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없는 파워블로거들파워 없는 파워블로거들

Posted at 2008. 7. 28. 23:29 | Posted in 불법복제 통신부
어제 파워블로거가 되는 법이라는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이 별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 이른바 파워 블로거라 불리는 이들 중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이야 IT 계열이 꽤 힘 있는 것 같지만 RSS가 보급되면서 상대적으로 크게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사실 한국에 RSS를 쓰는 이들이 3%나 될까? 어디서 본 바로는 1% 겨우 넘는 것 같던데.

난 메타블로그도, 블로거 뉴스도 잘 가지 않는다. 여기 올라오는 글들이 내 손으로 수집한 RSS 리더기만큼의 효용을 보여주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란 '의외의 좋은 글'을 보는 것인데 이전 글에서 언급한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구태여 그곳을 갈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아주 건지지 못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투자 대비 효용으로 높다면 그건 더 큰 거짓말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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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효율성과 거리가 먼 제가 이런 이야기 해 봐야 설득력은 위 수준...

예전에 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힘은 곧 영향력이다. power가 좀 더 가시적이고 직접적이라면 force는 좀 더 잠재적이고 삼투압적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생각할 때 지금의 많은 파워블로거들은 정말 힘이 없다. 그저 트래픽 유입 좀 늘리려 짜낸 글들은 사람들을 그 곳으로 오게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변화도 낳을 수 없다. 약간의 여흥? 토토브라우저에서 일본 이름 아무거나 영문으로 검색해 봐라. 하루가 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만약 변화가 없다면 내게 연락해라, 추천 때려줄테니. 그래도 안 되면 비아그라와 상담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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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은 사쿠라기 린

나는 솔직히 돈벌이 블로거들이 잘 나가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 언급했듯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잘 짜여지고 재미있는 글이라 해도 무한도전과 1박2일에 되도않은 의견 좀 얹어 놓은 쪽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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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그래프는 누구의 hit수일까? 글이 그럭저럭 볼만하고 그냥 열심히 글 쓰는 블로거라면 이 정도의 hit수는 올리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그래프의 주인공은 inuit사마다. 사람 따라 취향은 다르겠지만 국내 블로거들 중 inuit사마만큼 양질의 포스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분이 극소수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inuit님은 운영 기간이 길어서 이 정도이지, 민노사마대놓고 추천까지 때린 김우재사마의 블로그는 아예 혼자서 장문의 글을 쓰고 혼자서 댓글을 다는 왕따놀이까지 하고 계신다. 이 외에도 내가 RSS를 구독하는 블로그 중 일일 평균 hit가 1000단위인 곳은 정말 드물다. (foog사마는 쪽팔리는지 아예 비공개로 하셨는데 자진납세를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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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이 많은 사람은 정신연령이 낮다는 풍문도......

하지만 이런 변방(inuit사마는 좀 아니겠지만...) 블로그들로부터 내가 얻은 지식과 넓어진 지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곧 나에 대한 영향력이며 또한 나를 통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다. 그 수가 많아 이 곳에 굳이 모두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난 이러한 블로거들이 정말 가치 있는 파워 블로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1회성 유희적 유인, 그것조차도 있으나 없으나 어디에나 대체 가능한 컨텐츠가 아닌 '영향력', 그것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굳이 고급 컨텐츠까지도 필요 없다. 최근 쉐아르님께서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언급하셨는데 좋은 글을 위한 이런 기본 요소 중에서도 기본은 자기 마음 가는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내용은 좀 부족해도 온전한 자아와 실존이 담긴다면 그것은 분명 가치와 무게를 가지는 컨텐츠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블로그계에서 뜨는 블로그들은 쥐어 짜내기, 속보성, 적당히 긁기가 난무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럴 태세고.

내가 불만인 점은 띄우려고 용 쓰는 블로거들이 뜨는 반면 좋은 컨텐츠를 꾸준히 생산해주는 블로거 분들의 글이 지독하게 묻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진짜 진보-보수가 없고 분야도 없다.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sonnet님이나 periskop 홈지기님이라고 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던가? 골수팬이야 좀 많지만. 분야로 따지면야 더욱 오타쿠틱해 질테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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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미쳐버린 블로그 주인장의 최근 모습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개개인의 주목에 있어 time share의 경쟁자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유명세도 빈익빈 부익부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래도 웹이라는 플랫폼은 기존 미디어들과 달리 사용자 주도적일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당연히 되도록 더 좋은 정보를 더 빠르게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지금 블로그계의 모습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짜증나서 일단 글을 막 써 갈겼는데 대안이 너무 없어서 미안하기까지 하다. 사실 IQ가 지렁이 급이라 무조건 문제를 덮어 씌우기 좋아하여 '이게 다 한국의 거대 포털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그저 음지에서나마 좋은 컨텐츠를 꾸준히 행사하여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블로거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랄 뿐. 그런데 놀랍게도 아거님을 비롯한 일당들이 블로그래픽이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준비 중인 듯한데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쪼록 관심을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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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인배우 아이노 키시에게도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린다. 애들은 칭찬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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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ㅋㅋㅋㅋ 쪽팔려서 비공개로 하고 있는데 자진납세를 하라굽쇼? 제 목을 조르소서.
  3. RSS로 구독하고 있습니다 ^^ 아침에 좋은 글 읽고...허접하지만 트랙백 하나 걸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4. 민트
    덕분에 AV 여배우들 잘 알아갑니다. -_-;
  5. 조금 된 일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티스토리는 태터툴즈나 텍스트큐브와 다른 방식으로 방문자수를 카운트하는 것 같습니다. 검색엔진의 봇이라든지 하루에 중복해서 들어오는 경우를 제하는 방식인지 어떤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계수 방식에 있어서 더 엄격해지는 바람에 이전에 수천히트를 찍으시던 분들도 불과 천 히트 안밖으로 그래프가 떨어지는 현상을 겪으셨죠...

    inuit님의 블로그에 가본 적이 없어서 이분의 글이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방문객 숫자에 있어서만큼은 하루 평균 500명이 방문하는 티스토리 블로그보다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대부분 기존에 비해서 1/4정도로 격감했다고 들었습니다.)
  6. 크게 공감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아이노 키시보다는 히나 쿠루미가 더 좋습니다.
  7. 트래픽을 끌어올려면 메타블로그 사이트 같은데서 활동도 해야되고 나름 상당히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좋은 콘텐트의 판단 여부는 개인의 몫이고 콘텐트만 가지고 승부하기엔 블로그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트래픽을 끌어올려면 일반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하죠... 좋은 내용이 가득한 철학서적이 잘 팔릴까요? 아니면 추리소설이 더 잘 팔릴까요? 가끔 많은 블로거들이 수많은 대중들을 모두 철학자요 지식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더군요...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닌 각자 생업에 바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블로그를 만들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파워블로거나 트래픽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2008.07.29 13:09 신고 [Edit/Del]
      올바른 지적입니다. 어차피 언론은 소비자를 신경 쓰는 장사꾼이기에 되도록 잘 팔리는 콘텐츠를 전면에 밀 수 밖에 없음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의 방점은 웹의 긍정적 가능성을 지나치게 닫아두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1류 인문학 서적'이 '3류 자기 개발 서적'보다 밀리는 게 아니라 같은 장르를 찾는 이에게도 1류와 3류를 구분해 전달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죠.

      사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검색 엔진들은 기본 검색에서 블로그를 딱히 따로 카테고리에 두지 않고 포탈 내 돌리기도 없으니 어느 정도 괜찮은 컨텐츠를 좀 더 알리게 되는데 한국은 이러한 점에서 딱한 면이 있죠.

      이러한 시스템이 전체적인 삶의 효용을 내린다는 점에서 여기에 편승하는 이들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 2008.07.29 14:36 [Edit/Del]
      사실 국내 포털의 검색방식은 포털 수익구조를 위한 방식이지 전체 국민의 검색 수준을 올리고 삶의 효용을 증가시키는데는 관심이 없죠.. 이것이 좋은 콘텐트 발굴을 통해 대중의 삶의 질을 향상키는데 큰 걸림돌 중 하나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8. 저같은 변방의 블로거는 가히 승환님의 환상적인 글솜씨에 수그러들고 있슴다..
    대단한 글솜씨.. ^^;
  9. 다소 심각하고, 기술적인 댓글을 남기자면....


    첫 링크 주소가 잘못 설정되었습니닷. ㅎㅎ
    http://realfactory.net/666

    승환님 글을 읽으니 저도 후기겸 글을 하나 쓰고 싶어집니다...
  10. 많이들 느꼈던 거고 종종 지적도 했던 건데 역시 승환님이 쓰니깐 훨씬 발랄하고 확 와닿네요. 취직 문제는.. 잘 될 겁니다!!!! 화이팅!!!!
  11. 메타블로그 운영자로써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12. 이렇게 좋은 블로그들 소개시키고 그럼 되겠지요-
    근데 내공 있는 분들은..방문자들에 그닥 신경 안 쓰실듯하기도 하네요 ;)
    쨌든 저도 blographic 알아가요-
    • 2008.07.29 21:41 신고 [Edit/Del]
      네, 확실히 추천과 소개가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대부분의 검색 엔진과는 무관하다는...;;;

      그리고 astraea님의 블로그, 덧글 남기기가 힘드네요. 글 좀 남기려면 자꾸 openid 들먹거리는데ㅡ.ㅡ...
    • 2008.07.29 23:29 [Edit/Del]
      나도 그래요.
      몇번 글남겼다가 날려먹었어요.
      오픈아이디 넣어도 그렇더군요.
      (이 말 전할 기회도 없으니 원.. ^^)
    • 2008.07.30 00:00 [Edit/Del]
      그냥 submit 한번 더 누르시면 되는듯 싶은데;;
      암튼..전혀 모르고 있던 문제였기에
      확인했구요..
      일단 임시로 수정했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13. 전 블러그를 하면서 이런 고뇌를 해본적이 없는것 같은데요 ㅎㅎ
    말씀하신 긍정적인 영향력에는 공감하고 갑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 두개도 얻어가고요. ^^
  14. 저는 그렇다치고, 멋진 블로거들까지 팔아서 대박을 냈군요. 흑흑.. ^^
  15. 나가기 전에 한번 더 봐요. 이번엔 왕창 모을거에요. 그리고 외로우면 연락하세요. 우헤헤헤. 아이노 키시 완전 접수. 제가 다운수좀 올려줘야겠어요. ㅋㅋ
  16. 한국 영화 광고에 항상 나오는 "작품성"과 "상업성"의 문제인가요? 두사부일체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면 역시 상업성 윈? 이란 말씀이온지??
    • 2008.07.30 12:44 신고 [Edit/Del]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단 올드 미디어야 원래 많이 쏴 주면 그만큼 돌아오는 구조이지만 뉴 미디어는 피드백이 있는데도 비슷하게 나아가면 곤란하겠죠.
  17. 저도 딱 보자마자 위 답글처럼 '작품성'과 '상업성' 구도가 생각나는군요. 이 논의는 뭐 옛날부터 많이 토론된 것이니 답이 없죠...
  18. 아거
    블로그래픽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19. 진지한 주제와 뼈있는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실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부럽습니다.
    덕분에 관련하여 생각도 해보며, 소개하신 블로거분들의 글들도 접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8월 맞으시고, 신나는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 2008.08.01 11:08 신고 [Edit/Del]
      아, 이거 자꾸 민망스런 댓글이 달려 두 배로 민망합니다. ㅜ_ㅜ
      트랙백 거신 글이 너무 어려워 댓글은 잠시 보류해 두겠습니다 -_-...
  20. 덕분에 여기저기 블로그 재밌게 구경중입니다. ^__^
    도시상경한 시골블로거 기분이 나네요.
  21. 페리스코프 홈지기님은 '보수논객' 이라 말하기엔 조금 ...

    그저 본좌님일 뿐입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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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월드컵을 넘어설 수 있을까?촛불시위가 월드컵을 넘어설 수 있을까?

Posted at 2008. 6. 6. 00:10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지난 주 선배 커뮤니티에 쓴 글이다.

저는 지금 촛불시위가 흥미롭게 보이기는 해도 이후 긍정적 영향을 낳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광우병 사태'는 어디까지나 안전문제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문제이니까 지금 이렇듯 폭발적 반응이 가능하지만 실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이익을 해치는'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대개 소수를 조지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갑작스레 연대가 일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봅니다.

촛불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낙관적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지금 내 눈 앞에 떠오르는 풍경은 2002 월드컵의 그것이다. 물론 그 지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바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그것이다. 2002 내셔널리즘의 반영으로 비판받았던 수준의 거리 응원을 벗어나 정치적 이슈를 두고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2002년 거리 응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꿈'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 '거리 응원'이 '촛불 시위'로 바뀐 것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솔직한 이야기로 난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난 '거리 응원'에도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촛불 시위'에 낙관적이지도 않다,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솔직히 별 재미 없는) 비유를 하나 해 보자. 원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이번 촛불 시위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데 월드컵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원래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월드컵에 무진장 기대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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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2 월드컵 이전 한국 프로축구는 좀 안습이었다.

이해가는 일이다. 사실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프로축구도 전두환 선생님의 공로 하에 사람들 관심 돌리려 시작한 것이지만 프로야구가 튼튼한 지역 기반과 고교 야구의 인기를 물려 받으며 이쁘장하게 정착한 데 반해 프로축구는 완전 찬밥이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 축구 레벨은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고 기본적으로 관심도 별로 없었다. 가장 중요한 지역부터 야구처럼 광역도 아니고 어정쩡한지라 몇몇 팀은 써커스 순회 공연을 했어야 할 정도이니.

월드컵 거리 응원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센세이션이었고 열광적인 환호 속에 선수들은 K-리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축구 팬들이 기대하던 일이 일어났다. 경기장이 관중들로 꽉꽉 메워진 것. 이건 리그 막판은 물론 플레이오프에서도 없었던 일이 아닌가? 여기에 기존 팬들은 감격했지만 그것은 '반짝'이었다. 물론 2007년, 2008년 계속해서 2002년 이상의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프로축구 표의 상당수가 '무료'임을 감안할 때 '월드컵 거리 응원' 열기가 '축구 열기'로 이어진데는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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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외국 애들은 배 부르고 있다만 이도 '축구'보다는 '민족주의'가 앞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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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민에게도 돌아오는 것은 있었다. 플스방이 소비 폐인 창출을...

이는 '월드컵 거리 응원'이 '축구'보다는 '민족주의'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월드컵 거리 응원은 차라리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조졌던 '야구 월드컵(WBC)'에 더 가까웠다. 물론 월드컵만큼 세계적 축제가 아닌지라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현재 '촛불 시위'도 '월드컵 거리 응원'과 유사하다고 본다. 분명 시발점은 '광우병' 이었고 확산 계기는 '폭력 진압'이다. 그리고 처음 부분에서 밝혔듯 이는 어디까지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슈'이다. '안전 문제'인 광우병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에 동감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잠재적 폭력'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타 정치 이슈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그러한 면이 있기느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그간 상당부분 '배제의 정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자들은 언제나 약자였다. 정규직이기보다 비정규직이었으며 남성이기보다 여성이었으며 수도권이기보다 지방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집단 이기주의'라 부르는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가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 이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앞서 밝혔듯 이번 촛불 시위는 '월드컵'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했는데 '민족주의'도 '전체주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가진 강한 배타성은 이미 이 글에서 이야기한 걸로 충분하다고 보고.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촛불 시위 역시 배제의 정치를 벗어나게 하지 못함은 물론 그 자신조차도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2071님이 며칠 전 이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어 옮겨 본다. 글은 좋은데 읽기 무지하게 불편하니 그냥 밑에만 읽기를 권한다.

지금 집회는 너무 많은 것을 배척한다. 운동권을 싫어하고 농민 노동자를 싫어하며 지식인을 기피한다. 진중권 같은 류의 사람들은 인기를 끄는 경우이고, 지금 집회에서도 사실 운동권이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며, 결국 회사원들은 노동자 뭐 이런 구도로 보면 모두가 연대하고 있는 셈이지만, 어떤 정형화된 모습의 운동권, 농민, 노동자, 지식인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가 나오기 어렵지 않은가 싶다.

근자의 노동자가 참여한 집회나 지식인이 끼는 연대가 성공한 사례가 없기도 하고 운동권이 담보하는 무수한 안좋은 이미지가 있으며, 노동자 농민의 그 거칠고 무식한 이미지가 시민들에게 거리감을 주고 지식인들의 뭔가 알 수 없거나 따라잡기 어려운 논리들이 컴플렉스를 준다, 는 식의 일반론적인 분석은 지금 하기엔 큰 의미가 없을 듯 싶고, 그보다는 지금 이 집회가 다른 한정된 이슈에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 의문을 집중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생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쇠고기 문제에 심지어 전농이 적극적으로 끼질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 들리는 소식 중 긍정적인 소식이 상당히 많기는 하다. 그 중 반 조중동이야 그렇다치고 무려 경향 구독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소문은 특히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물론 나의 RSS는 조중동이 절반이다만 가장 아끼던 신문인지라 그런지 더 반갑게 들렸다. 허나 이 역시 명박 오빠가 그렇듯 '민의에 거역함'에서 비롯되었다 보아야 한다. 만약 조중동이 광우병 이슈에 있어 국민 편을 들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뻘짓하며 이후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많이 까먹었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낙관할 것은 아니다. 지금의 거리 시위에 대해 김민웅 교수는 무려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현장의 소통방식은 과연 어떤가? 다양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출하고 그 가운데 대중들의 판단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들이 합의로 채택된다. 그 답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정리될 것은 정리되고 새로운 요구와 새로운 대응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와 하고 여기 몰려가고 저기 쏠려가는 군중심리로 인한 움직임은 없다. 그건 각 개인의 주체성이 빈곤할 때나 가능한 사회적 상황이다. <2008세대>의 중심은 다채롭고 주체적이며, 서로 연대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민주적이다.

난 솔직히 말해 이런 시위가 가능한지나 모르겠다. 이건 사실이라기보다는 완전 희망 사항이다. 에릭 홉스봄이 '진정한 두 개의 혁명'이라 일컫는 68혁명조차 이렇지는 않았을 게다.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의견을 언급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물론 사람들은 제각각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볼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광우병'과 '폭력시위'에 열 받아서, 막말로 이명박이 싫어서 나온 거라고 본다. 이명박이 '축구'가 된 것이다. 시위가 의미 있는만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가 축제를 뛰어넘을 수 있냐면 거기에 회의적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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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명박과 축구는 깊은 역사가 있다

'월드컵 거리 응원'이 하나의 축제였듯 이번 시위를 하나의 축제로 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 하지만 축제라면 말 그대로 '놀러 나왔다'는 것이다. 이게 좋게 평가하면 정치와 삶의 접목이고 나도 언제나 정치에 대해 가볍게 다루는 놈인만큼 정치를 가볍게 보며 삶과 접목시킬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놀러 나와서' 정말로 '놀다가만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놀 수 있는 것은 시민은 '전체'고 '이명박'이라는 분명한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게 깨지는 순간 '축제'도 '정치'도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즉 남의 이슈에 대해서는 마치 K-리그에 대해서 그러했듯 무관심이 되지 않을까? 그나마 무관심이면 다행이고.

물론 이명박 정부가 여러 뻘짓으로 참여 문화를 돋우고는 있지만 난 얘네들도 그리 바보는 아니라고 본다. 조중동이 점점 자세를 바꾸고 있듯 이들도 기존 정치권이 그러했듯 싸바싸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2071님의 지적대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기조차 힘든 시점에 이른 지금 정부가 싸바싸바를 잘만 시도하고 시간을 끈다면 하나의 축제는 끝나고 다시금 '정치'가 아닌 그 어떤 '컨텐츠'를 기다리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명박은 '쇠고기'나 '폭력 시위' 외에도 '감세'라거나 '민영화' '환율' 등 까일만한 전국민적 이슈가 너무 많은데 이들만이라도 전면에 좀 등장했으면 한다. 이건 비록 '배제의 정치'를 떨칠 것은 아니지만 좌우를 가릴 이슈도 아니고 관심도라도 훨씬 높일 것 같은데 말이다.

ps. 이명박이 선거 지고도 되려 대응 강화에 나섰다고 한다. 왠지 이 글 괜히 쓴 기분이다...

  1. 무엇보다 연대가 싹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큰 착각이죠.
    뭐 나중에 비슷한 세대끼리 술먹을 때 나눌 수 있는 안주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하면 맞는 말이지만.
  2. 국민들의 실행력 자체는 대단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뭔가 불안한 구석이 있기도 해요.
    정말 다음 '컨텐츠'는 뭘까, 이런 생각도 들고.
    시민사회에 대해 공부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얘기가 많다고 하네요;;
    전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우선은 입다물고 있지만 ㅠ_ㅠ;;
    • 2008.06.07 20:52 신고 [Edit/Del]
      저는 그냥 왕따 블로그라 막 떠듭니다만...;

      어차피 학계는 대개 일 터지면 사후 정리하는 개념이니 덮어 두더라도 현장 취재하는 분들조차 뭔가 답을 내릴 수 없을만큼 복잡한 양상인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너무 많고 산발적인 것도 답을 찾기 힘들게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변수인 이명박 대통령부터가 완전 럭비공이니...;
  3. 낙타등장
    요즘 촛불집회 반대하면 바로 생매장 당하죠,
    말한마디 잘 못했다가 된통 당한 정선희처럼...(사실 촛불집회에 반대도 안 했지만)
    모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진정 민주주의 아닌가,
    촛불집회에 절대 반대할 수 없도록,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너무하잖아,,,
    • 2008.06.07 20:54 신고 [Edit/Del]
      정선희는 가히 안습인 듯. 나는 남들 다 하는 말 블로그에서 떠들 이유는 없으니 이런 글이나 쓰는 거고 촛불집회 나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인데 한국 가면 술집에서 병 날아올 것 같다 -_-
  4. 비밀댓글입니다
  5. Neon
    약자 배제의 정치가 아니라 강자 우대의 정치가 되고있습죠 ㅋ_ㅋ
    종부세...
  6. 임계점이었겠지요. 먹고 죽을지도 모를 음식이 어디 쇠고기뿐입니까. 다만 귀머거리 장님같은 정권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 된것이고, 어쩌면 지난 대선과 총선때 실수했던 시민 자신들의 잘못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토록 열심히, 그리고 또 꾸준히 게다가 전대미문 '비폭력'으로 일관한 시위가 없었기에 고무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시위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함에 다만, 부채감을 느낄뿐입니다. 초등학생이 부모따라 일주일 시위나오면서 '즐겁지는 않지만 많은걸 배웠다. 정치가를 잘못 뽑으면 국민이 분노한다'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아픈 동시에, 미안함이 느껴지더군요. 전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못하니, 수령님처럼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승환님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면 (단 한번 참여했던 시위의 ) 그 현장이 놀멘놀멘,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목적없이 마냥 놀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도 않기때문이기도 하겠지요. ^^
    • 2008.06.09 17:45 신고 [Edit/Del]
      사실 이 시위건 저 시위건 대개 시위는 비폭력입니다. 단지 진압이 심해지면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고 여기서 언론의 왜곡이 등장하며 이번 시위의 폭력성이 좀 다르게 전달되는 것이겠지요. 시민들이 워낙 많이 나가니까 진실이 쉽게 전달되고...

      개인적으로 정치적 이슈에 사람들이 몰렸다는 점은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약간의 딴지를 거는 것은 남들과 같은 글은 쓸 필요가 없다는 제 좌빨 정신 덕택이랄까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번 시위의 '미래'를 점점 생각하는 듯해 매우 고무적이기도 합니다 ^^

      시위현장도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귀국 때까지 할 것 같지는 않고요. 그 때까지 수습 못하면 정말 탄핵이 되지 않을지 -_-...
  7. 문화제에 다녀왔었습니다.
    제가 느낀것은 이거는 '시위'가 아닌 문화제라는거...
    그 많던 사람이 문화제 해산과 동시에,
    시위가 시작할때는 무척 줄더군요..
    (일몰후에는 집회가 금지되기 때문에 문화제는 종료 됩니다.)

    그렇다고 이 문화제만 참가한 사람들이 월드컵때처럼 때거리로 몰려 나온것인가는 의문이 있습니다.
    월드컵때는 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친구'와 놀기위해서 나왔고, 문화제는 '나'를 위해서 나온 사람이 많기 때문에 외형은 비슷하지만, 동기는 다릅니다. 그만큼 이번 이슈가 끝난후에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것이라고 봅니다.

    전 이번일을 통해서 얻은 것은 기존의 신문,뉴스를 통한 통보식 정책이 아닌, 아고라 등을 통한 쌍방향 소통이 길을 찾은것인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쌍방향이 국민에 머물러 있다는게 문제지만요. 이것을 시작으로 소통의 길이 조금더 열리지 않을까요?
    • 2008.06.09 17:49 신고 [Edit/Del]
      월드컵이건 이번 시위건 결국 재미있어서 나오고 그 재미를 느끼는 대상이 '나'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이번 일을 통해서 집회에 대한 인상이 바뀌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증대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이슈가 '나'에 관련된 문제이지만 안전 문제만큼은 민감하지 않은지라 앞으로 타 이슈에 대한 반응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변수가 있다면 '이명박 정부에의 불신과 미움'이 얼마나 작동해 주는가인데 그것은 나름 단점도 있는지라...

      제 생각에는 쌍방향 소통은 항상 있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그것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요. 단 이번 정부가 워낙 제정신이 아닌지라...;;;
  8. 찾는이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많았지만 (누가 아니었겠습니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쓰기가 꺼려져 미루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저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집회의 근저에 깔린 정서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의사표현이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아직 맹아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향후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가능성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을 얘기하는 학자들이 꽤 보이네요.
    조만간 읽어보려고 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조금 딴 얘기지만, 저 아래 실린 사진에서, 갑자기 익숙한 풍경을 보니 북경에서 '꼬질꼬질'하게 지내던 시절이 갑자기 친근하게 떠오르는군요.^^
    • 2008.06.26 14:56 신고 [Edit/Del]
      찾는이 님께서 글을 써 주신다면 저로는 매우 반갑겠군요. 저는 이명박 정부의 노선이 총선 과반과 크게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라 대의제에 대한 불만보다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불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워낙 복잡한 문제라 건드리기도 힘드네요. 단 말씀하신 것처럼 기술과의 결합은 매우 흥미로운 무언가의 맹아형태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제 생각은 네그리의 '다중' 개념과 대립하는데 이것도 어찌 될지 흥미롭고요. 제 시각이 다소 비관적이지만 낙관적 미래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

      중국도 가셨나 보네요. 여러 언어를 두루 잘 하시다니, 부럽습니다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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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 나블로그와 나

Posted at 2008. 3. 13. 19:52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사실 이 곳에 와서 되도록 한국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했는데 도저히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hanrss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수십개의 블로그로부터 수집된 글을 읽자 좀 속이 풀리는 것 같다. 예전 중국 생활 때 머리 속에 지식이 들어오지 않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일부러 한국 책을 좀 가져갔는데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와는 내 안을 채우는 부분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대개의 책에 들어 있는 지식은 웹에서 얻는 것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 같은 자료라 해도 좀 더 정제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에는 웹에 존재하는 신속성, 시사성, 상호교류 등이 들어 있지 않다. 모든 지식은 단순히 알기 위한 것에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다른 형태로 변용, 재창조되어 활용될 때 그 가치를 지닌다. 비록 그 정밀도는 떨어질지언정 끝없이 요동하고 뒤섞이는 공간인 웹의 중요성은 내 삶에서 어느새 책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얻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많다. 예전에는 그것이 '객관적'으로 가치가 뛰어나지는 않을지라도 (시간 투자 대비 효용에서 떨어질지라도) '주관적'으로 소중한 공간이라고만 여겼는데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장 큰 소득은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만큼 넓은 세계와 접하게 된 것이다. 교과서와 삶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심지어 엄밀한 통계 조사를 거친 결론마저도 그 구체적인 개별성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단지 표본이라는 이름 하에 뭉뚱그려질 뿐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러한 개별적인 존재들의 개성을 강하게 느끼며 그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주변에 있는 이들이 당신의 삶과 얼마나 먼 존재라 생각하는가? 앤소니 기든스는 그의 사회학 교과서에서 자신의 책을 보고 있는 이는 아마 백인 프로테스탄트 대학생일거라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는 놀라운 확률로 일치한다고 한다.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도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음을 느낀 곳이 모두 일치한다. 바로 군대. 주변에 아는 여자가 얼마 없어서 여자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만.

더군다나 어찌 된건지 내가 교류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은 이상하리만큼 수준이 높고 훌륭한 분들이 많다. 나름 괴리감 형성 가능성도 있는지라 열거야 않겠지만 어찌 현실 세계에서 일개 학생쓰레기이 이런 이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겠는가? 물론 내가 좀 제정신이 아닌지라 그냥 뜬금없이 누구 좀 만납시다, 하면서 연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이는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에 반하면 블로깅은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내비치는 도구이다. 만남은 단순한 teaching으로 끝날 수 있으나 블로깅은 자연스럽게 mentoring을 제공해준다. 최소한의 돈과 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기 수양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자기계발도구는 없을 테다. 물론 예전
용호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블로그만으로 누군가를 파악하고 그 사람의 전문지식과 삶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데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블로그가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데까지의 좋은 가교일 뿐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직접 전달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사실 블로그를 하면서 내 자신의 세계관도 상당히 영향을 받았다. 우선 웹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으며 부족하나마 여기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장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어떠한 특정 직업을 선호하기 앞서 그것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를 중시하는 쪽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더 많은 지식을 대중에게 보급하고 더 많은 지식을 활용해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음으로 더 좋은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것이다. 물론 굳이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자기실현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내 관심은 학계나 언론계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이건 두 가지 한계에 부딪히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하나는 어찌 되었든 조직에 묶여야만 한다는 것, 좋건 싫건 한국 언론은 언론인들조차 반수 이상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형편이며 학계 사람들은 스스로 정치계 다음으로 지저분하다고 자조한다. 또 하나의 한계는 어디까지나 1인의 힘으로 컨텐츠를 생산한다는 것.

그런데 블로그는 그 컨텐츠가 얼마나 형편없건 (나도 내 블로그가 얼마나 싸구려인지는 안다) 적어도 완전히 under my control 이다. 적어도 남이 뭐라고 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운영되는 나만의 미디어인 셈이다. 이를 통해 어떠한 제약이 있다면 아무리 큰 노력을 들여도 좋은 컨텐츠는 생산할 수 없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정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 일부 소수의 손에서 노는 언론, 지식에 비해 그 정밀도가 떨어진다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jean님이 운영하는
planet size brain이라는 블로그 이름을 보면 자연히 드는 생각이지만 웹은 더 이상 소수의 인간들만이 좋은 정보를 생산해내는 시대를 거부하고 있다. 굳이 집단의 이익에 얽매인 컨텐츠를 혼자 힘으로 생산하기보다는 타인이 올바른 가치에 준해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터'를 내놓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면 이 쪽이 좀 더 생산적인 방향이 아닐까 한다.

사실 사람들에게 쉽사리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내 희망 분야와 관심사는 점점 연구, 취재하며 특정 이슈에 대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더 좋은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끔 하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문과생이라 장래에 이러한 일을 하기란 어지간히 힘든 일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전에
상하이신님은 기획 등 분야는 오히려 창의성이 더 중요하다 했지만 설마 면전에 대놓고 저주를 퍼붓겠나 -_-) 물론 가치에 준한 방향은 흔들려서는 안 되겠지만 굳이 어떠한 한 직종, 직업만이 행복하고 올바른 삶을 도모하지 않는다 생각하는지라 얼마든지 다른 길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현재 내가 이 길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위해 준비도 해 나갈 생각이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면 무엇이라도 환영이다.
  1. 제가 미국에 있을 때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저도 인터넷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갔다가, 어느 날엔가에 RSS에 쌓여있던 100여개가 넘는 글을 다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한 적이 잇지요. ㅎㅎ

    승환님 정도의 열정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덧글은 처음 달아보나요? :)
  2. intherye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는데요, 저기 근데 planet size brain이란 이름을 들으면 보통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안드로이드 마빈일 거라고 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Marvin_the_Paranoid_Android
    • 2008.03.15 15:41 신고 [Edit/Del]
      안드로이드 마빈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 intherye
      2008.03.17 18:28 [Edit/Del]
      에, 그러니까 마빈은, 라디오드라마로 시작해서 소설, 영화 등으로 전지구적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캐릭터입니다.

      "플래닛 사이즈 브레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찌질이 주인공들의 허접 심부름이나 해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초우울한 캐릭터로 소개됩니다. 심지어 마빈과 대화를 몇 마디 나눈 우주선 컴퓨터가 자살해버릴 정도.
    • 2008.03.18 15:23 신고 [Edit/Del]
      아, 바로 그 소설에 등장하는 놈이었군요, 한 번 보기는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리 -_-ㅋ
  3. 그냥 하던대로 사는게 좋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이라 잖아요.
    지금의 승환님도 어떤 의미에서는 충분히 생산적입니다.
    • 2008.03.15 15:43 신고 [Edit/Del]
      확실히 너무 빠르게 뭔가를 바꿈은 되려 다른 문제를 생산할 수도 있겠군요. 너무 엉뚱하게 빠지지 않도록 흐름을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4. "이분 블로그 rss등록해두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저도 덧글 첨 달아보는 것 같아요. ^^;)
  5. 톰보이
    블로그를 통해 확실히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더군요. 그건 요즘 유행 혹은 화두인 '블로그로 돈 벌 수 있다'라는 측면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구요. '일개 학생'이신 승환님의 포스트로 많은 것을 얻고 느끼고 갑니다. :D
    • 2008.03.15 15:46 신고 [Edit/Del]
      돈 버는 것은 좋지만 그게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신비주의를...
  6. 원하시던 덧글은 아닐지 모르지만, 수령님(?)의 블로그는 유쾌한 것이 참 맘에 듭니다. 하하.
  7. 헉~ 여기 팀블로그였나봐요.-_-(죄송!)
  8. 승환님의 시각과 글이라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염두에 두시는 기획(맞나요?)일도 독특한 시각 없인 힘들다는 점에서 승환님과 잘 맞을 것같아요. 건투를 빕니다!
  9. in the rye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지만, 깊이 공감하게 되는 글이네요. : )
    멋진 기획자가 되시길 기대해봅니다.
    (이런 뻔한 덕담이라니... )

    추.
    예전에 '새글로'(댓글로 이렇게 남겼잖아요)는 새로운 글을 트랙백하겠다는 의미였는데.. ^ ^;
    제가 깜빡해서 트랙백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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