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에 어서오세요NHK에 어서오세요

Posted at 2007. 9. 3. 00:49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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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원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애니메이션으로 봤습니다. 동네 만화방에서 어떤 놈이 1권을 빌려갔는지 도저히 반납할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그걸 독촉 안 하는 주인 도 참... '하레와 구우'마냥 사실상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거나 '박살천사 도코로짱'처럼 무진장 짧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한 TV 애니메이션을 본 게 몇 년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사실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히키고모리(은둔형 폐인)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인데요. 사실 이 부분에서는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작가가 히키고모리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여주인공이 가진 생각을 돋보이려 하기 위해서이지, 히키고모리라는 특정 계층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거든요. 히키고모리라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은 그다지 히키고모리답지 않습니다. 별로 일관성도 않고요. 후반부에 이를 수습하기 위해 '후배와 함께 있으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등 주인공의 독백을 넣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요. (물론 제게 한 방을 먹인
아녀자만 하겠냐만)

흐름 뿐만 아니라 히키고모리의 삶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거나 이해하려 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꼭 소수자의 시각을 대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결여되었다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의식주가 충족되면 그 짓도 못 한다는 식의 생각을 볼 때 (심지어 해결방식은) 작가의 시선은 교과서를 뛰어넘지 못함이 잘 드러납니다. 매력적인 소재를 단지 메세지를 살리기 위한 방식이나 개그의 소재로 삼은 것에는 아쉬움이 큽니다.

뭐, 이렇게 말은 했지만 소문이 헛소문이 아닌지라 꽤나 재미있어서 폐인마냥 쉴새 없이 보았습니다. 등장하는 주연급 네 명은 모두 뭔가 정신적인 문제, 혹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뭐, 이런 인물이 중심이 되는 애니메이션이 없지야 않지만 특이한 점은 이들간의 관계, 그리고 얘네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입니다. 이들은 충고라는 이름 하에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으며 상대방의 폐부를 찌릅니다. 약점이 뚜렷한 상대방이 그럴듯한 (때로는 당연한) 논리로 둘러쌓여 있는 그러한 논리를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때로는 입을 닫고 괴로워하거나 때로는 함께 도취되지만 결국 부정하지는 못하죠.

그러나 사실 그러한 말들은 모두 화자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자신이 내놓은 말들은 결국 자신이 현실에서 상처입은 것을 보호하기 위한 교묘한 논리이거나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킬 경우 자승자박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들이죠. 그럼에도 스스로는 그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채, 혹은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모순인 말들을 내뱉는 것이죠. 결국 이런 말들은 자기자신을 긁어대는 말에 불과하죠.

주인공 사토와 여주인공 미사키의 관계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여주인공 미사키는 뜬금없이 주인공 사토를 히키고모리에서 탈출시켜주겠다고 나서지만 사실 구원받고 싶어하는 쪽은 도리어 자신입니다. 결국 사토가 히키고모리 탈출을 위해 미사키를 원하는 게 아니라 미사키가 자기 존재 의의를 보장받기 위해 사토를 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토가 히키고모리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토는 이미 '미사키의 사토'가 아니니까요. 결국 미사키는 '사토를 도와주어야 한다'와 '사토를 히키고모리인 채로 놔 두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갈등하고 이는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날만큼) 몰아넣어 버리죠.

이러한 구성은 마치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극적인 (좋지 않은 표현으로 정신병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현실에도 이런 관계는 쉽사리 눈에 띱니다. 우리는 쉽사리 타인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충고하고 가치판단을 내립니다. 무엇은 옳고 또한 무엇은 그르다고 너무나 쉽사리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충고와 판단은 결국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쉬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뒤덮인 충고와 판단은 타인의 세계에 공통 적용될 리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이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불쾌해하죠. 실제로도 남에게 쉽사리 충고하고 판단하는 이들을 보면 자기 삶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토리가 우울하거나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상황에 개그를 적절히 잘 끼워넣은 것도 큰 원인이겠으나 기본적으로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충돌하고 오해하고 꼬인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진심으로는 서로를 위하며, 또 그러한 마음을 느끼며 신뢰를 키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따뜻한 결말로 나아갑니다. 이러다보니 좀 뜬금없는 흐름이나 인물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물론 현실과도 좀 동떨어져 보인다는 문제는 있지만 우울한 소재를 가지고서 굳이 우울한 스토리로 나갈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저같이 밝은 사람은 그런 거 싫어요.

어쨌든 보면서 반성이 되던 게 사실 저도 나이가 들수록 그럴듯한 충고나 논리가 늘더라고요. 이 블로그만 해도 그렇고요. 다 제 한이 쌓여 나온 꼬이고 꼬인 헛소리일 가능성이 99%에요, 다들 알아서 필터링하리라 믿습니다. 아, 덤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엔딩곡을 듣기 위해서라도 꼭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귀찮아서 엔딩곡만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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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1등이다!! 이렇게 장문의 감상문을 쓰신걸 보면 정말 재밌나봅니다. (하긴 이승환님은 맨날 장문을 쓰시지..후후후) 히키고모리는 잘 모르지만, 집에서 하루종일 와우만 하는 그런 사람 -_-?을 상상하면 되겠군염. 왠지 슬퍼지는군요.
  2. 프리스티
    원래 원작이 소설입니다. 만화는 1권만 보고 애니메이션은 못봐서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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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

Posted at 2006. 5. 10. 22:38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예전 이학사에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라는 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소수자의 권리를 옴니버스식으로 나열한 책으로 당연히 많이 팔렸을리는 없습니다. 이 책은 그 후속작 정도로 볼 수 있는 책인데 '다르게...'와 달리 학술적인 논문이 모여 있습니다. 논문이니만큼 좀 딱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논문이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읽어보니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논문의 한계일수도 있겠으나 수치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묻혀버린 느낌입니다. 소수자가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 사건의 나열이나 수치보다는 그들의 육성을 통해서야 더 와닿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논문 모음에서도 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전체적인 소수자운동의 조망은 윤수종 교수의 글 하나뿐입니다.

이러다보니 그저 수치정리, 인권운동전개상황을 찾기에는 좋겠지만 넓게 보지도, 그렇다고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기도 부족한 어정쩡한 책이 되었습니다. 물론 수치나 전개상황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으나 어차피 글이 별로 흥미있게 쓰이지 않은터라 차라리 관심있는 각 분야에서 책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개중 추천할만한 부분은 윤수종 교수의 글 '우리시대 소수자운동의 특성과 함의'가 전체를 조망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고 글도 깔끔합니다. 윤교수는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범법성'으로 규정하기 쉽다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확실히 한국은 소수자에 대해 아직까지 포용력이 너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사회적 죽음을 의미할 정도니까요. 그러고보니 홍석천씨는 뭐하고 사나 -_-...?

그리고 넝마공동체(넝마주이)가 아직 있는 것은 참 놀랍습니다. 한 번도 못 봤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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