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5단계논쟁의 5단계

Posted at 2008. 3. 27. 17:55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SuJae님의 글 '사람답게 살고, 인터넷하고, 댓글 달자'을 보고 문득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의 논쟁 단계를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실 넘쳐나는 사람들의 논쟁을 단계별로 분류함은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제 경험에 의거해 볼 때는 대충 들어맞지 않을까 합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정념(情念)의 단계
말 그대로 상대방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감정에 근거해서 이야기합니다. 물론 감정적인 부분도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부분이겠으나 이가 우선해버리면 아예 경청이 불가능하기에 절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이가 잘못되었음은 알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2단계 : 변증(辨證
)의 단계
상대방의 전체 논지를 바라보기보다 부분적인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문제 지적은 언제나 유의미하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맥락과 유리되어서는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논지 이탈마저 낳기 쉽습니다.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모든 주장은 일정의 오류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어떠한 대안을 낳으려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대개 지식과시욕이 강한 이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단계 : 투아(投我)의 단계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내세웁니다. 언제나 그렇듯 비판은 쉽지만 작은 대안 제시는 물론 의견 개진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단계에 이르르면 적어도 비생산적인 논쟁은 사라집니다.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 중 무엇이 더 나은지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도 변증법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되는 등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4단계 : 수용(受容)의 단계
기본적으로 3단계와 비슷하지만 자기 의견 개진을 넘어 상대방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inuit님의
경청의 3단계에서 open to your mind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5단계 : 소쟁(消爭)의 단계
제가 생각하는 논쟁에서의 최고 단계로 '論爭'에서 '論'만 남으며 '爭' 자체를 무화시킵니다. '누구의 의견이 옳은가'에서 '주어'가 사라지며 오직 '올바름'만이 남습니다. 엄연히 論과 爭으로 구성된 개념에서 절반을 때어낸다는 게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가능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겠으나 일단 한 번 누군가를 통해 경험하면 이후 논쟁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만큼 마법과 같은 단계입니다.

어느 단계든 분명한 점은 이들 단계간의 차이가 어떠한 '기술'이나 '능력'에 의겨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격'과 '품성'에 의거한다는 점입니다. 2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청과 감정 자제가 필요하고 3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걸고자 하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4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포용력과 상대 존중이 필요하며 마지막 5단계를 위해서는 양 쪽 모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풍요의 심리는 물론 상대방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겸허함'이 있어야만 가능한 단계입니다.

사실 각 단계는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글로 옮겨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한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자신을 둘러 싼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넓어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단계에 서 있습니까?

결론 : 걍 술로 풀자논쟁의 최고수는 나경원,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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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바나나
    오크 여사 무시하시나요?
  2. 어떤 단계냐구요?
    상대에 따라서 단계가 바뀌니 1단계도 5단계도 될 수 있겠네요. 아리따운 여성분에게 대하는 것과 극렬마초(마초를 비하하는게 아닙니다.), 꼴통페미(역시 페미니스트를 비하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꼴통페미는 따로 존재합니다.)와 대화를 나눌때 논쟁의 정도가 달라질 뿐더러 상대에 따라 감정개입의 정도도 달라지니 분명 단계는 오르내리락하겠죠..

    역시 이런 글 보면 너무 재밌습니다. 이 맛에 승환님 블로그 들어옵니다.ㅋㅋ
    • 2008.03.30 16:33 신고 [Edit/Del]
      상대에 따라 단계가 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경우에는 아예 안 되겠다 싶으면 말을 않고 조용히 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반대로 자신이 좋은 상대가 된다면 상대방 역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은 고맙게 받아먹겠습니다 ^^
  3. 오홋, 대단하시네요.

    rss로만 구독하는 유령블로거가 댓글을 남기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네요.

    중국에 계셔서 그런지 한자글도 많은 것도 같구.. ^-^
  4.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사람들이 저하고 말이 안통한다고 하는게 저의 인격과 품성 때문이었던거군요. 크흑.
    근데 저도 아리따운 여성과 대화할때는 급 5단계화 얍삽함을 보입니다.
  5. 아, 좋은 글입니다. -_- 근데 인터넷이 뭐죠?
  6. OK목장
    저의 경우는 욕먹는 게 두려워 아예 자기의견을 안 내려고 하죠..
  7. 무아무쟁의 단계.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생성하는 단계. 언듯보기에는 매우 이상적인 모습 같으나, 끊임없는 논쟁꺼리를 만들면서도 싸우지 아니하고, 밤새 키보드를 두드리는 절대 폐인의 단계.
    내가 없고 너도 없으니 아무런 이익이 없고, 다만 헛된 지식으로 밥 굶기 딱 좋은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이승환님의 5단계 어느 사이에도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8. 전 엄마랑 대화할 때 항상 정념의 단계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고 깨닫게 되었네요. 1단계 aka 말싸움이라고 해석해도 되나요? -_-;
    수령님의 흥미로운 글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슴니다. 이상 유령구독자였습니다.
  9. 형님 퍼가도 괜찮겠죠?
  10. 준석
    허허 좋은 글 읽어서 기분이 좋네요. 염치 불구하고 출처밝히고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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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Posted at 2008. 1. 16. 22:55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당신이 인간의 상태와 조건에 관하여 아주 작은 궁금증이라도 가져본 일이 있다면 절대 이 책을 놓치지 마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고 말콤 글래드웰이 이 책에 대해 말했단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두 권의 책 tipping point와 blink는 세계적으로 무진장 히트쳤는데 개인적으로 이 양반의 직관적 통찰력도 그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양반이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문자매체가 죽어가고 있다고 영감님들이 난리인 이 시기, 그의 책은 유독 영상매체 못지 않은 재미를 안겨주니까 말이지.

그런데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stumbling on happiness’의 저자인 대니얼 길버트는 한 수 위다. 글래드웰이 비행기에서 길버트 만나고 놀랐다는데 장난 아님. 다른 점 다 제끼고 일단 이 책은 무진장 재미있다. 내가 졸 취향 이상한 인간 소리 듣지만 이번만큼은 제발 날 믿어줘~ 이 책 졸라 재미있어. 개인적으로 2006년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음. 내용 역시 매우 좋음. ‘출간 전부터 전 세계 심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을 흥분시킨 최고의 역작!’이라는 카피는 개구라지만 절대 어디가서 명함 못 내밀 내용은 아님. 자꾸 글래드웰과 비교해서 미안한데 좀 더 통찰력 있고 좀 더 과학적이다. 글래드웰 까려는 게 아니고 재미와 통찰력이 님 좀 짱이네여, 수준이기 때문에 자꾸 글래드웰이 떠오름.

어쨌든 이 책을 통해 길버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존나 황금빛 미래를 꿈꾸지만 그것은 항상 엇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대충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알고보면 그게 다 구라라는 것. 아, 끔찍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나도 뭔가 꿈꾸고 뭔가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님. 대충 결론만 말하고 글을 맺어도 되겠으나 이 영양가 없는 블로그에 오시는 어린 양들을 위해 대충 요약하겠음. 이 양반에 따르면…

인간은 통제에서 행복을 느낌. 덕택에 자신이 그럴듯한 미래를 그리는데 그게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나 이는 심각한 결함이 있음. 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미래에 행복하게 만들어줄지 모르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주관성’에서 비롯. 행복은 상상은 매우 빠르고 효과적이기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사물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그 사물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것은 뇌의 구라일 가능성이 무지 높음. 즉 뇌가 없는 것을 채우고 있는 것을 뺀다. 우리는 한 단어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것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실제와 거리가 무지 멀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 ‘이승환’을 떠올려 보라! 누군가는 꽃미남을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근육질을 생각할 것이나 과연? 반대로 미래의 어떤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외 대부분을 생각하지 않음.

이 주관성을 바탕으로 문제들이 발생. 먼저 우리의 뇌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기에 ‘현실주의’라는 문제가 발생.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생각함. 예로 이명박이를 찍은 구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원래부터 이명박 지지자였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명박을 지지할거라 생각함. 미래의 사건을 상상할 때 그 사건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데 이는 현재 상태에 무진장 좌우됨. 배고픈 사람과 목마른 사람에게 배고픔과 목마름 중 어느 쪽이 더 불쾌할 것 같냐고 물으면 현재 자기 상태에 따라 답변함이 이를 보여줌. 우리는 시간, 장소, 상황을 벗어나 생각하고자 하지만 뇌는 현재 상황에 먼저 반응함.

‘현재주의’라는 슬픈 현실이 아직 남아 있다. 우리는 온갖 비교를 하는데 현재의 비교와 미래의 비교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함으로 미래의 감정이 현재의 감정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함. 예로 한계효용체감을 이기는 방법은 다양성을 추구하고 경험간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지만 대개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환원해서 생각하는지라 시간적 텀을 잘 고려하지 못함. 그리고 판단에 있어 대개 초기값에 지나치게 얽매임. 예로 한 번에 스케쥴을 짜면 긴 기간이 있음에도 매번 다른 식사를 하려고 하며 같은 질문을 10보다 큰지 작은지, 30보다 큰지 작은지, 어느 쪽으로 묻는가에 따라 답이 무지하게 달라짐. 또한 현 상태를 대안과 비교하기보다 과거와 비교하게 되어 세일상품에 속아 넘어가고 타 제품과 비교하며 사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을 상실함.

자, 확인 사살을 거치자. 이번에는 합리화. 사실 경험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적어도 사건보다는 해석 방식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에게 유리하게 개념 정의를 하고, 좋은 사실만 받아들이고, 나쁜 사실은 딴죽을 건다. 즉 현실과 낙관적인 뇌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함. 심리적 면역체계는 강한 고통에 오히려 긍정적 생각을 일으키고 덤으로 불가피한 요인은 대개 그렇게 해버림. 그러나 이를 우리는 알 수 없기에 현재의 모습에 대해 긍정적 관점을 지니고 미래에도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끔 됨.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에 속고 있음.

이런 닝기… 이렇게 암울한 소리를 지껄인 후 드디어 저자는 답을 내놓는다. 답까지 없었으면 자살할 뻔했음.

우리의 감정 경험은 매우 모호해 그 당시 어떻게 느꼈음에 틀림없다는 이론에 영향을 받는다. 결과 과거 경험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없고 반복, 연습한다고 감정 예측의 오류가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은 ‘오늘의 자신’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뢰할 만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를 이미 실제 경험을 한 ‘오늘의 누군가’로 옮긴다면? 놀랍게도 그것은 매우 정확하다. 인간은 자신을 평균적인 인간 이상이라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독특성을 실제보다 과대 평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경험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결국 다른 사람의 경험이야말로 미래 감정을 예측하는 데 손쉽고 효과적이지만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비슷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믿을만한 방법을 거부하고 흠도 많고 오류도 많은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훈련을 통해서도 현재를 탈피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으나 이를 예측하기 위한 정보는 우리 코 앞에 있다. 단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을 독특한 존재라 여기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종종 거부하고 만다.

요약하면 잘났다고 까불지 말고 타인의 경험을 경청하고 신뢰할 필요가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저자의 말에 거의 구구절절 동감한다. 물론 타인의 경험이 자신에게 들어올 때는 많은 부분이 사상될 수 있다는 문제는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sample case가 늘어남에 따라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것이다. web2.0에서 '집단지성'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는데 이만 보아도 소수의 천재들보다 다수의 대중이 내놓는 결과물이 훨씬 신뢰할 수 있음을 볼 수 있고. 단 현대사회가 워낙 복잡한만큼 각 사건이 어느만큼 개별적이고 어느만큼 보편적인지는 결국 판단자의 분석력에 달려 있기에 너무 많은 부분을 타인의 경험에 의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자기라는 개체성은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러한 개체성 역시 '인간'이라는, 그리고 '사회'라는 큰 보편성 위에 존재하는 작은 부분에 불과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책. 아무래도 나같은 민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해 봐야 무식함만 드러날 것 같으니 여기서 끊음. inuit님이나 buckshot님처럼 통찰력이 뛰어난 분이 읽고 코멘트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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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나님 역시 빠르시군요. ^^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2. 벌써 키포인트를 찿으신듯 싶네요.^^
    "잘났다고 까불지 말고 타인의 경험을 경청하고 신뢰할 필요가 있다는 것"
  3. 갖고 있으면 나한테도 좀 빌려줘 봐라.
  4. 1월의 책으로 거의 당첨..! 하하;-_-
  5.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6. 민트
    바본가봐요.
    스크롤 내려버렸음. ㅎㅎ
  7. 저도 요즘 이책 읽고있는데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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