 와서 마지막 대국에 들어선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기든 지든 쉽사리 물러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가뜩이나 초상집 분위기인 상대팀은 그야말로 확인사살 당하는 상황이 완전 캐안습이었습니다. 상대가 선배이니 뭐라 하지도 못하고. ㄲㄲ

사실 스포츠는 승자독식의 세계입니다. 이런 표현까지 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이긴 자는 그 기쁨을 만끽해야 해요. 그것이 선수뿐만이 아니라 팬들을 위한 길입니다. 물론 진 측의 팬들은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재미이고 문화에요. 지난 WBC 당시를 생각해 보면 이는 잘 드러납니다. 당시 이치로 선수는 “30년간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끔 하겠다”고 도발했고 일본에 2승을 거둔 후 서재응 선수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으며 설욕했죠. 이후 일본이 다시금 승리한 후 이치로 선수는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고 발언했고요.

이러한 발언이나 행동이 상대팀과 상대팀 선수들을 도발하겠지만 사실 이게 프로 세계입니다. 프로는 하나의 기업이고 기업의 목적은 고객 창출입니다. 이기고도, 지고도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승과 패라는 수치가 쌓이는 것이라면 팬들은 이에 열광할 수 없어요. 막말로 침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욕먹는 선수가 프로스포츠 홍보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그게 너무 심해지면 아주 인간관계 파탄나겠지만 뭐 사실 그것도 재미입니다. 어차피 바둑 자체가 인격수양인만큼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죠. 바둑도 다른 스포츠처럼 선수들도 기쁨을 만끽하고 드러낼 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뭐, 상대편 보기 민망하긴 하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야구나 e-스포츠처럼 덕아웃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1. 창훈
    바둑도 충분히 계속 흥행할만한 요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신문지 한 면에라도 나오는게 다행스러울 정도야.
    내가 한창 바둑에 관심가질때엔 몇 기사들의 전설같은 얘기가
    나에게 적용된 흥행요소같아-
    어쩌다보니 나도 고2때까지 기원을 다닌 바둑팬이었는데
    신규 유저를 받지 못하는 옛날 게임 취급당하는 것 같아.
    형 얘기 듣고나니 재밋게 하려면 재밋게 할 수도 있긴 하겠어.
    대신 요샌 이전같은 드라마틱한 인생으로 바둑을 둔 기사는 없는듯해.
    • 2007.07.07 15:24 [Edit/Del]
      오, 바두을 꽤 했구나, 나 좀 가르쳐주지 그랬냐 -_-a
      요즘 젊은 기사들에 대한 비판은 이래저래 나오는 것 같다. 예전 기사들은 모두 학교도 제대로 다녔는데 요즘은 군대 안 가려고 중학교 안 가는 기사들까지 있으니 문제는 문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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