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뮌 / 문화창작집단 '날'꼬뮌 / 문화창작집단 '날'

Posted at 2006. 7. 4. 17:48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대학로를 찾은 것은 연우소극장의 '임대 아파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연찮게 연우소극장의 바로 앞에 있는 대학로 1번지의 꼬뮌을 보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뻔뻔하다시피 당당한 시대착오적인 제목과 포스터가 맘에 들었다. 더군다나 스토리를 전혀 밝히지 않는 뻔뻔한 신비주의 정책을 구사하는 점도 눈에 띈다. 그야말로 볼테면 봐라 식이랄까. 이러쿵 저러쿵해도 결국 가장 큰 이유는 임대 아파트를 보려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겠지만. 차마 오천원이 더 싼 게 영향을 줬다고는... 어쨌든 어차피 아무도 안 볼 것이라 확신하고 당분간 재공연도 없을테니 내용은 그냥 막 드러내겠다.

꼬뮌은 시대착오적인 제목과 포스터와는 달리 시대착오적인 내용은 아니다. 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등장한다. 남자는 대학에 들어와 사회주의 운동권에 뛰어든 다소 어설프지만 정열적인 학생이며 여자는 운동에 열성인 공순이지만 남자에 비해 삶에 상당한 중심이 잡혀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후 남자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술에 자신을 내맡기지만 여자는 이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생활공동체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여자의 헌신으로 남자는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여 유학을 간 후 교수까지 되며 사회에 녹아든다.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만 파경을 맞이하고 다시금 예전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주 스토리다.

이런 내용임에도 시대착오적이지 않음은 연극이 비교적 시대의 변화에 따른 386세대의 의식흐름을 잘 좇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런 극이 대단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겠으나 적어도 그 당시 인물들에게는 진지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어느 정도 연민을 담긴 시각으로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서의 내부모순을 부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80년대 말의 시대착오적이었던 모습을 감추지도 않는다. 이렇듯 과거의 암울한 현실과 그것에 대립하는 이들, 그리고 이들 안에서의 모순이 현실적으로 어우러져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소재를 가지고서도 절묘한 균형감각을 이루고 있다.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암울했던 시기였으니 운동에 뛰어든 이에 대해 지나칠만큼 연정의 시각을 보이기 쉬운 소재인데 말이다.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386세대라면 굉장히 폐부를 쑤실법한 장면이 많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순진한 대학생이던 남자는 그저 일률적인 명령을 중시하며 자신마저 의심하는 조직에 반발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과거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고 한다. 워낙 상대가 무식한 시대라 무식하게 대응해도 통하기도 했었고 아직까지 비판이란 게 그다지 먹히던 때도 아니었을테니.

"아니, 왜 내게 아무런 사항을 알리지 않고 지령만 내리는 거야?"
"모두 다 조직을 위해서야."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고, 대체 난 뭐야?"
"우리는 조직의 일부야."
"난 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운동의 주체야."

하지만 이처럼 처음에는 주체와 자율을 중시하던 남자는 어느새 운동에 빠져들어 자신과 조직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몰락에 남자 역시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콜중독이 된 남자의 모습에는 그 어떤 온정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끝없이 추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다소 오버스럽지만 당시 운동권의 정신적 공황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지금 저기 모든 게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넌 아무렇지도 않냐고?"
"정신차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야."
"생활공동체, 웃기시네. 이제 와서 이딴 바보같은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너에게는 가벼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마음이 담긴 일이니까."

이들도 꽤나 폐부를 쑤시지만 이보다 더 386세대를 바보취급할만한 장면이 하나 있다. 딱히 코멘트는 붙일 필요 없이 남자의 코멘트를 들어보자.

"유학을 떠나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김통은 전통과 노통조차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었는데 바로 학생운동 탄압이었습니다. 그들은 연세대로 모아 그들을 싸그리 진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내게 신문지상의 한 소식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반면 군사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고문을 당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끔 군사정권에 대해 희화화하며 농담을 던지는 정도이다. 고문을 당하는 것조차도 거의 대사로만 표현하며 그 대사조차도 군사정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이렇게까지 의지를 굳건히 할 이유가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이렇듯 지나칠 정도로 극은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현실을 살아온 이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의 내면이 그 시대를 더 잘 반영해주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신문지상으로만 보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일테니. 인간이 아무리 현실에 지배당하는 존재라고 해도 그 현실은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극이 조금 잔인하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연극에 참여한 이들이라고 이러한 현실에서 멀었던 인물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그런 씁쓸한 연극을 쓰고 연기하고 조정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자학적인 연극이라 할 수도 있겠다. 특히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40대들이 바라보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날테다. 열심히 사회에 저항한 이들이건 혹은 주변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이들이건 그들은 최소한 이러한 시대를 함께 걸어간 이들일테니. 하지만 자학적이라고 해도 그 자학이 사뭇 진지하다는 점에서 이 연극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지한 자학은 맹목적인 자학과는 달리 미래를 새로이 열어가는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이 끝나고 나름 황당했던 점은 프로그램 파는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는 점 -_- 배가 불렀나... 여하튼  나이든 운동권 선배 빼고는 꽤 추천할만한 연극이다. 나야 그냥 지나간 일이거니 하며 지켜보았지만 이 사람들, 보다가 울거나 민가 따라부를까 겁난다. 만오천원 주기는 좀 그렇고 사랑티켓서 오천원 할인받아 보기에는 괜찮은 극이다. 참고로 연극은 곧 끝나니까 날짜 잘 알아보길. (벌써 끝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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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방인
    저도 무척 관심이 가는 연극이군요. 일그러진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꽤나 불쾌하고 씁쓸한 쾌감을 주더군요.
    • 2006.07.05 17:29 [Edit/Del]
      대구로 내려갈만큼 메이저한 연극이 아니라 아쉽군요 -_-;
      이 놈의 한국은 언제 지방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으려나...;
  2. 저렇게 진부한 내용을(-_-) 저렇게 자학적으로 만들다니 뭔가 이거 씁쓸하네요. 그래도 진지한 자학에는 박수를!!

    .... 승환님도 연극 같은 걸 보시는군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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