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속일 자유를 다오양심을 속일 자유를 다오

Posted at 2006. 6. 9. 18:11 | Posted in 수령님 생활일지
내가 도저히 해도해도 할 수 없는 게 중국어다.

그러니까 난 중국어과란 말이다 -_- 어째서 정치학, 경제학, 철학 수업이나 듣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학점으로만 따지만 중국어과 수업이 11학점으로 가장 높다. 다른 것은 그럭저럭 커버하겠는데 단어를 몇백개 내 주고 외워오라는 것은 내게 도저히 무리였다. 그 단어라는 것도 일상적인 단어는 커녕 딱정벌레, 풍뎅이, 바다가재, 해마... 무슨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라도 하자는 건가? 외워도 외워도 머리 속에 남지 않았다.

결국 나는 컨닝을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 내신의 80%가 컨닝으로 이루어진 역작이었기에 오랜만에 하는 컨닝임에도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수강생이 100명이나 되는 수업이기에 (난 좋은 수업이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학점을 잘 준다는 이유로 이렇단다) 적발될 우려도 대단히 낮았다. 더군다나 감독도 매우 허술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상 더 이상 망설일바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고민은 길게 하되 일단 결정되었으면 행동은 빠르게 취하는 것이 좋다.

일단 집으로 가서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옆으로 눈을 돌릴 시 안경이 커버할 수 없는 범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실로 가서 공부 잘 할 법한 사람만 보이면 '오늘만큼은 난 너의 옆에 있고 싶어'라는 추파를 던졌고 나의 매력적인 눈빛에 압도당한 후배를 양 옆에 앉혔다. 나름대로 저항했으나 그래도 이제 어느새 졸업이 눈 앞에 온 여자 후배들은 마지막으로 장애인 봉사활동하는 기분으로 내 제의를 수락해 준 듯 하다. 그리고 좋은 책상을 골라 나올법한 150개 정도의 단어를 모두 책상바닥에 적었다.

준비가 완료되자마자 교수님이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A+뿐이었다. 출석도 완벽했고 발표도 완벽했으며 레포트도 교수님 마음에 들게 적기 위해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며 기독교를 찬양하기까지 했다. 복학생의 자존심이건 뭐건 다 버리고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벽돌에 시멘트를 바르는 일만 남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그 줄, 왜 이리 빽빽하게 붙어 있어요? 이승환학생, 저기 맨 앞자리로 옮겨요."


이틀 연속 이런 포스팅을 하게 될 줄이야...
  1. kritiker
    으음...저는 휴대용 티슈(뽑아쓰는 거 말고 접어서 들어있는 거요. 향기도 나고-_-;) 안쪽 면에 하이텍펜으로 빽빽하게 적었어요. 그래서 시험시간 중에 코 푸는 척 하면서 슬쩍 보고, 들킬 것 같으면 가래 뱉는 척 하면서 구겨놨다가 조교가 저멀리 사라지면 다시 보고...그렇게 F맞을 과목 C+로 올려놨던 과거가 있습니다. (그래놓고 그 과목 결국 재수강했어요;;)
    그런데 저렇게 준비한 상황에서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선생님 너무하시네요. 훌쩍.
    • 2006.06.10 20:21 [Edit/Del]
      어머, 학생이 컨닝을 하다니, 웬일이에요...

      좋은 방법 잘 새겨들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컨닝할 과목이 없다는 게 문제 -_-;;;
  2. 짤방이 아주 낯이 익습니다. (.....)
  3. 어째 처음부터 불안불안 했습니다.
    그나저나 시험은 어떻게 됐습니까? -_-;
    • 2006.06.10 20:23 [Edit/Del]
      이미 머리속에 제 생활이 삽질이라 인식한 듯 하군요, 눈치가 참 빠르십니다.
      시험의 결과는 단어 26개 중 2개 맞았으니 24점 깎이고 -_- 도저히 알 수 없던 암기 10점짜리 틀리고 기타 좀 나가면 아마 5X나올 듯...
      덤으로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컨닝해서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솔직히 사람이 많아서 어지간한 자리는 보기 싫어도 보입니다 -_-;
  4. 쿠쿠쿠.. 이 교수님 혹시 먼저 그분 친구?
  5. 엘윙
    것참. -_-;; 안타깝네요. 그나저나 전공이 중국어셨군요. 사회학과나 경영학과 그런쪽인줄알았는데 ㅇ-ㅇ
    • 2006.06.10 20:24 [Edit/Del]
      전 여러 오해를 받는 편인데 언젠가는 돈 많은 집 아들로 오해받은 적도 있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렇게 맨날 술만 먹고 한량처럼 살 수가 없다고 -_-;
  6. 컨닝이라니요..-ㅁ- 벌받으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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