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어른들 하기 나름이라니까요애들은 어른들 하기 나름이라니까요

Posted at 2010. 11. 9. 18:14 | Posted in 수령님 정상인모드
전태일의 죽음은 70년대 대학생을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한 기폭제였다. 오는 13일 전태일 분신 40주기를 앞두고 신문들이 바쁘게 생산하는 특집기사에서 전태일의 사회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대학은 고요하다. 하반기 기업채용이 막바지에 접어든 시기라 더욱 그렇다. 이미 대학가에서 전태일이니 노동조합이니 하는 담론은 빛바랜 흑백사진 같아 보인다. 경향이 지적한 대로 전태일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반면, 대학생의 고민은 급속히 개인적 차원으로 수렴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산재한 사회문제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대학생 역시 많다. 다만 이들의 문제의식이 생존경쟁 일변도의 분위기에 공론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노력을 경향이 자주 주목해주었으면 한다. ‘이런 부분, 참 잘했다’라고 다독이는,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런 노력에 함께하고 싶지 않니’라고 속삭이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전태일 분신 40주기를 맞이하는 지금이 젊은이들의 문제의식을 발굴할 적절한 시점이 아닐까. 젊은이들의 고민 역시 ‘현재진행형’일 수 있는 계기를 경향이 꾸준히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간만에 보는 개념글이다. 여대생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글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멋진 글에 몇 마디를 더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이 땅의 젊은이는 병신으로 여겨졌다. 87년의 승리를 낳은 잘난 40대는 민주주의 뿐 아니라 산업화까지오 이루어낸 역군인 반면, 현재 젊은이들은 낭만도, 야망도, 꿈도 없이 그저 보수적이고 자기 안위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 

이게 시대의 흐름이고 많은 젊은이들이 저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또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환경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탓하며 훈계질하는 꼰대들은 많은데, 바닥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조명은 거의 보지 못했다. 있어봐야 자기랑 정치적 성향 맞는 아해들 띄워주는 수준. 

그럼에도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젊은이들의 작은 노력은 도처에 있을 것이다. 추억에 잠겨 거시적 담론을 이야기하며 만족감을 얻기보다, 다양한 일상 공간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눈을 기울여주는 이들은 많지 않다. 

늙은이 박노해는 '‘젊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다. 10대라도 겉늙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가슴에 시가 살아 있고, 탐험가가, 반항아가, 혁명가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정말 젊은이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부터 먼저 젊은이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지만 가치 있는 도전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은 그 출발일 것이다.

최소한 자기중심적으로만은 바라보지 말자
  1. 지나가며
    1빠다...오늘은 로또를 사볼까나...
    (레진블로그 놀이...)...
  2. 참 살기 팍팍한 세상입니다(...)
  3. 그러니까 수령님은 젊은이?
  4. 여성와 나이 적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발차기는 계속되어야합니다 쭈욱~
  5. 꿈도 야먕도 낭만도 업ㅂ이 죽지 못해 삽니다..

    이러다 변태가 되는 겁니까??
  6. 댓글 수정하려고 했더니 비번이 기억 안나서(...)

    저 짤방에 사용된 만화 제목이 알고 싶습니다... 쿨럭..
  7. 바른손
    '‘젊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다. 10대라도 겉늙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가슴에 시가 살아 있고, 탐험가가, 반항아가, 혁명가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

    ------->
    이제 소녀시대는 마음이 젊다고 우기면 영원히 소녀시대 할 수 있는거군요.ㅎ
    하긴 바니걸스 할머니들은 여전히 바니걸스.ㅎㅎㅎ
  8. 오르페오
    여대생이 쓴 글이기에 퍼왔다고 확신합니다.
    잘 지내죠? (별로일 것 같지만...)
  9. 그러니깐 나한테 관심좀..................

    관심받고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
  10. '젊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제 비록 나이는 많으나 아랫도리는 한창 10대의 팔팔함 그자체로 쿨럭;;;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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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은 중요한가?사관은 중요한가?

Posted at 2007. 11. 4. 21:09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예인님의 글을 보고 생각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관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관점', 즉 '해석의 틀'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대학 초창기 시절 두 집단에서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집단은 관점이 완전히 다른 집단이었는데 약속이나 한 듯 이런 말을 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도 선배들은 제가 말을 못 알아먹는 놈인 것을 일찍 인지해 주어서인지 별로 반복학습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원칙적으로는 저 역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그 어떠한 데이터도 단순한 수집만으로는 절대로 어떤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시킬 수 없거든요. 가설은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두부 자르듯 자르고 그 과정에 대해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할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그리고 엄밀성의 차이는 있겠으나 과학이라는 규준에 따라 결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검토하며 반증 사례가 있을 경우 이를 보완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음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관점, 문제의식이 중요하다면 수없이 많은 다른 관점과 그것이 비롯된 문제의식에 대해 일정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 단지 저 말을 되뇌인다면 그것은 독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그치게 되겠죠. 그러나 정말 아쉽게도 이러한 전제는 동반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속했던 집단들도 사관이나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논한 후 자신들의 관점이 올바름을 강조하기만 했거든요.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옳다는 전제하에 그것이 만병통치약인 양 모든 현실을 해석하려는 거죠.

물론 이러한 각각의 해석틀들은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쓰레기 해석틀이 아닌 꽤 적용할 데가 많다고 보아도 됩니다. 세상에 되도않은 해석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하철만 타고 무슨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둥 소가 우는 소리랑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똑같다는 둥 하는 찌라시가 널려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제 아무리 비교적 보편성을 지닌 해석의 틀이라 해도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처럼 얽히고 섥힌 사회에서 하나의 틀을 가지고 모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좋은 판단을 낳을 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좁은 틀이 가지는 더 큰 문제는 좋은 답을 낼 수 없음에 앞서 문제 자체를 곡해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수학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문제 자체를 엉뚱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죠. 위에 예인님 글에서 볼 수 있듯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비판받는 주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훨씬 설득력이 높음에도 그저 남성 - 여성의 문제로 치환시키니 그게 설득력을 가질 리 없죠. 물론 자신들의 해석 틀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일반 대중이 성문제는 물론 사회문제에 관한 제반 지식에서 이들보다 훨씬 떨어질지 몰라도 그 넓이에서는 훨씬 넓습니다. 일부 좌파들이 모든 계급 문제로 환원시키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골프 선수들은 하나의 클럽만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적합한 클럽을 사용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스포츠에서 이러할진데 수많은 구성원들이 복잡한 관계를 맺는 우리 사회야 어떻겠습니까? 하나의 해석틀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일견 명쾌해 보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문제에는 그에 합당한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특정한 시각을 고집하는 이는 자신과 대립되는 시각이 문제 해결을 막는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이러한 모습은 되려 문제의 본질을 곡해하는 경우만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좁은 해석의 틀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려는 모습보다 넓은 관점을 아우르며 문제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서로 대립되는 듯한 시각조차 때에 따라서는 보완관계에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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