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서 살아남기세계화에서 살아남기

Posted at 2006. 4. 9. 23:22 | Posted in 분서갱유 만화부
서점보다는 도서관이 좋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도서관에는 베스트셀러, 특가, 이벤트 코너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몇 종의 책에 몰려 있는 장면은 제가 별로 좋아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물론 도서관에서도 인기 있는 책이 있고 인기 없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기 없는 책은 보통 도서관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찾기에 반납고를 보면 눈에 보이는 편중성은 조금 완화되는 편입니다.

전 이 반납고에서 책을 고르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먼저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이 본 책이 아무래도 조금은 신뢰가 갑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책을 활용하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습니다. 또 무게있고 어려운 책들은 한없이 지적 허영에 빠져있는 제게 비참함을 안겨주는데 이게 또 자극이 됩니다.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도 반납고에서 건진 책입니다. 세계화라는 말이 이제 지겨운데도 이 책을 건진 이유는 오직 하나, 만화였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만화는 아직까지 제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이라고 뭐 좋은 대접을 받고 있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상업성을 통해 점점 문화로 자리매김하는데 반해 만화는 아직까지 애들이나 보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미지를 자유로운 컷 분할 속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문자로만 이루어진 매체보다 훨씬 높은 정보전달력을 가진다는 점은 아주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교육용 만화들이 이원복씨의 만화가 아닌 한 대부분 저연령층 대상으로만 나와 있는 것도 이런 편협한 분위기의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에는 introducing(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나 그림으로 배우는 현대사상같은 책은 물론 쥐, 팔레스타인 등 풍자적인 역사, 사회비판물도 많습니다.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는 전형적인 사회비판 만화로 세계화를 자본주의 형성과정부터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발전과정과 그것이 낳는 결과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강도는 매우 강해 토머스 프리드먼처럼 그 긍정적인 면을 보거나 스티글리츠처럼 긍정적인 가능성을 바라보는 부분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좀 극으로 흐르는 면도 없지 않은데 이는 저자가 멕시코인인 것으로 이해해줄만 한 것 같습니다. 멕시코는 전체 부야 어떨지언정 국가 자체 조사에서 전국민의 반이 빈민인 국가이니까요.

저자는 '독재의 반대는 자유이고 독재의 적이 거대권력인데 어째서 지금 자유세계는 거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는 질문으로 자신의 세계화에 대한 관점을 잘 표현합니다. 사실 전혀 틀린 소리는 아닙니다. 특히나 우리가 전혀 모르고 사는 남미 인구의 1/3과 아프리카의 인구 80%가 연 2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들 국가 중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채택 후 삶의 질이 더 떨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군수산업에 대한 독설도 등장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전쟁을 줄이려 노력하는데 미국은 전쟁을 늘이려 한다'는 부분이나 실컷 아프간과 이라크 정권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온갖 나라의 정부 전복에 개입한 점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균형을 잃어 이라크나 테러를 용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느 쪽이 진짜 테러인지, 정의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강조할 뿐이죠.

그리고 현재 남미의 각 정권에 대해서도 독설을 쏟는데 특히 저자가 사는 멕시코에 대한 독설은 너무 세군요. '멕시코의 세디요, 브라질의 카르도소, 아르헨티나의 메넴 등이 그런 경우이다. 2000년에는 코라콜라의 임원 출신인 빈센테 폭스(Vincente Fox)가 멕시코의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 행렬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 책은 세계화의 여러 문제점을 잘 요약, 서술했지만 분량이 크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정확한 통계나 내용이 그다지 삽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이러한 문제가 있구나, 정도만 간신히 알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 만화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가 이미지가 내용을 압도하는 것인데 이 책에서 기업이나 자본가는 워낙 흉폭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저자의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에게는 공격적 자세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강한 반감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뭐 멕시코 사람이니 넘어가자, 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비판이 조금 극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세계화와 경제상황에 대한 한두줄로 끝나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예를 들면 폭스가 이전 정권에 비해 딱히 친미적 자세를 취한 사람은 아닙니다. 또 전 대통령 세디요도 100년 정권 제도혁명당을 독재의 위치에서 스스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람인데 겨우 세계화로 경제를 망쳤다는 한 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페루의 가르시아 대통령도 미국에 개기다가 망한 것으로만 묘사되는데 사실 그것도 미국 탓만 할 것은 아닙니다. 국제정세를 보면서 국익을 최대화하는 게 대통령의 책무이지, 무슨 도덕정의 내세우는 게 책무라고 하기는 힘드니까요. 더군다나 가르시아의 예를 볼 적 다른 국가들이라고 보호주의 정책을 취하거나 채무를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개겨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까 이야기하기는 힘드니 좀 더 침착하게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텐데 비판만화다보니 그런 점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누구에게도 추천하기 힘든 어정쩡한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에서 밝혔듯 저자의 생각에 찬성하는 이에게는 공격성을 배가시키고 반대하는 이에게는 반감만을 키워 독선적 생각을 가지게 할 것 같습니다. 책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좀 위험한 단순화를 가져다 줄 것 같고 책의 내용을 쉽게 믿지 않는 이라면 좀 힘겹더라도 촘스키의 책을 꼼꼼히 읽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분야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시간 나는 분들이 잠시 짬을 내서 재미로 읽을만한 책 정도인 것 같네요. 어찌되었던 이렇게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만화'가 나올 수 있는 - 더군다나 그 표현력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 물건너 사람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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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iac   06/03/01 19:18 
저도 반납고의 책들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좋은 책들이 많이 있죠. '하룻밤의 지식여행'의 같은 경우에는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림체가 유쾌하게 해주지만 깊이도 나름대로 있는 입문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온 것 중에 도서관에 있는 것은 다 읽었어요!!
이승환   06/03/02 20:27 
하룻밤의 지식여행의 그림체는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아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듯 한데요 -_- 취향이 독특하신 것 같아요. 왜인지 메탈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mnesiac   06/03/03 12:50 
허허... 그림체가 재밌던데. 케리커쳐 스타일로 나올 때도 맘에 들고. 메탈광은 아닙니다.... 허허. 비율로 따지자면 적은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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