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은 특성이 아닌 식별자개성은 특성이 아닌 식별자

Posted at 2009. 4. 19. 11:59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저 친구, 알고 보면 참 특이한 친구야."

누구나 지겹도록 들어 보았을법한 말이다. 또 누구나 자신의 가까운 지인에 대해 느끼고 있을 점이다. 이런 말을 모두 종합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은 개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가 된다. 어중이 떠중이처럼만 보이는 인간도 절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현실세계는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로 짜여진 동네는 아니다. 물론 모든 개개인은 고유한 인격체이지만 거기까지. 정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특이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때로 특이한 사람들만 모인 그룹까지도 존재한다(여기까지만 -_-...)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특이함'을 부여할까? 

나는 그 답은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어중이 떠중이일지라도 나와 짜여진 이는 결코 어중이 떠중이로는 관계망 속에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남자, 내 여자, 내 친구가 어중이 떠중이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도 우리는 그 사람과 관계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일대일 관계가 아닌 그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섯 명이 모여 있는데 네 명이 시끌벅적하고 한 명이 조용한 성격이라면 그 조용함은 하나의 개성으로 부여받게 된다. 시끌벅적한 네 명도 외부에서는 한 그룹으로 묶일 수 있겠으나 내부에서는 각각의 차이점을 찾게 된다. 누구와 누구는 어떤 차이가 있고, 이런 식으로. 즉 '개성'이란 특이성이 아닌 그룹 안에서의 '식별자'에 불과한 것이다.

예전 까르르님의 블로그에 노정태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사실 까르르님의 인터뷰는 입장 자체에는 찬성하는 면이 꽤 많으나 좀 아쉬운 게 내가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테츠엉아가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심지어 면전에서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게 인터뷰다-_-...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궁금한 게 있다면?

“저는 진짜 쇼프로가 재미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20대들과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방식이 쇼프로를 모방하고 있어요. 대여섯 명이 모이면 누구 하나가 큰 목소리로 사회자가 돼요. 그리고 막 역할을 부여해요. 얘는 찌질하고 쟤는 소심하고 너는 엉큼하고… 이런 식으로 좁은 틀로 몰아넣어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열혈정태라고 붙여버리고 역시 열혈정태야, 열혈정태, 오늘도 분노? 무슨 쇼프로 자막 붙이듯이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정말 재미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이것은 20대뿐아니라 30~40대도 마찬가지죠. 대중문화에 쇼프로를 빼면 다른 오락이 없기에 TV에만 의존하게 되는 거고 그러다보면 세상 보는 게 좁아지는 거죠. 문제는 재미로 보고 있다는 건데, 그게 정말 재미있냐는 거죠.
 
사람들이 쇼프로를 모방하면서 사람관계를 맺고 있어요. 자기가 알고 있는 맥락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고요. 요즘 유행하는 오락프로그램들이 사람들이 노는 형식을 본 따서 극화시킨 거잖아요. <패밀리가 떴다>에 대본이 있다 없다를 놓고 난리가 났었는데, 그게 TV사람들이 자기들과 똑같이 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픽션이라고 드러나니까 그걸 못 참는 거잖아요. 픽션이나 논픽션이냐를 떠나서 자기들도 그런 역할놀이를 하는 걸 알지 못해요. 


정말 그럴까? 오히려 현재 TV 프로그램이 그간의 인간관계망을 따라간건 아닐까? 

물론 이름 앞에 하나의 식별자를 완전히 붙이는 거야 TV를 좇아간 게 사실이겠으나 그간 우리의 관계는 항상 그룹 안에서 서로간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확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항상 그 식별자에 의해 정해진 롤 - 그 사이의 유연성의 차이는 있겠으나 - 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해 왔다. 블로그만 해도 타 블로그에 남긴 댓글을 비교해 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 어느 정도의 다른 정체성으로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특히 상하 위계질서가 확실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역할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나이에 따라 이미 어느 정도의 롤이 부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개 연상은 좀 더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연하는 좀 더 숙이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연상이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푸느냐에 따라 연하의 운신의 폭이 조절된다. 좀 더 설치든지, 좀 더 굽신거리든지.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왜 연신 '형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출몰하겠는가? 현실과 별반 다를 건 없다.


어쨌든 우리는 관계망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간의 식별자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좀 더 유연함을 지니지 못함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끊임 없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또 그 차이를 통한 관계라는 정체성, 동질성을 확인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차이를 어떻게 하면 기존에 그래왔던 것처럼 피상적이기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드러낼 수 있는가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본인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여전히 그 기대를 걸고 있다. 

간만에 진지한 개소리를 했더니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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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넘처나는 연예 블로그들에게도 필요한 글인 듯 싶습니다.
    오늘 무도 다시보기 때문에 어떻게 들어간 다음 블로거 뉴스에 가 보니, 모두 같은 옷을 입고있는 듯한 느낌이더군요. 피상부터 피하까지 비슷한 느낌. STC일까요? ㅎ
    • 2009.04.20 14:16 신고 [Edit/Del]
      사실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_- 연예 블로거들의 글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죠. 정말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다면 차라리 디씨 갤러리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다는 게 제 생각...
  2. 손발이 오그라들긴요. 예리하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승환님 블로그를 좋아하는 이유죠. 참 이런 걸 승환님은 '애널서킹'이라고 부르던가요? ㅎ 립서비스는 아니고 진심이지만, 왠지 이 블로그는 그러면 안 될 것 같기도 해서요. ㅎㅎ
  3. "개성"이 "식별자"로서의 기능을 하지만... 제가 아는 몇몇 (높..)분들은 그
    "개성"이 "피해자"를 양산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4. 개성이 뚜렷한 것도 좋지만 블로그에서의 몇몇 특이한 개성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더군요.
  5. 저련
    관계적 속성과 내재적 속성이라는 좋은(그리고 철학 전공자에겐 쌩기초)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명박은 잘생겼다" 라는 문장은 이명박이라는 개체가 가지는 '잘생김性'이라는 내재적 속성에 대한 서술이고, "이명박은 전두환보다 잘생겼다"라는 문장은 이명박이 가지는 잘생김성이라는 속성과 전두환이 가지는 잘생김성이라는 속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념의 구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인터뷰에서는 이 구분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리고 수령님도 이걸 쓰시라는. '특성'을 내재적 속성으로(特性 분명 property 번역한거임 ㄳ) 식별자를 관계적 속성으로 바꾸면 좀 더 멋있고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전통을 드러내는 게 된다는.

    평가 이전에 이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선험적인 규범에 대한 학습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 의식 위에서 출발한 ethnomethodology(민속방법론?인가가 대개의 번역어이던데, 하여튼 인류학스러운 방법론쯤)가 요새 사회학에서 대세인 모양입니다.
    • 2009.04.20 14:19 신고 [Edit/Del]
      오우, 이건 그야말로 브라보로군요. 옛날에 철학 공부한다고 집적거렸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제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이렇게 개념 정리가 잘 안 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랄 뿐...
      아래 문단은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러고보면 우리가 웹에 남기는 기록은 꽤 소중한 자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6. 님 블로그엔 왜 악플이 안달리나연.
    비결이라도 있음?
  7. 저련
    진짜 개성(haecceitas, thisness라고 어려운 거 있삼 ㅈㅈ. '이것임'이 최고의 번역어인듯)에 대한 논의가 중세때부터 있긴 합니다만, 이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형이상학 밖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는.. ㄲㄲ 어차피 내재적 속성도 이것임이 아니면 형이상학적으로 우연한 속성이니까, 관계적 속성으로 밀어붙이삼.
  8. 님블로그는 참 특이한 블로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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