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번역보다 외래어 표기법부터개념 번역보다 외래어 표기법부터

Posted at 2009. 10. 12. 13:05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민노씨가 거버넌스 어쩌고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무식해서 내용은 잘 모르겠고-_-;

다만 외래어 사용에 대해서 나는 별 반감은 없다. 의외로 많은 개념들이 그대로 옮기기 힘든 경우가 많기에. 일반인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불가능한 철학 용어가 아니라도, 신조어는 외래어에 의존하는 게 편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북녘 동네처럼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_-라 부르고 중국처럼 얼음물뿌림-_-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그리 편리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은 오히려 외래어 표기가 아닐까 한다. governance는 거버넌스라 쓰고 contents는 콘텐츠라 쓴다. 혹자는 고버넌스라 쓰고 컨텐츠라 쓰기도 한다. 때로 가버넌스-_- 라고도 쓴다. 칸텐츠라 쓰는 건 보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때 무려 윤선생 파닉스 받아쓰기에서 상을 받은 나의 저질스러운 영어 실력에 따르면 적어도 고버넌스보다는 거버넌스가 가버넌스가 가깝다. (고 착각 중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애플, 구글은 이대로 읽어봐야 외국인 알아듣지도 못한다. 김미화씨는 미국 가서 밀크라고 하니 못 알아들어 그냥 '미역 주세요'하면 다 알아 들었다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밀크라 쓰지 않고 미역이라고 써야 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1집 내고 좆ㅋ망ㅋ한 그룹 밀크... 아아, 보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외래어는 한국인이 편리하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지, 외국 발음에 가깝게 쓰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맥도날드를 마구도나르도라 하고 중국이 마이땅라오라 한다고 해서 비웃을 일이 아니다. 자국민이 알아들으면 그만이며, 더 많은 자국민이 알아듣기 위해서는 외국어 발음에 이끌려 다양한 표기를 하기보다, 분명히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입장에서 외래어 표기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아쉽다. 한글날이라고 웹에서의 언어에 대해 씨발씨발거리는데 그게 그리 생산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놀이터 가서 왜 이렇게 흙 묻히고 지저분하게 노느냐고 따져봐야 욕만 먹는다. 그보다 필요한 상황에서 지킬 수 있도록 외래어 표기법 정도는 확실히 교육하는 게 좋지 않을까?

  1. 갑자기 어륀지 생각이 나는군. 외래어 표기법은 따라야지. 그래서 난 오늘도 굳건히 구사나기 쓰요시라고...쿨럭.
  2. 미역주세요.. ㅎㅎ
    동감! 잘 보고 갑니다..
  3. 격투기 관련 인터넷 언론에 종사하는 모 기자는
    정말 철저할 정도로 외래어표기법 준수하는데 욕이란 욕은 다 먹더군요.
    피터 아츠를 페테르 아예르츠(네덜란드어 표기법을 따지면 후자가 맞습니다)라 쓴다고
    온갖 욕설 댓글 달리는 거 보면 누굴 탓해야 할 지 가끔 혼동스럽더군요.
  4. 대야새
    오호 중국어에 영어도 잘하는 승환~~
  5.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형이 부러울 따름;;

    나 같은 사람은 이런것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는;;

    형 글을 읽고 보니 전적으로 형 의견에 동의
  6. 오, 역시 개념글이고만요. : )
    "외래어는 한국인이 편리하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지, 외국 발음에 가깝게 쓰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 공감하면서, 다만 외국어 발음을 '보충적으로' 존중할 필요는 당연히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취지로 쓰셨겠지만요.

    추.
    방명록 확인 부탁!
    • 2009.10.16 00:31 신고 [Edit/Del]
      전 좀 의견이 다른 게 보충적으로도 그리 존중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일단 표기만큼은 제대로 하고 발음할 때야 대충 알아먹으면 되니 맘대로 해도 되는 정도로 생각한달까요? 지드래곤 노래도 졸라 못 알아 듣겠더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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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Posted at 2008. 12. 28. 12:21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성추행범의 누명을 쓴다는 소재는 좋은데 이후는 별로다. 사건이 해결될듯 말듯하는 긴장감이 느껴질 필요가 있는데 끙끙대기만 하다가 어찌 풀려나가는 게 좀 짜증, 또 주인공이 석방이라는 유인과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했다는 손해 속에서 갈등하는 것도 담아내야 할텐데 이런 거 전혀 없음. 아무래도 드라마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로 넣기에는 그 시간적 제약이 크니까. 그나마 140분이라는 엄청난 러닝타임으로 이를 커버하려 노력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계. 덤으로 너무 작위적이라 보다가 접어버렸다. 그래도 장점을 꼽자면 카세 료의 찌질한 연기가 극강이라는 점인데 이 블로그 주인장의 실제 삶을 보고 싶다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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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집에가서 야동봐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듯한 저 눈빛에서 나는 무한한 동질감을 느꼈다.

사실 이걸 보면서 생각난 것은 내가 이런 일에 휘말리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 주인공 집을 수색해 AV가 좀 나왔다고 경찰이 이걸 연관짓는데 내 하드디스크 뒤지면 삼족을 멸할 듯... 야동은 보고 나면 깨끗이 지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본인이 현재 인터넷을 끊은 상태라 이것마저 지우면 그나마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문화생활마저 영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혹시 마음 좋은 독지가가 있다면 USB 2GB를 동대문구를 대표하는 슬럼가 이문동으로 보내 주셨으면 한다. 학교에서 다운 받아 집에 들고가게...

ps. 일본판 제목은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인데 한국판 제목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은/는', '이/가'의 차이는 '이/가'쪽이 비교의 뉘앙스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내가 하지 않았어'는 '다른 사람이 했어'라는 뉘앙스를 준다면 '나는 하지 않았어'는 순수하게 자신의 행동을 부정함으로 좀 더 억울함의 뉘앙스를 준다고 할까? 이런 점에서 훌륭한 의역은 아니란 게 조선어를 사랑하는 수령님 생각. 근데 친구 한 놈은 '내가 하지 않았어'가 더 억울해 보인다고 하는 걸 보니 역시 조선어는 참 어려운 듯. (정확히는 신경 안 쓰는 게 맘 편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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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앗싸 일빠 2연속!!! 8기가로 보내 드릴까요?
  2. 민트
    저 사람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있군요. +.+ 아...연말을 맞이해 영화 보고 싶다;
  3. 비밀댓글입니다
  4. 저련
    승환님의 경험인 듯 하군요. 길거리 폭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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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번역은 반역인가

Posted at 2006. 4. 9. 23:41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한국에서 번역 수준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은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 빈치 코드와 같은 메가 베스트셀러도 두세장에 하나씩 오역이 있었음이 밝혀진 것은 이미 유명합니다. 또 그가 가진 문화권력 때문에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유명한 이윤기씨조차 강대진씨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역을, 강유원씨에게는 '장미의 이름'의 오역을 각각 지적당한 바 있을 정도니 이름 없는 번역가들의 경우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며 이런 번역 상황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입니다.

박상익 교수가 쓴 책 ‘번역은 반역인가’는 이런 ‘알 사람은 다 알’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거꾸로 이야기하면 ‘모르는 사람은 다 모를만한’ 이야기이지만 어차피 ‘모를만한 사람은 이런 책 볼 리 없다’는 게 제가 내린 슬픈 결론입니다.

여하튼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책을 내 놓은 박상익 교수는 실제로 번역에 대단히 힘을 기울이는 분입니다. 예로 박교수의 역서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에서 박교수는 단순히 과거의 텍스트를 번역한 것뿐만이 아니라 ‘깊이 읽기’ 코너를 추가로 저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해당 텍스트의 시대적 흐름과 상황을 놓치지 않게 할 정도이며 주석의 꼼꼼함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 박교수가 쓴 책인만큼 이 책은 그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해 상당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점 역시 눈에 띱니다. 강대진씨의 ‘잔혹한 책 읽기’는 상당히 구체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고전어라는 전문 영역에 한정한 책이기에 일반 독자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 책은 설사 번역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흥미유발에 가까운 1장과 도서관 문제의 제기를 다루고 정리 부분에 해당하는 4장이 책의 곁가지라면 한국의 번역 수준과 실태를 지적하고 실제 번역이 이루어지는 상황과 그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2장과 3장은 책의 핵심부에 해당합니다.

박교수는 2장에서 표정훈씨의 말을 빌어 현 대학교수들의 무성의한, 혹은 수준 이하의 번역에 일침을 가합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파랑새’의 ‘찌루찌루 미찌루’부분을 인용하며 일본어 중역의 문제도 제기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는 번역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질타합니다. 근대 정치사상가인 홉스, 로크, 루소 등의 번역본이 거의 없음은 물론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조차 번역되지 않았음을 질타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번역이 제대로 이루어진 학자는 프로이트와 니체 정도이며 그들의 전집 번역 역시 최근에야 이루어진 성과임을 볼 때 인문학 서적에 대한 한국 번역의 현주소의 위치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번역이 서광사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속도는 미미한 정도이고요.

3장에서는 ‘번역의 실제’라는 제목 하에 번역자의 조건, 오역문제, 번역 환경과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합니다. 짧게나마 언급하자면 번역자라면 무릇 다양한 참고 도서를 참조하며 많은 배경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모국어 구사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역 문제에 대해서는 다빈치 코드, 단테 클럽, 장미의 이름,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등 실제적인 예를 들며 비판하며 충실성과 가독성, 양 쪽 모두를 충족시킬 번역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또 한국의 번역환경에 대해서는 ‘일 년에 다섯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도… 교수새끼들 일 년 월급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연구실적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생계유지도 힘들 정도라며 그 열악함을 비판합니다. 또한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저급한 욕구에 호소하는 상업출판에 힘을 기울여서는 안 되며 번역자와 긴밀한 협조 속에 혼돈스러운 글에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박교수가 일일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 외에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먼저 번역인에 대한 대우 개선이 시급합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그 분야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으며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수준상승을 이룬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에 불과합니다. 번역료 재고나 번역인의 작업과정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처우 개선이 없이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리 없습니다.

특히 인문학 분야는 어느 정도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분야는 도서대여점, 도서관 등을 통해 일정 이상의 판매량조차 보장되지 않기에 현재 번역의 질은커녕 번역 그 자체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며 이것을 해결할 방안은 역시 국가의 지원이 가장 절실해 보입니다. 박홍규 교수는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며 서문에 아무도 번역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번역에 임했다고 말한 적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교수들에 냉엄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교수들의 경우 번역은 그저 글쟁이들의 일이라는 생각 하에 학계에 성역을 쌓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박교수의 말처럼 논문은 학생만을 위한 일이라면 번역은 전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훌륭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은 논문만 쓰고 교재편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번역 교육 역시 확대해야 합니다. 각 대학교의 어문학과의 전문 번역 수업은 한두개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학교에서 되도록 많은 실력상승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대학 교육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회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교육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박교수의 주장처럼 논문을 번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활성화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것일 뿐 아니라 이러한 번역은 후학들에게 계속해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유용성이나 장기적인 학문 발달에도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박교수는 말합니다.

이 모든 해법들이 한 번에 이루어질 리야 없겠지만 일단 시작한다면 그 결실이 큼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의 선진국에서는 번역의 중요성을 높이 보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펼쳐왔고 이러한 지원이 현재 그들의 위치를 낳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박교수가 말하듯 이슬람이 황금기를 맞은 것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번역을 통해서였고 현대 일본이 학문의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의 우수한 번역 능력에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면서,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갈 길이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번역의 중요성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당위임 역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박교수의 글을 인용하자면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한가한 탁상담론에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오히려 번역을 할 것인지, 반역을 할 것인지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교수신문을 보면 서로의 역서에 대해 비판을 주고받고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주역이 너무 철학에만 쏠려 있는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번역과 비판 문화가 철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더욱 활성화되어 학계가 올바른 번역 문화를 이끌고 전체적인 번역 문화수준이 상승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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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iac   06/03/14 21:23 
글쎄요. 문제도 명확하고 해법도 명확하지만.
'돈'이 안되는 현실에서 상황 개선을 기대하기란 좀처럼 힘든 일인 것 같아요.
프리스티   06/03/15 01:01 
아르마리우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역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 같긴 하더군요.
이승환   06/03/17 21:05 
Amnesiac / 결국 돈이라는 슬픈 명제로군요. 저에 대한 해법도 돈 좀 쥐어서 제3국으로 내던지면 될텐데 정부는 왜 조용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승환   06/03/17 21:06 
프리스티 /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한데 반대로 취소되는 분야도 있고 -_- 참 종잡을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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