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와 인문학, 인문학적 삶인문학자와 인문학, 인문학적 삶

Posted at 2010. 10. 3. 05:29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어떤 글을 읽고 나니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는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의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어 몇 마디...

사실 인문학은 전통적으로 잉여의 삶이었다. 그냥 시간 남고 생계 걱정 없는 사람들의 엘리트적 취향이랄까? 그런데 잉여의 기준이 단순히 '경제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이라면 굳이 인문학만 여기 속할 것도 없다. 이런 잉여짓은 어느 분야에서나 가능하다. 일본의 오타쿠들은 그 비디오테이프로 한 프레임, 프레임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잉여짓이 신기하게도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등 명감독을 낳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에서도 잉여짓이 많은 인문학자를 낳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앞서 이야기한 오타쿠짓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서 그 누구도 '오타쿠의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그리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높이 울려퍼지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맥락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인문학계 밥그릇의 위기'이다. 점점 돈 되는 학문만을 중시하고, 당장 돈과 거리가 먼 문사철 위주의 학문은 버림받으면서 생기는 저항이다. 또 하나는 '사회 전반적 상식의 결여'이다. 워낙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까 이것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기틀을 인문학에서 찾는 것이다.

대충 이런 역할(...)


첫 번째 '인문학계 밥그릇의 위기'는 사실 so what? 이다. 지금 이 순간도 기계에 의해 수 많은 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 신문 배달하는 사람들은 5년 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결국 인문학계 종사자들은 그 정당성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 정당성을 찾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상식이 결여된 사회'이다. 상식은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고, 과학의 영역으로 재단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때문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의 필요성이 소환될 수 있는 정당성을 상식에서부터 이끌어내는 것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인문학계 종사자들은 상식이 결여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가? 

학문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가치가 있다. 나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쌓아 올린 지식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에 글조차 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인문학이 요구되는 상황은 단지 그 지식이 쌓아올려지지 못해서는 아니다. 많은 인문학도들이 인문학을 실용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인문학의 문제는 학계 등에 투자가 되지 못해 지식을 산출해내지 못하기보다, 오히려 '실천'에서 길잡이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센델의 책을 읽는 것이 '인문학 함'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최근 몇 년간 인문학계에서 내놓은 거의 유일한 눈부신 성과일 것이다. 그 외에서 인문학의 활약은 다양한 문화교실 등 적당히 귀족스럽고 된장스러운 부문, 또는 정말 '순수학문'이라는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정말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인문학계에서 더 나은 답을 내놓고자 한 적이 얼마나 될까? 온갖 모순 속에서 인문학을 하는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 왔는가?


대충 이런 느낌?


물론 '학'을 하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주변에 종종 과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삶이 과학적이냐면 그렇지 않다. 여느 사람처럼 대충 살다가 실험실에서 과학을 한다. 철학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삶에 여러 질문을 던지기보다 텍스트를 가지고 씨름한다. 어차피 전문화가 죽도록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이는 너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 인문학은 대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다시 한 번 '학문'으로 회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밥그릇 싸움'에서의 논리를 담보해 주지 못한다. 실용이라는 값싼 이름으로 인문학이 무시당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진정 실천적인 학문이 되어야 할 인문학이 그저 '인문학의 위기'라는 구호 아래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학문이라는 영역에 매달리는 인문학도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대중이 더 인문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PS. 양아치 교수와 그 양반들 핥아주는 학생이 넘치는 한국 학계에서 이런 이야기도 좀 웃긴 듯하다...

맞아야 될 교수들 존나 많은 우리 나라

참고로 제가 나온 학교에서는 유독 교수 성추행도 많았던 걸로...


PS. 솔직히 '오타쿠의 위기'론도 있기는 하다만 문맥상 생략...




  1. !@#... 매트 테일러의 "21세기 계몽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AC7ANGMy0yo (RSAnimate 버전. 자막은 없...)를 추천합니다. 인문학에서 실용과 깊이는 별개가 아니며, 얼마든지 할 일니 넘친다는 깔끔한 사례.
  2. 인문학이 뭐임..? 나에게 돈을 주나..? 라는 시대적 상황..?
  3. natsume nana
    오타쿠의 정의는 뭐임?
    나 어제 고향의 꽃이란 만화보고 결말이해가 잘안되서 이곳저곳 블로그 찾아다니면서
    결말 상상햇는데 이런것도 오타쿠짓임>?
  4. 지나가며
    삼겹살 사준다고 글 남겼는데..대답이 없으시네...그닥 먹고 싶지 않으신가봐여...
  5. 상식이 결여된 사회는 인문학이 잘 자랄 토양입니다만, 그 비옥한 토양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 있는 이 거지같은 사회가 아쉽습니다. '입고, 먹고, 사는' 문제에 너무 집착을 하는 시대다 보니, 인간을 참 단순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군요. 라톤이 형의 '중용'이 절실해 보입니다만...
  6. 마오
    인문학의 위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입상마냥 이론들 수입해서 써먹기 바빴던 대부분 인문학자들의 (전혀 인문학적이지 않은) 실용적인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죠...

    뭐... 수입을 했으면 우리 상황에 맞게 가공이라도 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하지 않았으니...

    음... 일부분을 보고 너무 일반화했나??
  7.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인문학이 발전한다는 주장도 있음요.
  8. 힘들도 답답할때마다 공간에 와서 실컷 웃다가 갑니다^^ "학문이라는 영역에 매달리는 인문학도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대중이 더 인문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에 정말 공감합니다^^ 건강하세요*^^*
  9. 킴여사
    머...배운바에 의하면 '위기' 다음에는 '절정'인데,
    앞으로 인문학도 좀 더 드라마틱해 진다면 머가 되도 재미난 결말이 나겠죠. 비극만 아니면 좋겠는뎀.
    아, 좀 웃기기만 하고 끝나도 문젠가.;
    오타쿠의 위기는 '문맥상'생략하셨으니, 다른 문맥 다시 만들어서 올려주셈~ ㅋㅋ
  10. 그니까 이러지말고
    우리 '지나가며' 님이 사주신 고기에 술하면서 이야기 하자능 ㅋㅋ
  11. 정작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고민은 정작 오늘 저녁밥이 아니라,
    남보다 얼마나 우월하게 사느냐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 우월함의 판단기준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의 폭은 너무 한정적이라 재미도 없고, 재미가 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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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은 인문학만의 것일까?교양은 인문학만의 것일까?

Posted at 2010. 1. 20. 13:09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오랜만에 쓴 글이 민노씨보다 길고 aleph씨보다 불친절한 글이지만 알아서 읽어 주시길... 읽기 싫음 말고 뭐...

교양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골치 아프다. 현재 '교양 있음'은 '돈 되는 것 외의 무언가를 알거나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으로 많이 쓰인다. 예로 문학에 대해 좀 알면 교양 있는 사람으로 칭해진다. 또 바이올린을 잘 켜도 교양있는 사람으로 칭해진다. 여기에 한 가지 필수조건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제도적으로 정착해 뽀대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소녀게임 덕후를 가지고 '교양 있다'고 하지 않는다. 또 '야동의 황제'를 가지고서도 '교양 있다'고 하지 않는다. 

조교수까지 올라 간 야동왕, 그러나 돈이 안 되 본업이 아닌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물론 개념 가지고 장난 칠 생각은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어떤 개념이 기존 개념이 가지고 있는 범위를 넘어 널리 쓰인다면 그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즉 기존의 '사전적 교양'이 가지고 있는 뜻만이 '교양'의 올바른 쓰임이고, 요즘 쓰이는 '적당히 된장맛나는 교양'은 '교양'의 올바른 쓰임이 아니란 소리는 옳지 않다. 둘 다 교양이고 교양이 한 가지 뜻만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 글의 출발은 나름 좋아하는 논객인 한윤형씨의 '우리 시대에도 '교양'은 가능할까? 라는 글이다. 그러나 한윤형씨가 바라보는 교양은 조금 아쉽다. 대개의 인문학도가 그러하듯, 그가 바라보는 교양도 '인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가능한 ‘교양’에 대한 두 가지 정의(definition)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교양지식을 그냥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취미생활로 만드는 것이다. 가령 ‘회사원 철학자’로 유명한 강유원은 말한다. 2천 년 전 그리스에서 쓰인 책이 지금 현실에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멍청한 거라고. 여기서 강유원과 그의 지지자들은 ‘인문 오타쿠’들로 전락(?)한다. 물론 나는 서구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해 ‘쓸모’를 묻는 이들이 존재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질문은 인문학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의 ‘성질’을 긁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인문학의 쓸모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포기해서는 안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아 돌아서라도 쓸모가 있기 때문에 인류가 이 돈 안드는 한심한 취미생활을 수천년 간 지속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필요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그 필요성은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재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형이상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질문에 대해 요상한 대답을 내렸다가는 신기한 사람이 된다. 가령 빵상 아줌마와 허경영 본좌님을 보라. 그분들은 자신들만의 확고한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이런 길로 빠지지 않고 진짜로 ‘앎에 대한 앎’을 가지고 싶다면 필요한 게 많다.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비평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비평의 재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위 문단에서 드러나듯 한윤형씨는 '인문학'과 '교양'을 사실상 등치시킨다. 물론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과 '현실을 위한 인문학'으로 구별지으며 차별점을 두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말하는 교양은 여전히 '인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아래 문단에서도 '비평'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여전히 '앎에 대한 앎', 즉 '형이상학'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교양'을 인문학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양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에 입각, 개발하여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이다.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가 '덕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과 결과' 라면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에 입각, 개발'은 '올바른 판단과 그것을 위한 학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습은 언제나 중요하다... 특히 몸으로 하는 그것은...


덕 있는 인간이 되는 일이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니 넘어가자. 내가 언급하고픈 부분은 '올바른 판단과 학습' 쪽이다. 올바른 판단이란 즉 '사리분별'이다. 그렇다면 '분별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칠게나마 두 층을 나누어 생각해본다면 첫 번째는 '올바른 가치'이며 두 번째는 사실에 부합하는지의 '진위 판별'이다. 

전자인 '가치 판단'은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가치'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어떠한 가치가 더 우월함은 결국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동성애'나 '줄기세포'와 같은 인간과 관련된 것도 그렇고, 인간 외 존재를 다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예로 이명박을 반병신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팼다고 가정해보자. 혹자는 '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동물이므로 괜찮아'라 할 테고 혹자는 '그래도 동물학대는 안 됨'이라고 할 테다. 여기에는 온갖 윤리학적 논의가 일어날 수 있겠으나 결국 '내가 싫음'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적 상대주의로 볼 수는 없기에 인간과 세계에 대해 성찰하는 인문학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때리기 게임은 여기서 즐길 수 있다. 난이도 꽤 높음...


하지만 인문학은 '진위 판별'과는 거리가 있다. 니가 말한 것이 옳은지, 내 생각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인문학은 입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과학'이며, 과학 역시 이 시대의 교양으로 널리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과학 만능론을 주창함도, 과학 잡지식을 잔뜩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위를 가리기 위한 방법, 규준으로서의 과학'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어느 정도는 '과학적 마인드'가 갖춰져 있어야만 충분한 분별력을 가질 수 있다. 

이명박을 비판할 때를 생각해 보자. 다들 '4대강은 나쁘다'라고 이야기할 때 '왜'라는 물음에서 인문학은 답을 줄 수 없다. '4대강이 환경을 파괴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는 '4대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건 인문학이 아닌 과학이다. 물론 과학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수단에 비하면 '좀 더' 신뢰가 가는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과학이 오용되어 사실과 반대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한다면 좀 미안하지만, 그 잘못된 결과물을 깨는 것조차 과학이 수행할 것이지, 인문학이 수행할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전문가 수준으로 수치를 해석할 능력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뻘짓을 판별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각은 분명히 필요하다. 좋든 싫든 우리가 근거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이미 상당수가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 즉 모든 학문의 기반에 일정 정도 철학이 깔려 있듯 현재 각종 사회과학은 과학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비판을 위해서라도 과학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전제될 필요가 있다. 

앞서가는 쿨가이, 하지만 현실은 지못미


'이론 없는 실천이 맹목적이라면,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문학 없는 과학이 맹목적이라면, 과학 없는 인문학은 공허하다'라고도 바꿔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과학 없다고 인문학 막장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치 판단과 사실 판단,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춰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과학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이자 교양이 아닐까 한다. 이가 없이는 많은 상황에서 절대 '분별력' 있는 판단을 내리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1. 절대적인 분별력이 없으니 이래저래 다툼이..
  2. 뷁뷁 ㅎㅎ
    간만에 아주 좋은 글입니다.. 호호호... 하지만 인문학이 강조 되는 건 뭔가의 문제점을 인식하는데 조차 둔감한 현대인들의 습성때문이 아닐지.. 수령님의 말대로 과학이 없는 인문학은 공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현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제 하였을 때의 문제이고.. 예초에 기본적인 '생각하는 능력'조차 없으니 인문학이 '교양'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제 생각입니다..
    • 2010.01.21 13:33 신고 [Edit/Del]
      전 꼭 '인문학'을 통해 이를 얻어야 함에 좀 반대하는 입장이라서요. 여느 학문이나 기본적인 인문학은 그 안에 녹아들어 있고, 사례를 통해서도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 아거
    "오랜만에 쓴 글이 민노씨보다 길고 aleph씨보다 불친절한 글.."을 보고 위에서 아래로 바로 죽 내렸습니다. ㅎ ㅎ
    그런데 김규항님은 언급이 안됐는데 왜 태그에 있는걸까요?
  4. 저련
    괜찮음. 나보다 짧고 친절하면 된거임.
  5. "I might be wrong, so prove me wrong"으로 요약되는 과학적 사고법이라던가 하는 건 좀 교양으로 삼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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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현실 사이고전과 현실 사이

Posted at 2009. 4. 25. 23:55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두목께서 나의 포스팅에 열폭한 나머지 - 마흔 살이 어린 아이 사진이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자신의 최측근 행동대원 황씨에게 사주, 본인을 토요일인 오늘도 업무의 늪으로 빠뜨렸다. 돌아오는 길 부르주아 황씨와 고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떡밥찾아 삼만리 인생인 본인은 생각이 슬며시 민노씨네에서 일어났던 논란으로 옮겨갔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주인장은 맥루한은 좆도 모르는고로 생략하고, 그 논쟁(혹은 그 비슷한 거)을 보며 고전의 해석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게 생산적인가 하는 엉뚱한 물음을 떠올렸다. 책, 특히 고전의 해석에 대한 논쟁이 비생산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대개 책에 파묻혀 현실에 대해 검토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맥루한의 말은 A다, B다... 이러한 물음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으나 그보다 A로 해석할 때 현실이 어떻게 해석되고, B로 해석할 때 현실이 어떻게 해석되는가? 그 두 가지 시각 중 한 가지 시각이 완벽하지 않다면 두 가지 시각인 보완관계인가, 대립관계인가? 시각들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다듬어 더 좋은 현실에 대한 해석틀로 삼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면 그 질문이 과연 효과적일까?

역사에서 상당히 긴 시간이 그러했듯 고전을 신주단지 모시듯 대하는 경건한 자세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족하고 서투르더라도 그것을 끊임없이 현실에 투영해 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작업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 무시하기보다, 오히려 지평을 넓혀주는 또 다른 하나의 계기로 받아들여주는 포용성이 있을 때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화계의 맥루한이라 불리우는 스콧 맥클라우드가 맥루한에 미친 학자보다 그의 뜻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을지라도 그보다 맥루한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사이트를 심어 준 이가 있었을까? 

성리학이 최한기의 기학까지 받아들여 줄 수 있는 포용성을 갖추었다면 동양철학은 경험주의를 스스로 이루어 낼 기회를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성서 근본주의가 세상에 가져다 준 이로움은 무엇일까? 오히려 예수야말로 가장 근본주의를 경멸했던 이가 아니었을까?

모든 해석이 유연해져야 하고, 동등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세상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규준은 아닐지언정 존중해 주어야 할 규준 정도는 있다. 그것이 모든 대상을 완벽하게 평가내릴 수는 없을지언정 '더 나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를 맹신할 필요는 없을지언정 무시하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가 꽤 될 것이다. 물론 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가 꽤 애매하고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어이 없이 자기 주장만 떠드는 소리가 아닌 한에서야 조금은 귀를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 읽어 놓고도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책의 anything goes라는 말이 떠오르는 하루다. 아으, 우재엉아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 책이나 좀 해설해달라고 할 셈이었는데...

저 대인배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라!
  1. 그런다고 이런 것을!ㅎㅎ 좋은 주말 보내세요. 저는 월요일에도 시험이...
  2. 2빠.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책은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의 도전>이군요. "Against method"를 "도전"으로 번역한 게 좀 ㅎㄷㄷ하다는. 아무튼 한글 제목답게 수령님도 "도전"해 보세요! 수령님다운 멋진 독후감을 기대하겠다능. 화이팅!
  3. 짤방만 구경함
  4. 내용과 짤방이 관계가 있는.....
    여튼 저넘 어기저기서 많이 흔들고 다니길래 부러웠는데..
    나름 고생도 하고 사는 군요..
  5. 앗. 깜박 속을뻔했다.
    "마흔 살이 어린 아이 사진이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이게 고도의 빠짓이란걸 놓칠뻔했네요. -_-
    • 두목
      2009.04.26 09:31 [Edit/Del]
      수령님! 이 분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
    • 2009.04.27 13:46 신고 [Edit/Del]
      저거 수정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날렸군요-_-
      사실 저는 저 분에 대해서도 스토킹 중입니다, 잃을 것 없는 저만 좋군요...
  6. 저련
    그 파이어아벤트도 과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을 제시한다는.. ㄲㄲ 경험을 통한 검증 가능성이 없다면 과학이 아니라 자연 형이상학쯤 된다고 하는 뉘앙스의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맥루한은 아마도 미디어 연구에 있어 가장 중대한 비빌 언덕이기 때문에 고전 취급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후기 비트겐슈타인(이하 W)의 그림자 아래 있는듯한 직관을 밀어붙이고 있는 양반이라는.. ㄲㄲ 다만 그놈의 메세지가 통사론적 구조와 의미론적 외연/내포에 모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둔다면, 맥루한은 통사론적 차원에 대해서는 별무관심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W의 '삶의 양식'이란 말에 너무 꽂힌 것인지 오만 것들의 form을 서술하는데 열중하지만 공적인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인지 불분명한 아리까리한 개념들을 남발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W의 또 한가지 축인 공적인 것의 공유 가능성 또는 검증 가능성을 좀 많이 무시하는 듯 하고. 맥루한의 경향성에 더해, 영미 비주류에서 선호하는 철학이 철학계의 전부인 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까지 더해진 일부 미디어 연구는 분석철학쪽에서 강조하는 주제랑 별로 안친한 듯 한데, 그런 경향성은 좀 비판적으로 찔러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요새 듭니다.
    • 2009.04.27 13:51 신고 [Edit/Del]
      넹, 근데 그 부분 무시하고 온갖 사이비들이 파이어아벤트 인용하는 거 보면 쪼끔 기가 차다는 ㄲㄲ

      아래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곧 있을 만남에서 가르침을 청해야겠군요 _(_ _)_
  7. 맥루한이 누군지를 몰라서 지금 말씀하고 계신 '고전'이라는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문학적 의미의 '고전'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군요.(찾아보긴 귀찮고;;)

    어쨌든 제 이해범위 하에서, 고전의 해석에 대해 왜 서로 열을 올리며 경쟁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이해라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통해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다른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쪽이 더 생산적이지 않나 싶네요.
  8. 아, 짤방의 저 남성에게선 순교자적 희생이 느껴지는군요.-_-b
  9. 오오, 오랫만에 듣는 맥루한 아자씨의 이름 석자(...)하며 읽었으나 포스팅의 내용을 한 순간에 휘발시키는 짤방의 힘이란...

    이차시각피질이 쪼그라들어 제 기능을 잃는다면 건 다 이 포스팅 때문입니다.
    덴, 아윌 수우 유! ......
  10. 본문 내용은 난해했는데. 사진을 보니 정리가 되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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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편견우리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편견

Posted at 2006. 7. 12. 16:05 | Posted in 사교육산실 교육부
 얼마 전 연세대를 갔다가 각 학과 취업률을 보게 되었다. 원래 취업률이란 게 각 학교마다 높이려고 용을 쓰는 측면이 있지만 일류대의 경우는 이게 좀 덜한 편이다. 이런 학교에서 취업 못했다는 것은 어지간하면 안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살펴보니 뭐 다들 75에서 95를 오가며 매우 양호한 성적을 보였다. 사실 내가 다니는 이류대도 어지간하면 취업 문제는 없으니 일류대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눈에 튀는 둘이 있었다. 사학과가 60%대고 철학과가 30%대 -_- 였던 것이다.

보고서 좀 너무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학과건 철학과건 대개 이중전공을 통해 경영, 경제학을 공부한 이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학 점수에서의 차이도 없다. 인문계열 와서 일년간 술만 먹고 시험 안 본 이들이 철학, 사학으로 빠진 것일테니. 물론 세상 넓으니 이상한 사람(?)도 많아 앗싸리 철학, 사학 공부하러 온 이들도 있겠으나 이들은 어차피 대학원으로 갈테니 취업률에서 제외된다. 덤으로 고시로 빠지는 이들도 종종 있으나 이들 역시 취업률에서 제외된다.

그런 이들이 딱히 딸릴 점은 없다. 물론 이학년 때부터 경제, 경영을 공부했으니 일학년 때부터 한 이들보다 일년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학년 때 배우는 과목이 극히 기초적인 것이기에 속도를 붙여 따라잡지 못할 것은 아니다. (마인드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그런데도 취업률에서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를 문득 깨닫게 한다. 더군다나 한국 명문사학 연세대생인데 이 정도라니,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학과는 그럭저럭 봐줄만 하지만 (봐줄만한가-_-?) 철학과는 너무 처참할 정도다.

물론 철학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들의 언어로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봐도 한심하다고 생각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월드컵 응원하는 이들이 또라이가 아니듯 모든 철학공부하는 이들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지식의 토대로 활용해 장점으로 살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것 다 떠나 오히려 철학과 학생들은 철학에 큰 관심이 없이 여느 학생들처럼 경제, 경영을 공부하며 취업에 대비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학부 성적으로 잘려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일단 인문학이라고 하면 편견을 가진다. 사학과는 그냥 '그런데를 왜 가요?' 정도이지만 철학했다고 하면 아예 사회와 동떨어진 이가 되어버린다. 사실 인문학 공부하는 이들 중 서구 인문학자에 대해 엄청 환상을 가지는 이들이 있는데 외국이라고 이들이 돈이 철철 넘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냉소적인 시각은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을 받는 축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이 그저 사회에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회에 유용하게 활용한다. 예로 미국 대형병원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윤리학자가 한 명씩 배치되어 있다.

점점 경제력이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경제, 경영학이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개인적으로도 인문학보다는 이 쪽에 더 흥미가 있다. 또한 인문학만이 대단한 것인 양 근거없이 내세우는 인문학적 모럴리즘은 반드시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그저 사회와 동떨어진 이들로 보는 시각은 재고되어야 하지 않는가 싶다. 요즘 전문인력 국가유출을 가지고 일부 전공이 푸대접이라 말들이 많은데 인문학은 푸대접을 넘어 무대접인 듯하다 -_-ㅋ
  1. 저도 경제학을 공부하지만
    경제학과 경영학은 툴일 뿐입니다.
    툴을 이용해 진정한 컨텐츠(인문학)을 활용해야한다는게 제 지론입니다만;;;; 아직 대한민국은 먹고 사는것만해도;;
  2.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언제적 이야기인지... 이제는 이미 죽어버린 인문학의 부활을 이야기해야할 때인지도 모르겠어요.
    • 2006.07.13 12:55 [Edit/Del]
      비실비실하는 바에야 아싸리 확실히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_-;
      그러면 나름대로 필요성이 올라오겠죠
  3. 은하
    무대접 공감;;; 철학과 친구가 참 불만이 많더라구요. 사학과보다 더 가혹한 대우인듯(...)

    중요한 건 사고력이나 응용력인데, 사람들이 뭔가 직접적으로 보이는 '기술','팩트'만 중시해서 그런 거 같아요.
    • 2006.07.13 12:56 [Edit/Del]
      그래도 서울대는 좀 양호하지 않나요 -_-?
      라고 하고 싶지만 연세대를 보니 그게 아닐 듯...;

      문제는 인문학도가 대부분 원해서 되는 게 아니다보니 인문학도라고 해서 딱히 사고력이나 응용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난감;
  4. 덧말제이
    이공계 위기라고 하지만 인문학은 만년 위기이다 못해 몰락 지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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