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단상졸업 단상

Posted at 2009. 2. 28. 16:24 | Posted in 수령님 정상인모드
일단 졸업식이 있었다. 본인이 속한 비주류 학회가 하나 있는데 연락책을 맡는 후배가 연락을 잘 못해서 내 주변 후배들이 하나씩 왔다 가는 상당히 신기한 형태의 뒷풀이가 이어졌는데 덕택에 더 재미있는 모임이 되었다. 내가 두목의 자리에 있을 때 음담패설은 극으로 치닫는다는 좋은 정보를 얻고 난 술에 뻗었다. 어찌 들어갔는지는 날 실어나른 놈만 알겠지, 오후 세 시인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경제적으로 잘 도와주지 못했다고 굉장히 미안해 하시던데 좀 미안하지만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아마 사교육의 혜택을 받아 무럭무럭 자란 후 사회운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한나라당 지지자이신 부모님에게는 새옹지마가 된 격이다. 아... 토익점수도 조금 높아졌을테다. 얼마 전 토익공부를 시작한 친구는 내 점수를 두고 '인간이 낼 수 없는 점수'라 평하던데 인간이 낼 수 있는 점수쯤은 받았을 것 같다. 졸업식날 나도 부모님께 미안한 게 좀 있었는데 명함에 블로그 주소가 찍힌지라 명함을 드리지 못했다. 내 블로그를 보면 출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되서.

정확히 말하면 졸업은 아니라 수료다. 졸업논문을 내지 않았다. 사실 졸업논문은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냥 통과이고 학점에도 영향이 없는지라 퍼서 내는 경우가 많고 요즘 4학년이 보통 바쁜 게 아닌지라 교수들도 그냥 묵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솔직히 제대로 낸다고 제대로 평가할 교수가 많지 않은 게 내가 속한 학교의 현실이고 아마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테다. 그나마 내가 쓴다면 이삼일만 투자하면 학생들 중에서야 꽤나 수작 급에 속하는 졸업논문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이름이 졸업논문인데 그렇게 내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글 하나 쓰고 싶었고 난 그럴 역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안 썼고 졸업이 아닌 수료로 끝났다. 졸업 안 했다고 회사에서 자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회사 다니면서 중간에 좀 써서 나중에 낼 생각인데 시간이 별로 안 나서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다.

이 얘기를 하니 정신줄 놓은 후배놈이 형 멋있다며 형처럼 살고 싶단다. 옆에 있는 정신줄 좀 덜 놓은 친구가 얘처럼 살면 인생 피곤하다고 매우 현실적이고 친절한 조언을 해 주었다.

어쨌든 학교 생활은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소속이 학교로 되어 8년을 있었으니 대학이라는 놈이 내게 준 영향을 약술하는 것도 괜찮겠다. 대학교가 내게 미친 영향은 고등학교와 같다. 고등학교는 참 뭐같은 기관이었고 나로 하여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주었고 대학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주었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나 언론이 기존 제도와 조직 하에서 이들이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회사에 들어갈 즈음 말도 안 되게 좋은 조건의 회사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는데 - 내 급의 학벌의 인간이 가는 기업 중에는 최상위인데다가 왠지 텐프로를 자주 갈 것 같았는데 - 그냥 컷 해버렸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삶을 넘어 다른 지점에서 작게나마 대안을 생산해내고 싶다. 시간은 걸리겠고 성과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조건이나 명예를 좇기보다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작게나마 스스로 의미 있는 모델을 정립해 나가며 이를 뜻이 있는 분들과 공유하고 가꿔 나가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끈을 이어나가고 싶다.

8년이라는 시간이 좀 길었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게끔 학생들 바보 만들기 프로젝트를 열심히 추진한 점만큼은 학교에 감사하는 바이다.


사실 이렇게 열폭한 이유는 학교를 떠나자마자 소녀시대를 초빙했기 때문이다.

'수령님 정상인모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뢰, 또 신뢰...  (0) 2009.04.01
수령의 귀환  (21) 2009.03.30
졸업 단상  (50) 2009.02.28
성격진단검사  (16) 2009.02.11
세상은 울퉁불퉁하다  (22) 2008.10.04
귀국신고 및 감사인사  (22) 2008.06.30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졸업 축하합니다. 그리고 직장생활하면서도 꾸준하게 글 올려주세요..from 독자.
  3. periskop 블로그를 통해 여기를 알게 되었는데

    정말 periskop님 말씀처럼 주인장님의 센스는 최고입니다.

    비슷한 연령대인 거 같은데 그 센스가 무지무지하게 부럽습니다. ^^
  4. 크헉..그랬군...안가기를 잘했어..ㅎㅎ..
    이번주 금요일 저녁에 콩서형과 데네브 님과 한잔하기로 했으니
    퇴근하거든 연락하시길....
    졸업 축하해.....
  5. 축하해욤~^^ 주말잘보내시공
  6. 일헌잭일
    다른건 모르겠구요...
    동영상 찍은사람이 적절한 탱구빠군요...
  7. 저도 올해 가까스로(?) 졸업을 했는데...

    후우~ 정말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거 힘들더군요.

    주변에서는 네 놈 따위가 미쳐서 이것저것 고른다고 항의가 빗발치지만
    그래도 이왕 일하는 거 제가 재미있어 하는 쪽으로 갔으면 해서요.
    토익 1~2점이 아쉬운 마당에.. 학점은 왜이리 바닥인지 ㅡ.ㅡ;;)

    아무튼 수령님..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곳에 길이 있겠지요.

    수령님도 원하시는 바 꼭 이루시고
    거물이 되시길 바래요 ㅎㅎ
    (나중에 텐프로급 가시는 거물되면 저도 데리고 가달라능.....ㅋㅋ)
    • 2009.03.02 20:06 신고 [Edit/Del]
      토익 저는 토익 400~500점이 아쉬웠지만 그냥 공부도 안 하고 탱자탱자 -_-
      저처럼 살아가면 인생이 말린다는 진리는 꼭 간직하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건승하십시오!
  8. 음.. 학교에 대한 생각은 저도 매우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보통 졸업하고 몇 년 지나면 말도 안되는 애교심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봐서요..;;;쩝.. 그나저나 동영상 찍은 분 매우 고맙게도 태연시점에서 촬영을 해줬군요. ㅋㅋ
    • 2009.03.02 20:06 신고 [Edit/Del]
      애교심이 넘치는 놈들이 많아서 맘에 안 들어 죽겠습니다 -_-
      전 개인적으로 태연 별로 안 좋아하기에 저 놈 참 미워 죽겠습니다.
  9. 수료 축하드립니다 :)
  10.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근디 팔년이라니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셨근영. 전 이제 막 4년째라는.
  11. 수료 축하합니다. 수령님은 졸업을 안 한 것이지만, 저는 졸업 못 해서 수료기간이 있었습니다. ㅎㅎ 저도 군대치면 팔년 될 듯.
  12. 추우승
    졸업을 축하합니다.
  13. 제가 졸업할 때만 해도 논문 발표회라는 걸 했었고.. 교수님들이 무쟈게 깼는데.. 저도 한참 깨지고 눈물까지.. ㅠㅠ 요즘은 학부논문에 그 정도 신경 안쓰죠.. 교수나 학생이나..
    • 2009.03.02 20:09 신고 [Edit/Del]
      그런 시절도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대학 교육이 막장 오브 막장이라 해도 지금보다는 십여년 전이 좋았던 것 같네요. 부럽...
  14. ㄱㄹㅇ
    님드디어졸업했네요 추카추카추 >_<
  15. 졸업 축하드려요 ^^;
  16. 졸업 축하드립니다!!
    요즘 저는 수영이가 촘 땡긴다는..ㅋㅋ
  17. 수령각하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ㅋㅋ
  18. 선배님 졸업 축하드립니다. 저는 학교 졸업식이 언제인줄도 몰랐어요. 싸이에 업이 뜨더군요. 그래서 알았지요. 아무튼 감축! "
    +내 블로그를 보면 출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되서." 이 문장 명문입니다.
  19. 졸업 축하드립니다. 이제보니 같이 졸업했네요~ ^^;
  20. 졸업 축하해요. ^^ 아, 그리고... 소시...ㄷㄷ
  21. 민트
    졸업하신거 깜박. ㅠ.ㅠ 죄송해요. 그래도 저 말고 많이들 축하해 줬겠죠? 여튼 죄송.
    흑흑흑...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