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Posted at 2007. 7. 18. 22:43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을 보며 묘하게 한국이 영어에 대한 선호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제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니. 언젠가부터 우리 말에서 나열이 쓰일 때 미국식으로 마지막에 '그리고and'가 붙는 게 일상이 된 듯 하네요. 뭐 내용과 아무 관계 없으니 접어두고...

작가주의 냄새가 좀 나는 영화입니다. 아주 재미없지는 않지만 보면서 좀 지겹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80%는 굉장히 뻔하게 진행되다보니 지겨움을 피하기 힘들거든요. 별 볼일 없는 남정네 '츠네오'가 이상하게 여자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어서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이쁜 아가씨를 하나가 알아서 찾아듭니다. 하지만 이 순수한 청년의 마음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녀 '쿠미코'에게 가 있고 결국 이 놈의 순정파는 미녀를 갖다버리고 쿠미코에게 가 버립니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80% 우리 모두 이 멋진 청년에게 박수를...

쳐야겠지만 결국 남자는 쿠미코를 버리고 미녀에게 가 버립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감독 이누도 잇신의 메시지가 홍상수 영화마냥 남자라는 동물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자랑 하루밤 자려고 노력하는 홍상수의 주인공과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적어도 그 순간은 꽤 진실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누도 잇신 쪽이 홍상수의 남성관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것 같아 보여요. 술만 먹으면 (솔직히 안 먹어도) 떡 생각에 가득한 동물이 남자이지만 또 여자한테 버닝하면 정신 못 차리고 거기에만 매달리는 게 남자거든요. 제 주변 인간들 중에서도 현실여건이건 뭐건 다 잊고 여자한테 올인했던 놈들이 꽤 되는데 개인적으로 참 존경스러워요. (참고로 성공률은 안습에 성공한 놈도 기회비용 따지면 안습)

하지만 이누도 잇신의 인간관은 결코 남성 특유의 로망스나 자기애에 빠지지 않습니다. 전작인 '금발의 초원'에서도 그러했듯이 결국 그가 그리는 사랑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금발의 초원에서도 80대 치매 노인을 간병하던 20대 아가씨는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이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맺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 생활이 TV에 나오지만 그것은 그만큼 이러한 사랑이 맺어지지 힘듦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대개 남자가 장애인이고 능력도 좀 있는 경우고요. 신체적으로 아무 하자없는 남녀의 연애도 깨지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비대칭적인 관계가 계속 이어져 나간다면 그야말로 TV감이죠.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맘에 들었던 점은 단순한 현실을 비춰주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고자 했던 쿠미코는 츠네오를 통해 외부와 접촉하게 됩니다. 처음 츠네오를 경계한 그녀는 츠네오가 없을 때 그저 자포자기 상태로 살아갈만큼 모든 것을 츠네오에게 의지하고 애착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츠네오와 이별하며 이를 벗어납니다. 츠네오와 이별 후 에게 언제까지나 업히기를 원했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휠체어를 운전하고 남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쇼핑을 합니다. 그녀의 독백 그대로 츠네오가 없음은 자기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버려지는 것이겠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은 것이죠.

감독은 현실의 냉혹함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한 쪽을 약자로 삼았지만 사실 우리의 평범한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결국 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게 되고 또 다른 사람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운 이는 거의 없을테니까요. 어쨌든 냉혹한 현실과 나약한 이상을 너무 아름답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려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둘 사이의 타협은 항상 일방적이지만 이상에 빠져 지낸 시간은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인 듯 합니다. 현실에 파묻히고 이상에 빠지지 않았다면 쿠미코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갔을 테니까요.

'야동후후식 영화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NHK에 어서오세요  (4) 2007.09.03
디 워 - 세계 영화사에 혁명을 일으킬  (18) 2007.08.17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2) 2007.07.18
노맨스랜드  (6) 2007.03.26
아파트  (6) 2007.01.31
D-day  (10) 2007.01.16
  1. 남자는 언제나 안습;;
  2. 중반부터 편하게 못봤어요. 츠네오가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터뜨린 울음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 아닌 안도'를 느꼈었던 것 같아요. 아,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요 지금.;
    • 2007.07.19 23:21 [Edit/Del]
      아무래도 감독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언제나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 감독이 맘에 들지만 전 오히려 막판에 쓸데없는 감성으로 빠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비 오는 날은 역시 막걸리에 파전이...
  3. 맨 마지막, 쿠미코가 음식을 하다가 바닥으로 점프하면서 '쿵' 소리와 함께 영화가 끝나죠. 정말 오래오래 귓전에 맴도는 '쿵' 이었습니다.음악도 참 좋았죠.
  4. 제목만 많이 들었는데; 이것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였군요ㅠㅠ 메종 드 히미코를 꽤 괜찮게 봐서 은근 관심가는 감독입니다. 금발의 초원도 얼핏 봤지만 맘에 들더군요.

    여담이지만 저는 홍상수를 김기덕 다음으로 싫어한답니다OTL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영화는..후..-_-;;
    • 2007.07.25 23:29 [Edit/Del]
      저도 홍상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김기덕은 왕팬입니다 -_-a
      제 사고관은 여자들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5. 저는 참 재미있게 봤더랍니다^^아마..군대 휴가중에 봐서일까요;;
  6. 조제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니 정말 슬펐어요. 물론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지만 -_-a..
    아아.. 영화를 보고 있으니 일본의 성문화가 너무 문란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 2007.08.15 19:10 [Edit/Del]
      뭐, 현실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결국 현실적으로 되는 (이 말을 쓰기 싫은데 대체할 단어가 없네) 그런 것. 일본 성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자기 가치관에 비춰 보는 것일텐데 내 경우는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지만 거기까지 들어가면 완전 18금인고로 -_-a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도쿄 좀비도쿄 좀비

Posted at 2006. 11. 12. 14:51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이제 한국 코메디들의 공식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우선 만만한 소재를 고른다. 특히 조폭을 선호한다. 여기서 지루함이 생긴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스운 상황을 연출한 후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동으로 돌린다. 여기서는 부조화가 생긴다. 계속해서 웃음으로 나아가던 것을 억지로 감동으로 돌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일 리 없다. 아예 생각없이 웃기는 코메디 영화가 되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힘들고 웃음과 감동을 버무리는 것은 그 이상으로 힘들다. 하지만 일본의 코메디들은 이를 잘 해내고 있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그들의 코메디 영화는 소재는 물론 연출도 매우 자유롭다. 설정된 상황은 황당하지만 그 속에서 웃음과 감동을 잘 버무리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영화들이 많다.


도쿄 좀비역시 그러하다. 설정부터가 정말 황당하다. 도쿄 어딘가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고 그것이 어느새 산이 되어버린다. 때로는 여기에 사람을 묻는 이들도 있는데 어느 순간 그 시체들이 좀비가 되어 깨어나 사람들을 습격한다. 주인공과 친구 역시 실수로 사람을 죽여 매장한 두 친구는 이종격투기를 좋아해서 러시아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가는 길에 자신에게 이종격투기를 가르쳐 준 친구는 좀비에게 습격당하고 도쿄는 완전히 좀비에 정복당한다. 결국 주인공은 일부 부유한 인간들의 셸터에서 좀비와 싸우는 격투기 대회에 나가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황당한 설정에 비해 뒷 내용이 참 뻔하다)


도쿄 좀비의 감독은 이치 더 킬러금발의 초원의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한다. 아무래도 같은 작가의 시나리오라 해도 감독이 다르니까 느낌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불편할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는 이치 더 킬러와 비관적인 현실과 달리 밝은 분위기가 계속되는 금발의 초원과 달리 도쿄 좀비는 온갖 요소를 다 짬뽕한 듯하다. ‘이치 더 킬러처럼 폭력적인 장면도 일부 등장하고 금발의 초원처럼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도 밝고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신기한 것은 그 많은 요소들을 잘 섞어 놓았다는 점이다. 한국 코메디처럼 정신없이 한바탕 웃음으로 뒤집어질 장면도 없고 반대로 갑자기 신파를 펼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여자들이 보기에는 다소 불편할 폭력적인 장면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불쾌함만이 아닌 웃음까지도 자아낼 수 있고 또 웃으면서도 감동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일본영화의 힘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볼 때 감독의 힘 역시 장난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웃음의 힘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좀비>에는 코믹한 요소와 잔혹한 요소가 섞여 있어, 머리로는 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게 되는 장면이 꽤 있다. 웃음과 공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싶었나.


=
웃음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지함이 근본에 깔린 웃음이라는 게 중요하다. 살다 보면 잔혹하거나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지는 일을 겪게 되는데, 왜 나는 그런 순간에 웃게 되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잔혹함, 어긋남을 끄집어내고 싶다. 깔끔 떠는 것은 제치는 거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관객이 따라오건 안 따라오건 극단까지 가는 영화를 만드는데, 나는 그렇지는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건 해피엔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들에서처럼 환상이건 실재건 결국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야동후후식 영화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6) 2006.12.10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3) 2006.11.15
도쿄 좀비  (7) 2006.11.12
송환  (6) 2006.11.05
한반도  (8) 2006.11.05
스승의 은혜  (13) 2006.10.07
  1. 전 우리나라 코메디들 꼭 코메디로 나가다
    마지막에가서 감동물로 변하는게 맘에 안듭니다.

    그냥 꾸준한 코메디, 꾸준한 멜로는 없는건지..
  2. 사엘
    내 리플을 삭제하다니
    삐둘어져버릴테다
  3. 승환아 너의 후기를 읽고 도쿄 좀비를 봤지 물론 불법으로다가.. 근데 코미디의 감동구조를 똑같이 같고 있던데 단지 조폭이냐 사이코틱 설정이냐의 차이만 있는듯.. 게다가 주성치스러움(?)을 따라하는 듯한... 강한 느낌.. 한가지 의미가 있었던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예를 들면 어머니를 버리는 젊은 부부, 성추행한 학생을 묻으러 온 체육선생, 아파트 단지에서 칼을 들고 어른의 돈을 뺏는 중딩 커플 요런것들을 '블랙후지'라는 묘한 창조물(?)에 빚대서 표현한것. 어떤 의미에서 블랙후지는 일본인들의 양심 혹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가져다 버리는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구만.. 좀비들의 반란을 좀 오바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본다면 현 세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도 지금의 지배층을 뒤엎을 수 없다는 암울한 현실을 고층 건물과 빌딩들 위에 지은 셀터를 통해 보여주는 듯하고 그 후에도 손으로 만든 전기회사에서 노동 착취와 군대를 동원한 폭압. 노예가 TV에 나오지 않는 이상 셀터로 들어 갈수 없다는 이야기 (연예인 비판)등등.. 관객입장에서 감독이 툭툭 개연성 없이 넋두리 하듯 던지는 사회문제를 볼 수 있었다는게 좋았음... 너무 심각하고 무게 있는 음악이나, 심오한 철학적 장면, 미학적 구도를 통해 사회문제를 둘러치고 매치고 하며 표현하는 것보단 그런면에 있어서 가벼운 표현방식이 마음에 들더라... 암튼 좋은 영화 감사~~^^ 오바스러운 나의 리뷰 리플.. 이었음..쏘리
    • 2006.11.15 20:12 [Edit/Del]
      오오, 이런 훌륭한 글은 트랙백으로 쳐 주는 게 좋겠는 걸. 솔직히 이 코메디는 해피엔딩이긴 해도 그리 감동을 극화시키려는 노력이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생각이 좀 다르구만. 내가 가장 감동받았던 장면은 오히려 두 명이 주지스로 돌고 돌며 승부를 펼칠 때였음. 전체적으로 가벼운 표현방식이 맘에 들더라, 사회비판 이런 것은 난 무식한지라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보았음. ^^
    • 2006.11.20 02:48 [Edit/Del]
      오~~ 너에게 좋은 평가를 받다니.. 나름 기쁘군... 근데 트랙백이 뭐야?? 홀~~ 지성... 난 저런 말을 잘 모르겠어.. ㅡㅡ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