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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귀향길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 외에 없다. 비록 싸구려로 가득하지만 필수재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벽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니, 역시 세상은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께서는 24년생이니 이제 여든을 넘기셨다. 할머니도 부정확한 호적에 의존한다고 해도 여든이 눈앞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나머지 동생들을 키웠다고 한다. 자세한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서울로 대학을 간 자식들을 위해 아파트도 하나 마련해줬다고 하니 고생하며 그럭저럭 남부럽지 않은 돈도 모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줄줄이 비엔나로 실패하면서 가지고 있던 집도, 땅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되었다. 들은 바로는 비상금을 모아 둔 통장 압류까지도 들어왔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서울로 돌아갈 떄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불러 꼬깃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자식들 형편이 좋지 않아 나가 놀기도 힘든 형편에 어찌 매번 십만원씩 나오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또한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면서 매번 자식들이 이 모양인지라 손주 용돈 한 번 제대로 못 준다고 혀를 차며 열심히 생활하라고 했다. 다른 친척들처럼 좋은 데 취업하라거나 공부를 하라거나 하는 말은 일체 붙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휠체어에 자력으로 올라탈 수 없는 지경까지 건강이 악화된 지난 설까지 이 레파토리가 바뀌지 않을 줄은 몰랐다.
몇 달 전부터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도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해 드린 것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혹시 모를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놈의 칠칠맞음은 왜 그리도 버리기 힘든지, 카메라를 집에 놓고 오고는 말았다. 일부로 SD카드까지 구입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미 긴축재정에 이력이 난 어머니가 카메라를 사는 바보짓을 할 리는 없다. 단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몸을 못 움직임은 물론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지금까지 동생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잃어온 삶이었다. 더군다나 남들은 무슨 실버타운 타령할 때 할아버지의 최근 십년은 자식들의 실패를 바라보는 고역의 삶이었었고. 조금씩 무너지는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소중히 지켜 온 집과 땅의 명의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치매가 심하신 듯한데 이런 상황을 계속 바라보는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의사소통을 억지로라도 하려 할만큼 나는 맘 좋은 인간은 아니다. 그냥 손 한 번 잡아드리고 가만히 눈을 쳐다보았다. 눈에서 느끼는 거야 그저 내 스스로의 생각을 투영시키는 것에 불과할테니 늘어놓을 가치가 없는 값싼 감상에 불과할 터이다. 그러나 손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 힘을 주어 밀어도 살갗이 찢겨나갈 것만 같은 피부는 이미 신체의 활동이 막바지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명절 때만 집에 내려가는 불효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어쩌면 내년즈음 몇 차례를 더 내려가는 효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는 정장까지 걸치고서 말이다. 그저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할아버지께서는 24년생이니 이제 여든을 넘기셨다. 할머니도 부정확한 호적에 의존한다고 해도 여든이 눈앞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나머지 동생들을 키웠다고 한다. 자세한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서울로 대학을 간 자식들을 위해 아파트도 하나 마련해줬다고 하니 고생하며 그럭저럭 남부럽지 않은 돈도 모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줄줄이 비엔나로 실패하면서 가지고 있던 집도, 땅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되었다. 들은 바로는 비상금을 모아 둔 통장 압류까지도 들어왔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서울로 돌아갈 떄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불러 꼬깃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자식들 형편이 좋지 않아 나가 놀기도 힘든 형편에 어찌 매번 십만원씩 나오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또한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면서 매번 자식들이 이 모양인지라 손주 용돈 한 번 제대로 못 준다고 혀를 차며 열심히 생활하라고 했다. 다른 친척들처럼 좋은 데 취업하라거나 공부를 하라거나 하는 말은 일체 붙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휠체어에 자력으로 올라탈 수 없는 지경까지 건강이 악화된 지난 설까지 이 레파토리가 바뀌지 않을 줄은 몰랐다.
몇 달 전부터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도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해 드린 것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혹시 모를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놈의 칠칠맞음은 왜 그리도 버리기 힘든지, 카메라를 집에 놓고 오고는 말았다. 일부로 SD카드까지 구입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미 긴축재정에 이력이 난 어머니가 카메라를 사는 바보짓을 할 리는 없다. 단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몸을 못 움직임은 물론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지금까지 동생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잃어온 삶이었다. 더군다나 남들은 무슨 실버타운 타령할 때 할아버지의 최근 십년은 자식들의 실패를 바라보는 고역의 삶이었었고. 조금씩 무너지는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소중히 지켜 온 집과 땅의 명의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치매가 심하신 듯한데 이런 상황을 계속 바라보는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의사소통을 억지로라도 하려 할만큼 나는 맘 좋은 인간은 아니다. 그냥 손 한 번 잡아드리고 가만히 눈을 쳐다보았다. 눈에서 느끼는 거야 그저 내 스스로의 생각을 투영시키는 것에 불과할테니 늘어놓을 가치가 없는 값싼 감상에 불과할 터이다. 그러나 손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 힘을 주어 밀어도 살갗이 찢겨나갈 것만 같은 피부는 이미 신체의 활동이 막바지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명절 때만 집에 내려가는 불효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어쩌면 내년즈음 몇 차례를 더 내려가는 효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는 정장까지 걸치고서 말이다. 그저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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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놓을 가치가 없는 값싼 감상'이 많은 나로선 이런 글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듯해.
...실은 그 위에 사진들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말야.
그리고 니 블로그는 대체 용도가 뭐냐 -_- 아사시킬 셈인가...
가족사진을 찍으실 정도로 건강해지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