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내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Posted at 2010. 5. 28. 20:46 | Posted in 사교육산실 교육부
며칠 전 민노씨 덕택에 라디오21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간담회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이 자리를 통해 곽노현 후보에게 꽤 호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그의 훌륭한 교육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학부모의 표심을 노리는 공약만을 내걸고 정작 아이들을 위한 공약은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여러 아이들에게 무엇이 바뀌었으면 좋겠냐고 묻자 모두들 두발, 복장, 화장 등의 규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곽노현 후보의 대답은 놀라웠다.

"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규칙을 정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훌륭한 규칙을 정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장 안의 새를 풀어주면 처음에는 새장을 벗어났다가 금방 새장으로 돌아옵니다. 아직까지 새장이 익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국에는 하늘 높이 비상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어른들이 아직까지 아이들을 교화시켜야 할, 제어해야 할 대상이자 객체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해 가는 주체이다. 물론 부족함은 있겠지만 그 부족함은 어른들이 대신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충분하다. 마치 식물에 충분한 햇빛과 양분을 공급하면 잘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교육을 원하는가, 신뢰하는 교육을 원하는가? 눈을 감고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교육을 받은 아이가 어떻게 성장해 있을지 상상해 보자. 나는 이것만으로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부적격 교사 10%를 퇴출시킨다고 하던데 그 날 곽노현 후보가 남긴 한 마디가 여기에 대한 결과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불안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감고 회피하지 말고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자


  1. 공감해요. 강압적인 교육환경은 '민주주의적 시민의 자질'을 키우는데 별로 도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박탈시키기 때문이죠...._-_....
    연관된 글 하나 던지고 가요~
    http://blog.naver.com/sellars/100105816691
  2. 오오 완전 감동 ㅠㅠ

    짤방에서 더 감동 ㅠㅠ
  3. 좋은 얘깁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구분합시다.
    • 2010.05.29 08:35 [Edit/Del]
      백토에서 오세훈이 노회찬씨공약 평가하면서 이런 얘기 하더라구요. "좋은 공약입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공약입니다."
      트위터에서 거기에 대한 글 중에 이런게 있더군요.
      "오세훈의 그릇은 그것밖에 안된다."
  4. 우왕 굳입니다. 지지할 근거가 더욱 확실해졌군요. 전에 인터넷실명제글은 최근에야 봤다는;;
  5. 10%퇴출이라고 쓰고 전교조 해고라고 읽는다.... ㅡ.ㅡ;;
  6. 리키니쥬스
    역시.. 당신은 본문 보단 짤방의 미학!!
  7. 아감동이네
    권력 없고 투표권 없는 사람까지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아름다워요.

    학생 권리를 위하여!

    식당에서는 손님이 왕이지만 학교에서는 손님(학생)이 봉인게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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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역사는 블로그에서도 반복되는가?미디어의 역사는 블로그에서도 반복되는가?

Posted at 2008. 10. 27. 11:40 | Posted in 불법복제 통신부
신문, 잡지, 라디오, 티비,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까지.

근래 수백년간 펼쳐진 주요 미디어의 여정들입니다. 물론 세분하면 끝도 없겠지요. 그리고 이들 중 라디오가 크게 힘을 잃은 것을 제외하면 티비까지는 나름 공존의 시대를 걸어 온 것 같습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 이후 그것은 융합과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고요. 최근 잡지와 신문에 대해 좀 조사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용자
초기의 미디어는 사회 저항적, 고발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사실 신문이나 잡지가 처음 편찬될 시기는 '인쇄술' 그 자체가 이미 혁명이었습니다. 더 이상 지식과 정보를 소수층의 것으로 가두어 두지 않았으니까요. 이후 시대가 어느 정도 안정 국면에 접어들자 이들은 시대를 리드했습니다. 당시는 소수의 미디어만이 존재했던 시기이니 당연한 이야기죠. 일종의 사회화 기능을 담당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20세기 중반 들어 어느 정도 억눌린 욕구를 표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죠. 동시에 하나의 거시적 권력을 상대하기보다 미시적인 자기규율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히피 등 아나키적 흐름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여성운동 등 다수의 저항, 동성애자 등의 소수의 저항 등 다양한 방면으로 분출되었죠. 물론 동시에 소비나 욕망을 긍정하자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이들끼리 충돌지점은 있었으나 결국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낸 것이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게 20세기 후반 들어오면서 극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어느 순간 소비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버린 것이죠. 언제부터인지 잡지의 표지, 신문의 1면, 티비의 주요 프로그램은 '연예인'으로 가득 차 버립니다. 스타만큼 손쉽고 고수익을 보장하는 수다꺼리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죠. 그러나 돈과 진실은 양립하기 힘들고 소비문화와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어느 매체를 마주칠 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노력이나 교육이 없다면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죠. 신문은 자신들의 판매량을 고려해 기사의 논조를 변질시킵니다. 잡지는 소수를 타겟으로 하되 더욱 물질과 소비적인 측면에 이슈를 집중하게 됩니다. 공중파는 자본력을 이용해 A급 연예인을 대거 캐스팅합니다. 케이블 티비는 부족한 자금력을 충당하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나아갑니다. 포털은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떠들게끔 하기 위해 특정 이슈를 선택하죠.

저는 뉴스가 기자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 라는 의견에 찬성합니다. 단지 지금까지 그 틀을 깰 수단이 없었을 따름이죠. 이제 미디어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자가 되고 그들이 생산하는 모든 컨텐츠가 뉴스, 그리고 그 수단, 매개체가 모두 언론으로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점점 타 매체가 걸어 온 길을 걸어가는 것 같군요. 점점 블로그는 '1인 미디어'이되 '내 미디어'가 아닌 쪽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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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표지모델을 찾으려 했건만... '아기는 어디서 생기나요?'라...
딸갤의 양대 산맥 대야새횽충용무쌍횽께 묻자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기에 네이버에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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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이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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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룡이님께서 새로운 답을 주셨군요......
  1. "아기는 어떻게 생기나요"
    요즘 세상에도 저리 꿈과, 로망이 넘치는 소박한 의문이 살아남아 있내요.(감동?)
  2. 아기라....
    정답은 여기에^^

    http://kerveros.egloos.com/4664444
  3. 이론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에 쉽사리 설명드리기가 망설여지는군요.
  4. 요즘 다음 블로거뉴스 보면서 블로그도 점점 이메일처럼 스팸걸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던 마당에 눈에 확띄는 글 제목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점점 블로그도 돈벌이와 연계되면서 글 제목처럼 미디어의 역사가 반복 될 듯 하더군요.

    블로그 재밌게 둘러보고 갑니다. 재밌는 글이 아주 많더군요. :)
    • 2008.10.28 11:32 신고 [Edit/Del]
      제가 좀 낚시성 제목을 잘 씁니다......
      돈벌이보다는 노출욕이 더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지만 결론은 개놈의 포탈...

      제 글은 재미있지만 도움은 안 되니 주의해서 읽어 주십시오 :)
  5. 음, 제가 모종의 이유(그래봐야 숙제)로 준비하고 있는 연설문과 비슷한 맥락이라니.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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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은 스타라는 동전의 뒷면악플은 스타라는 동전의 뒷면

Posted at 2008. 10. 8. 14:49 | Posted in 예산낭비 문화부
jean님이 마련하신 맥루한 클럽에 다녀 와서 이야기한 바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여러 명의 말과 생각이 섞인 것이 제 구미에 맞게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물론 제 맘대로 윤색되었을테니 용서를 빌고 싶은... 일찍 올리고 싶었으나 너무 시류에 따라가는 것 같아 살짝 늦추었습니다.

최진실씨가 자살했습니다. 우울증에 악플에 루머가 겹쳐서 자살했다는 게 정설인 것 같네요. 때문에 사람들이 이번 일을 가지고 악플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네요. 유니가 죽었을 때도 잠시 비슷한 반응이 일어났지만 지명도와 호감도를 생각할 때 그 때와 정도 차이는 큰 것 같습니다.

최진실 법이라는 요상한 법을 제정하려고 한나라당은 난리인데 이 나라의 주류라는 집단의 철학을 볼 때 무난히 통과하리라 봅니다. 행인님의 말처럼 야당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집단이고요. 펄님의 글을 볼 때 이를 고발해야 할 기자 계층의 생각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거죠. (주도하는) 이명박은 선을 잡고 패도 잘 떴다고 좋아하고 있고, (어쨌든 앉아서 이득보는) 언론은 광을 팔고... (이겨봐야 3점인) 자리도 안 좋고 패도 안 좋은 민주당이 땡깡 부리는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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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치는 개새끼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해도 악플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황색 저널리즘이 더 문제라고 하는데 맞습니다. 분명 우리같은 무지랭이 찌질이들이 뭐래 해봐야 별 영향력도 없지만 기자들이 써대면 이야기가 좀 다르니까요. 사실 악플이라는 것도 많은 것이 황색 저널리즘에 의존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 '황색 저널리즘'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 뻔하게 '사람들이 원해서'는 뒤로 미루어 두어도 이미 스타와 황색 저널리즘이 공존 관계를 형성해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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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은 한국보다 더 독합니다. 한국은 그래도 언론과 각을 세우는 개또라이는 생기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또라이 많이 낳았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 대표적 예이겠죠. 대가리 빡빡 밀고 정신 병원도 좀 갔다가 애 내버려 두고 파티 고고씽 하고... 이런 것이 황색 언론에 집중 공격을 받으며 사태는 점점 악화되었죠. 다행히도 스피어스는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는 것 같지만 파파라치 때문에 사고사한 다이애나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황색 저널리즘이 악플보다 결코 영향력이 적지는 않음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사람이 이처럼 망가질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이 사회에 공개되고 그것이 자극성의 강화를 통해 실제,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는 황색 저널리즘이 없이 스타가 뜰 수 있을까요? 단순한 영화, 드라마 출연만으로 스타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은 이미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포털, 언론에서 보는 스타 관련 기사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모두 가십성으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그 쪽이 좀 더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 수 있는 세 가지 특성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미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젊은 연예인들은 점점 악플에 쿨해지고 있죠. 전혜빈, 서인영, 현영 등의 구 비호감 캐릭터들이 뜨는 것은 시대상의 변화를 알리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악플 앞에 당당하고 계속적으로 자기 모습을 표출하는 캐릭터들이 부상하게 된 것이죠.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이야 당시 황색 저널리즘이 덜 발달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마돈나, 데니스 로드맨 등 이를 활용해 명성을 올리고 굳히기까지 한 스타는 넘치니까요. 저는 이가 인터넷으로 확장된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물론 현재 언론에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연예인들은 있습니다. 나이 좀 드신 분이라면 Jaji Nah 선생, 젊으신 분이라면 양동근 정도가 되겠는데 이 쪽도 결국 과거에 쌓은 업적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언론을 피하는 모습이 자기 캐릭터에 잘 맞은 경우니 통한 것이지, 평소에 설쳐대다가 갑자기 언론이 싫다, 악플이 싫다 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 봐야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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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자체를 없앨 수 없다면, 정확히는 자기 의견 표출, 이제는 놀이가 된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과정에서 악플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괴담 역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서사성으로 인해 퍼지는 것을 막기는 힘들 것이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을 인정하고 대처하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연예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클리닉을 받게 한다거나 악플에 대처하는 교육을 받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분명 언론이라고 쓰고 옐로 페이퍼라고 읽는 그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교육을 받을텐데 악플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교육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많은 정책이 시대를 거슬러 오르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중 미디어, 언론에 대한 거스름은 강을 거스르는 연어를 넘어 거의 대기권을 뚫는 로켓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나라가 웃긴 게 책임을 요구할법한 교육과 환경은 전혀 부재한 채 책임만 요구, 그것도 꽤나 오버스럽게 한다는 겁니다. 포털은 그저 트래픽 유입만 노리며 악플을 소극적으로 조장하고 있고 아이들에게는 그저 악플 달지 말라는 묻지마 교육만 이어집니다. 일종의 정부-기업간 협력인가요?

이 날 참석한 양기민 님은 교육과 미디어 관련 연구를 하셨는데 아이들에게 단지 악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더 이상 악플을 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조성해야지, 그저 정략적 이득만 챙기려는 얕은 수작으로 접근해 봐야 악플은 여전할 겁니다. 그리고 아마 정신줄 놓은 현 정부 하에서는 특히나 활발할 것일테고요.

이 글을 잘 읽으셨다면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세요 -_-
  1. 댓글이라고 쓰고 수다라고 읽습니다. -_0;;

    우리 정신줄 놓은 관료분들께서는 언제 다시 썩지않은 동아줄을 잡아주실래나..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아무래도 그전에 4년이 먼저 갈거 같습니다. ㅋㅋ

    승환님, 즐거운 오후 보내고 계시죵??
    • 2008.10.09 15:09 신고 [Edit/Del]
      사실 수다가 적합한 표현이겠죠. 온라인상의 수다가 오프라인으로 자연히 투영된 형태가 댓글이니...

      관료분들께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명박에게는 더욱 기대하지 않습니다. 더 쓰면 우울해질 듯...;

      저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마침 지금도 오후로군요 ^^
  2. 프로젝트는 착착 진행되고 있는지요.
    이런 기발한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해주시는 승환님께서 같은 학교 동문이라니
    너무 반갑습니다. 학교 앞에서 한잔 좋습니다.
    만나면, "엇!" 이라면서 놀라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본 적이 있어서 말이죠ㅎㅎ
    • 2008.10.09 15:10 신고 [Edit/Del]
      언제 한 번 올 일 있으면 방명록에 글 남겨 주세요. 저는 어차피 백수지도를 걸을 가능성이 높기에 학교를 배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_-;
  3. 론스타
    지금 현재 백모양 전화번호, 얼굴, 블로그 다 공개되었군요..
    네티즌 형사님들의 대단함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아마도 조용히 진행되는 후폭풍이 엄청나겠군요.....
  4. 과도한 관심으로 얻은 명예와 몸값인 만큼, 관심의 부정적 벡터인 악플,
    루머는 당연히 감수, 최소한 각오는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요즘 연예인들 보면 너무 지나치게 뜻밖의 피해라는양 떠들어대서...

    고인의 죽음과는 별개로 모양새가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
    그 거품과도 같은 몸값에 위험수당이 포함이 안 된거라면 몸값 내려야죠.

    PS:프로젝트를 클릭하니 프로젝트 포스팅이 아닌 대문으로 뛰내요...무한리핏신공 =ㅂ=);;
  5. 민트
    프로젝트 연구 결과 언제 공개하시나요? 기대중.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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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이 말하는 '자유'와 '경쟁'공정택이 말하는 '자유'와 '경쟁'

Posted at 2008. 7. 31. 23:59 | Posted in 사교육산실 교육부
결국 공선생이 이겼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은지라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벌써 일년 넘어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김종배님이 잘 분석해 주셨지만 결국 이번에도 '초점'이 있었던 쪽이 승리했습니다. 마치 지난 경선에서 '집값'을 충실하게 밀어붙이고 대선에서 '경제'를 강조한 한나라당처럼 말이죠. 공선생이 한나라당 인사는 아니지만 플랜카드 색부터(...) 정책 및 사상을 지켜 볼 때 친한나라당임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주경복 후보는 민주당 색과 민노당 색을 섞어 쓰더군요... -_-...

저는 이번 선거를 지켜 보면서 노회찬 - 홍정욱의 그것을 내내 떠올렸는데 결과도 비슷하더군요. 단 노회찬 후보가 엄청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고 홍정욱 후보는 말도 안 되는 재력과 토론 거부 등 양아치짓까지 행했음을 생각하면 - 공정택도 몇 번 빠지는 양아치임은 마찬가지이지만 - 주경복 후보는 꽤 선전했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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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하고 계시지만 원할 것 같지는......

그래도 주경복 후보가 '방어'에 그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구체적 대안까지는 아니라도 말이죠.

죠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책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에서 보수 진영이 내 놓는 프레임을 공격해 봐야 그것에 얽매이고 개념의 해석을 선점당하고 그들에게 끌려갈 뿐이라 말합니다. 죠지 레이코프가 말하는 '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하고 민주당의 실책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제가 볼 때 한국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는 결국 '학교 선택제'였습니다. 이 외에 많은 이슈가 있으나 자립형 사립고는 전체 학생이 대상이 아니고 이외에는 대부분 학교 내 경쟁이라는 점에서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이냐 하면 중학교 졸업 순간 아이의 삶이 상당 부분 결정됩니다. 저는 비평준화 지방 고교를 다녔는데 제가 졸업한 학교의 절반 가량이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를 가는 반면 그 한 등급 아래 학교만 해도 이 정도면 용 취급 받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국 단위로 이루어진다니, 머리가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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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가 졸업한 학교는 전 안기부장 권영해 본좌께서 졸업한 경주고...

공정택 후보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이러한 결과를 '경쟁'과 '자유'라는 개념으로 포장합니다. 경쟁과 자유 모두 소중한 가치입니다. 경쟁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가 물질 문명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겠으며 자유가 없었다면 이러한 경쟁조차 있었겠습니까? 분명 한국의 교육은 너무 획일적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학교의 자율성을 높이고 학생들 역시 학교를 선택할 필요가 있겠지요.

'자유'와 '경쟁'이라는 가치는 분명 소중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자유와 경쟁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결과는 끔찍합니다. 그 어떠한 가치라도 인간을 위해야 하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증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육은 사회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결국 사회 구조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바뀐다 바뀌었다 말은 많지만 한국은 여전히 지독한 학벌 사회입니다. 때문에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고 지독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죠. 말이 좋아 '자유'와 '경쟁'을 이루기 위한 '학교 선택제'이지, 여기서 '성적 순' 이외에 어떤 요인이 개입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공부 못 하면 막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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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미안한 말이지만 어지간한 대학 가면 미팅은 하지만 이후는 미싱보다 나을지...

과연 이것은 몇 %만을 위한 '경쟁'입니까? 이러한 '자유'를 통해 다양성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현재 설립된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왜 대부분 외국어고인지, 그리고 그 곳이 왜 입시기관,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되었는지 - 변질의 기회조차 없이 -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은 강남 아주머니들이 대안학교를 만들어 학원 강사를 초빙하기까지 한다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저 방어적, 수세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주경복 후보 및 진보 진영이 아쉽습니다. 비록 이번에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경쟁'과 '자유' 그 자체를 깨 부수며 장기전에 대비했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에의 반대가 아닌 그들의 가치가 얼마나 허구적으로 적용되어 아이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삶을 강요하는지 알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경쟁'과 '자유'는 '상생'과 '평등'만큼이나 소중한 개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개념을 소수에게 봉사하는 개념으로 더럽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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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한다 -_-...
  1. 급훈이 섬뜩하군요. 대학 vs. 공장이라니... 겉으로는 부정하는 듯하면도 사회에 뿌리박힌 인식의 틀을 보여주는 듯해서 보기 참 거북합니다. 차라리 의미없는 "정직,근면,성실"이 나아 보입니다.
  2. 어찌보면 대통령보다 직접적일 교육정책장 뽑는 선거인데..
    투표율이 너무 안습이라..ㅠ_ㅠ;
    홍보 부족인건지.........에휴........
    역시 고르게 공후보가 30& 이상 나왔다는것도 좌절스럽고
    교육비쯤이야 생각하는 사람들이 30% 이상이란건지..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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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

Posted at 2007. 10. 23. 17:59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다른 가치와 문화, 사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언어와 외모를 빼고 나면, 나머지에선 같은 점이 거의 없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만이 우리를 묶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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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면서도 가슴아픈, 그러면서도 적실성 있는 비판에 수긍하게 되는 책입니다. 제목은 다소 선정적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기존의 통일 비판론이 그저 남한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을 넘어 북한에게도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없으며 그 이유를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찾음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은 경제학에서 연성예산제약을 통한 도덕적 해이, 혹은 미시적 인센티브 결여에 의한 노동의욕 상실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 책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통해 형성되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탐구함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출발점은 볼프강 엥글러 교수가 제시한 '노동자적 사회'와 한스 요하킴 마츠 교수의 '감정정체론'입니다.

'노동자적 사회'란 노동이 아닌 것마저도 노동의 지위를 부여해 모든 것을 노동자적으로 색칠해 버린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완전고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인데 이 때문에 마이스터, 관리자도 노동자인 등 노동자의 개념이 모호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되는 평등정책과 문화는 노동자의 정치참여와 의식을 활성화시키기는 커녕 개인주의를 부추기게 되죠. 어차피 어떤 노동을 하든, 심지어 노동을 하든 말든 노동과 자신의 영속적 관계는 불변하니까 그냥 자신이 노동자라고 주장만 하면 되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은 노동을 기피하면서 국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이 유래없는 사회적 자유를 준 노동자적 사회는 결과적으로 자유의 남용을 초래했고 자발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감정정체론'은 권위주의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기 힘들고 타인의 기대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존재의의를 부여한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욕구를 알기 힘들기에 자신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비교하고 인정과 애정을 요구하게 됩니다. 소위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기소외'의 경향인데요, 마츠 교수는 이러한 인성을 '권위주의적 천진난만함'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천진난만'이란 진실한 자아에 대해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바깥에 대해서도 잘 모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은 외부와의 '구별'과도 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런 사회주의적 인간이 자본주의에 편입될 경우 적응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는 동독의 예를 볼 때 매우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경쟁력 2위였던 서독은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동독을 흡수통일했음에도 그들의 시도는 매우 심각하게 실패했습니다. 통일 때보다 두배나 되는 동독지역 거주민이 자신을 독일인이 아닌 동독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동서갈등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사실 서독 정부가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음을 생각할 때, 그리고 동독 역시 상당한 경제수준을 가진 나라임을 생각할 때 이러한 실패는 단순히 제도, 정책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끔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형성된 개인의 자아가 자본주의 체제에 부적응하는 양상에 주목한 이들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들 이론을 적용할 경우 북한은 더합니다. 우선 노동의욕은 앞설 수 있을지 몰라도 질에서는 상당히 떨어집니다. 사실 이천만이 만성적 영양부족인만큼 의욕도 논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나진선봉 지구조차 조선족들을 상당 수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동력의 질, 의욕 문제를 넘어선다고 테일러식 대량생산체제가 완전히 작동할 거라 보기도 힘듭니다. 테일러식 대량생산체제를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명령을 획일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전히 기업 내 정치적 규제는 물론 이념적 규제라는 삼중적 규제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위에서부터의 경영을 내세우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리라 보기 힘들게 되고 고전적 국제분업 이론에 따른 남북경협 - 남쪽은 자본과 기술집약적 산업을, 북쪽은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 - 을 대량생산체제와 결부시키는 착상은 대단히 위험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줍니다.

'감정정체론'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앞서 '권위주의적 천진난만함'은 외부에 대한 정보 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북한만큼 이에 걸맞는 체제도 없습니다. 여전히 북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남조선 해방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황당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자본주의를 접했을 때 박탈감과 상실감은 동독과 비교할 게 아닐 것입니다. 이는 탈북자 문제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탈북자에게 아무리 지원을 해 줘도 권위주의적 환경에서 자란 탈북자들은 막연한 온정주의에 기대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살벌한 생존경쟁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만나 본 탈북자들도 대개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더군요. 유독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는데 이 분은 꽤나 고위관료 집안 출신으로 돈만 있으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남한이 아닌 북한이라고 하더군요. 한 마디로 이미 북한에서 자본주의 논리를 배웠던 셈이죠.

이 책에서 언급했듯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이미 북한과 남한은 심각하게 다릅니다. 남한은 단기간 내에 급속한 성장과 아픔을 겪으며 자본주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완전히 받아들여진 반면 북한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제 정세에 전혀 무지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은 물론 성급한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수준 차이는 3:1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동독은 기초과학과 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동독 문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당장 국민들의 생존이 위험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를 넘어 심각하게 나이브한 시각입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하는 반통일론이 아닌 북한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정책도 통일에 다가가는 길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북한은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도 개방을 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며 현대 국제사회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이룬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핵이라는 전략적 비대칭 무기는 단기적 정권 연장은 가능하나 장기적으로는 개방을 통한 경제회생만이 정권유지의 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개방을 천명하지 않는 개혁 의지의 부족, 경제특구조차 기반시설이 전무에 가까울만큼 시설과 자본력은 열악함, 그리고 그 속에서도 기존 동아시아 국가처럼 국가의 힘을 일부 산업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우려 하기는 커녕 외세의 잠식을 두려워하며 기존의 모습을 고수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노동집약, 토지집약 산업조차 이미 제3세계에 비해 크게 유리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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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북 통일은 꼭해야지 않겠습니까? 제가아는 지인하나가 말했었던 북한이 소자본으로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갈수 있다는 긍국의 프로젝트가 떠오르는군요. ^^ 거 왜국녀 두명만 스카웃해서 금강산만 가면 된다고 하던데... 쿨럭..
  2. 확실히 감정적으로만 처리하기에는 그동안 갈라지면서 발생한 가치관과 사고의 차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큰 벽으로 다가오는 것 같군요...
  3. 며칠전 통일전망대를 보고와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글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듯 합니다. 세월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자유로운 왕래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4. 시험 끝나면 한번 체크해 봐야 되겠군요. 맨 처음의 문장부터 정곡을 찌르다못해 아주 후벼파네요-ㅁ-
    사실 북한을 지배하는 건 사회주의조차도 아니고 주체사상이라고 보지만;;(북한은 그냥 김씨 일가 전제왕조국가 아닌가요?...OTL)
  5. 생강
    나도 이 책 읽으면서 누렁이가 좋아할 만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읽었군. 뻔한 것ㅋㅋㅋㅋ
  6. 막연하게 남북한이 통일하면 세금을 무지하게 내야할거 같아서 싫다고 생각했는데..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어주셨군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각자의 길을 걸을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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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위기의 진실환경 위기의 진실

Posted at 2007. 10. 15. 23:00 | Posted in 책은곧배게 학술부
이 책의 핵심 논쟁은 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이 논쟁은 부가 진정한 환경 보호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나의 주장과 부가 무분별한 소비주의를 조장하여 환경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양 축으로 한다. 두 입장 모두 명백히 미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지만, 증거에서는 부와 환경의 질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쪽이 우세하다. 또한 그 증거는 여기서 우리가 부유한 국가에서의 환경 개선이 가난한 국가의 환경 악화를 불러온다는 삭의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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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장 널리 이름을 떨친 환경관련 서적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일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DDT의 잔류물에 인간과 동물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잠재력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경고해 현재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면에 미국 국립과학위원회에서 나온 보고서는 묻혀져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DDT가 말라리아로 죽을 뻔한 5억의 인류를 구해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DDT는 암 유발의 원인은 아니라고 합니다. DDT가 중요한 문제이고 보고서의 수치에 과장은 있을지언정 이는 환경문제에 관련된 비관론의 위험성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른바 비관론적 환경관의 보고는 인간에게 때로는 수사를 통해, 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통해 공포를 일으키고 오히려 환경문제 개선에서 멀어지게끔 하는 것이죠.

홀랜더 교수가 '환경 위기의 진실'을 통해 논증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환경비관론이 과연 얼마나 적실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게됩니다. 인구 문제에 대한 비관론은 이미 UN보고서에서도 계속해서 성장률을 낮춰 잡으며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 생명공학을 사용한 식량의 위험성에 대한 비관론은 대부분 근거가 없으며 이가 기아를 없애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 알려진 것과 달리 지구상의 물은 기본적으로 충분하며 일부 지역의 문제라는 것, 수산 자원의 남획은 공공재의 문제이지만 이전에 비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이외에도 화석연료,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등의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구 온난화에 할애한 부분은 우리의 상식을 깨뜨립니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와 냉각화의 반복은 수백만 년 동안 발생했던 자연스러운 지구기후 변화 역사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현재의 온난화에 인류가 기여했음은 명백한 증거가 없지만 언론 보도가 과장되어 증거의 빈약함이 알려지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환경보호를 외치는 시에라 클럽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오염물질이라 말하나 실제로 이산화탄소는 오염물질이 아니며 단지 지구에서 방출되는 열을 막는 온실 가스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가 얼마나 온도 상승에 기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1940년대부터 화석연료 사용이 빠르게 증가했음에도 1970년대까지 지구의 냉각화 기간이 길어졌을 뿐 아니라 지표 온도와 달리 대류권은 현재까지도 온도 상승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 역사상 현재보다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된 적은 얼마든지 있었으며 온난화와 냉각화의 흐름에서도 현재의 온난화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깨뜨리는 저자가 환경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근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이는 바로 '가난'입니다. 실제로 현재 선진국들은 환경 문제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에서의 요구로 말이죠. 인간은 생존이 보장되면 자연히 더 나은 삶의 질을 원하게 되고 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단 자연 환경 뿐 아니라 인구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게 되고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임으로 자원 남획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후진국들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현재 열대림이 사라지는 주 원인은 가난한 농민들이 화전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그 주원인으로 무려 60%에 이릅니다. 수산자원면에서도 마찬가지로 고기들의 서식지를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하며 단기적인 생존을 도모합니다. 공장에서 값싼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후진국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저자는 강한 레토릭을 내세우는 감상적 주장에 얽매이지 말고 가난을 없앰으로 더 나은 환경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가난은 아마르티아 센이 주장했듯 단순한 물질적 빈곤이 아닌 기본 자유의 박탈 개념으로 물질적 빈곤 외에 건강 관리의 결핍, 공중 위생의 부족, 교육으로부터의 소외, 시장 활동으로부터의 배제,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기본권이 박탈되는 전제 정권, 여성 문제 등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환경이 풍요로워짐으로 환경에 대한 의식과 요구가 자연히 높아지고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부와 기술의 혁신은 미래 지구에 지속가능한 환경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환경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를 통해 가난을 줄임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다소 감정적인 면에서 거부감을 느낄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근거가 탄탄하기에 그 설득력이 강합니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환경 오염은 저개발국에서 나오고 있음 역시 사실이고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가난이 사라지고 일정 수준의 생활 환경을 얻게 된 국가들의 국민들은 자연히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음 역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과연 어떻게 이들 국가의 가난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의 부재입니다. 저자는 UNDP의 보고서를 인용해 정보화, 세계화, 생명기술이 가난을 업생는 데 일조한다고 주장하나 실제 이들 요인은 이러한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시하지만 이를 퍼뜨릴 방법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오히려 네오콘이 내세우는 민주평화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될 우려마저 보입니다.

더군다나 사실 선진국은 전 지구의 극히 일부입니다. 동부를 제외한 유럽, 캐나다와 미국, 일본과 한국, 호주 등 이들 나라의 인구는 10억 이하에 불과합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상태이며 이들이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개발에만 매진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의 성장에도 환경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그들 스스로 환경문제까지 해결할 형편이 안 되기에 국제기구와 선진국의 도움이 요구될 수밖에 없죠. 적극적인 보조금이나 기간산업 설치는 아니라고 해도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 방어막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도적 도움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진정한 세계화'라는 이름의  공정경쟁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세계화가 진행된 8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70년대보다 낮았으며 이조차도 불공정경쟁의 길을 걸은 중국과 인도 덕택에 커버한 정도를 볼 때 이는 모순되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원을 한다고 해도 그것에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이 동반된다면 가뜩이나 가난에 허덕이는 이들 나라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또한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저자는 환경을 '인간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 합니다. 사실 기독교적 관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화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았고 이러한 관점이 현대에 필요하다는 게 제 입장이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 약점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환경문제는 너무 레토릭에 치중해 왔고 발표되는 수치도 신빙성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경제성장과 환경보호가 단순히 trade-off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로 환경문제는 무조건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위험한 시각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가난을 없애는 것이 환경보호의 초석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곱씹을 가치가 있습니다. 적어도 이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환경 문제는 끊임없이 따라다닐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환경문제에 관심유무를 떠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Bloggers Unite - Blog Action Day

이 글은 Astraea님의 포스팅, Blog action day를 보고 작성했습니다. inuit님께서 얼마 전 앨 고어가 노벨상 수상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나 라는 포스팅을 통해 현재 블로그계에서 보이는 주류 미디어에 대한 종속성을 언급한 포스팅을 보아서인지 이번 blog action day가 더욱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자꾸 파워블로거, 1인 매체 등을 언급하며 주류언론과 그 속성을 비슷하게 하려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보다 이런 낮은 위치에서의 많은 포스팅들이 더 나은 세상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기회를 준 astraea님과 inuit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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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난..이 어쩌면 근본 원인일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생존의 위험이 코앞인데 깨끗함..을 바라긴 힘들겠지요
    특히 규제나 환경보호위한 비용 측면에서도요,,

    하지만 이 역시 결국은 하나의 측면이라고 봅니다
    단지 가난이 해결된다고해서 크게 달라질건 없지요
    성장한만큼 유해 물질 배출도 솔직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각각의 규제가 까다롭다고는 해도.. 배출 갯수 자체가 늘어나버리니-_-;

    암튼.. 어느 한쪽면만으로 몰아가는건 저도 반대합니다
    그리고 어떤 식이든 환경보호를 외치는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건 자명한 사실이니
    계속 여러 측면의 토의를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있다고 봅니다
    논쟁하다보면 좋은 해결책이 나오겠지요
    그렇게 나름대로 발전한 인류니까요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정작 저는 허접한 글을 남겼는데..반성을..1o1
    • 2007.10.16 13:27 [Edit/Del]
      네, 가난이 환경 오염의 주원인이라는 것은 결국 선진국의 발뺌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러한 환경오염 요인을 모두 덮어둘수도 없고요. 전지구적인 협조 없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죠. 어쨌든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 ^^
  2. 다른건 잘 모르겠는데 온난화 만큼은 저자의 견해에 반대하고 싶습니다. 최근 100년, 최근 1000년, 최근 1만년의 기후변화 데이터와 이산화탄소 농도변화 추이를 보면 거의 확실히 인간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온도와 이산화탄소의 데이터는 남극의 얼음층 시추분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연구이지요.
    • 2007.10.16 13:28 [Edit/Del]
      그렇군요. 저도 제가 평소에 알고 있던 상식과 너무 달라서 좀 의아했는데 사실 관찰이란 게 가치가 개입하거나 추상한 요소를 변화함에 따라 쉽게 결과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원래 다른 책을 찾아보고 비교정리 하려고 했는데 아래쪽에 펄님께서 이미 주요 자료를 모두 제시해 주었네요 -_-a
  3. 적어주신 내용은 산발적으로 읽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정갈하게 모아놓은 책이 있었군요.
    읽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

    (트랙백은 왜 계속 막으셨삼? -_-)
  4. 저도 여기에 관련된 서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꼭 구해보고 싶네요.
    이곳에서도 이 환경문제는 완전 뜨거운 용암 감자랍니다. ㅠㅠ
    아참 그리고 S-1 작품코드에 그런 깊은뜻이 있을줄이야..참고가 많이많이 되었습니다. ㅎㅎ
  5. 온난화가 자연적인 것이며 인류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동안 수많은 석유업체들의 뒷받침을 받은 연구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IPCC와 협력한 2,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오랫동안의 연구를 거쳐 올해 초 발표한 결과는 "현재의 온난화는 인간의 활동에 의한 비자연적인 것의 결과일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상태로 온실가스 배출을 계속해서 208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상승할 경우 대부분의 (인간을 제외한) 생물이 멸종하고 해안선의 30%가 물에 잠기며 인류 35억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는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그정도까지 가기 전에 지구 곳곳은 물과 식량 쟁탈전, 즉 전쟁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미 수단 다르푸르에서는 (물론 인종 문제, 종교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섞여 있지만) 물 부족이 얼마나 극심한 재앙을 불러 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게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이고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가장 곤란한 지경에 빠지는 게 중국과 같은 개도국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일단 미국도 (석유자본의 영향이 막강하기 때문에) 선진국이면서 기후변화 대처에 매우 소극적인 것을 보면 단순히 선진국 후진국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어떤 현상이라는 것은 한 가지 면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온난화가 자연적인 현상일 수 있고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압력이 지나치다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석유자본의 주장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군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제간 협약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오존층 파괴를 막기 위해 프레온 가스 사용을 점차 줄여 아예 사용을 금지하기로 한 협약입니다. 실제로 이 협약을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들도 잘 지켜왔기 때문에 더이상의 오존층 파괴를 막을 수 있게 됐습니다.(물론 현재도 과거 프레온 가스 배출의 영향으로 오존층 구멍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후면 다시 줄어들기 시작할 거라고 합니다)
    기후변화와 온난화의 문제점을 다소 과장 왜곡하는 쪽도 문제는 있습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 이변(허리케인 카트리나, 수십년 만의 폭우나 폭설 등등)의 원인이 온난화에 의한 것이라고 무조건 연관짓는 게 그 같은 경우인데요. 하지만 과장이나 왜곡을 제거하고 봐도 역시 온난화의 원인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 수년 전부터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제품들을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내뿜는 수많은 온실가스들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설에 더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으신가요.
    • 2007.10.16 13:30 [Edit/Del]
      다시금 더 많은 자료를 찾고자 했는데 펄님께서 고맙게도 자료를 모두 주시네요. 글에서도 밝혔듯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압박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펄님의 글을 보니 아예 그걸 노리고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6. 좋은 책, 포스팅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부시정권이 들어선 이후 NASA의 기후 과학자 James Hansen이 백악관 쪽으로부터 지구 온난화를 지지하지 말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과 (주로) 미국 내에서 '지구 온난화가 사실 지구 기후 변화 역사의 일부분이다' 라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기가 막혀하는 사람이라 저자의 일부 견해와 내용에는 반대하고 싶네요.

    하지만 가난을 이슈화 시킨 저자의 의견은 상당히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가난 해결이 환경문제해결에 큰 키 요인이 되는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많은 환경론자들이 두려워 하는건,
    지금은 토론하고 논쟁할 시기가 아니고 이미 우리는 늦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액션이 1초라도 빨리 실행되어야 할 시간이라는 거죠. 가난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어쩌면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 자체를 탓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쩌면 환경비관론자들의 이야기가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가능성 때문에 엄청난 재앙을 당하기는 싫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이 부분에서도 '가난'이라는 부분 때문에 South 국가들은 환경비관론이 진짜 일수도 있지만, 틀릴지도 모르는 작은 가능성이 남아 있기에 어마한 경제적 손실을 보기는 싫어하는거 같구요,-

    리플 달다보니 재무분야의 위험선호도가 떠오르는군요.. South국가들의 위험 선호도가 높은거 같습니다.ㅎ 전 개인적으로 위험선호도가 낮습니다. 어쩌면 제가 South국가에서 태어난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도 드네요. 저도 이 책 조만간 읽어보고 포스팅남겨보도록 할께요.

    참 근데 내일IT업계의 N社 시험이신가요?^^
    • 2007.10.16 13:33 [Edit/Del]
      위에서 펄님께서 제시한 자료를 봐도 확실히 이 책의 저자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이브한 측면이 있을 것 같군요. 어쨌든 장을 어떻게 받아들여도 분명한 점은 north건, south건 이미 환경 문제는 전지구적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north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south가 환경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 힘든 것은 현실이거든요. 댓글 잘 읽었고 멋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전 아직 학부생 나부랭이로 졸업까지 한 학기 더 남았습니다, 뭐 해 먹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런 면에서 가고자 하는 길을 잘 닦고 있는 Justin님, 부럽습니다 ㅜ_ㅡ
    • 2007.10.16 14:16 [Edit/Del]
      앗 그렇군요. 저도 사실 지금 휴학중이라 중간고사시험 기간인걸 깜빡했네요-ㅎ 제 친구들이 이번에 다 취업시즌이라 입사시험인줄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시험 잘 보시길 바라요~
    • 2007.10.16 23:46 [Edit/Del]
      Justin님 친구분들이라면 왠지 요즘 유행하는 구글러 편지 필이 나는 분들일 것 같군요, ㅎ_ㅎ
  7. NAMAD
    사실 지구온난화를 가장 먼저 주장하여 수많은 연구자금을 모은 모 학자(이름이 기억이...)는 70년대 중반까지는 냉각화를 주장하여 명성을 얻던 자입니다.
    또한,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온난화를 선거정책에 이용함으로써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어낸 뒤로 세계적 이슈가 됩니다.
    이후 학회 등에서 소수의 소신있는 대기과학자들이 영국의 포도재배지의 하향화, 기후측정지의 도심편중화 등의 여러 구체적 사례를 들어 근거없는 가설임을 주장했지만, 대다수 기득권 학자들의 비난을 받고 학계에서 밀려 나게 됩니다. 그들에게 지구온난화란 명제는 노다지와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사실을 논외로 두더라도, 현대의 모든 과학적 연구란 것이 돈과 산업, 정치 등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눈팅만 하다가 뜬금없고 갑작스런 댓글 죄송합니다.
    • 2007.10.16 23:47 [Edit/Del]
      '사실을 논외로 두더라도, 현대의 모든 과학적 연구란 것이 돈과 산업, 정치 등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담배와 건강을 둘러 싼 연구를 두고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죠. 앞으로도 좋은 댓글 많이 남겨 주십시오 ^^
  8. 와, 이 포스팅과 관련해 활발한 토론이 되고 있군요. 한국의 '환경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정말 심각한 것 같습니다. 우선은 환경문제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부재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환경문제가 딱히 좌/우, 진보/보수로 나뉘어 쟁점화되기에 아직은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요, 무엇보다 대중들의 '개도국적 허기'나 '에너지자원 부족 국가 컴플렉스'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대중들의 관심 유무가 사회문제의 심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인데, 그것만을 추수하는 정치풍토가 개탄스러운 거죠.
    환경문제에 대한 많은 대화와 실천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포스팅입니다.;)
    • 2007.10.17 23:50 [Edit/Del]
      그러게요, 이 책의 저자도 '매일같이 환경 이야기가 나온다'고 개탄하는데 한국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ㅎㅎ...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저도 많이 배우고, blog action day가 제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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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공부는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가?경제학 공부는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가?

Posted at 2006. 12. 25. 21:57 | Posted in 세금도둑 경제부
듀크토고님의 글을 보고 트랙백합니다.

솔직히 언론에서 진보, 보수는 좌파, 우파와 함께 너무 함부로 남용하기에 현실에서 쓰이는 그 의미를 정확히 포착해내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몇 가지를 생각해보자. 먼저 사전적 정의이다. 기본적, 사전적으로 보수는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 가장 사전적으로 놓고 본다면 보수는 진보와 반동 사이에 끼인 그 무언가이다. 즉 진보란 긍정적 의미의 변화이며 반동은 부정적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진보에 부정적 변화의 의미는 들어있지 않으며 부정적 변화를 진보라 일컫는 것은 긍정적 변화를 위한 필연적 부정적 과정일 때이다. 반동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공자를 반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느 정도 부정적 의미가 깃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모택동 시절 중국은 공자를 반동주의자라 일컬었으나 다시금 중국에서도 성인의 위치를 되찾은 공자는 반동주의자라 불리지 않는다. 그가 분명히 과거회귀적인 모습을 보였음은 사실이었음에도 말이다.

다음으로 정치성을 강하게 지니고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좌파는 우파, 보수를 그저 가진 자들의 이익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약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사상으로 이야기하며 우파는 좌파, 진보를 순수한 노력의 대가로 얻은 더 부유한 이들의 이익을 능력, 혹은 노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부자연스럽고 불공평한 사상으로 이야기한다. 즉 대비되는 방향을 부정적인 것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당파성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이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이들이 보수를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며 (때로는 올바른 보수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결국 현재의 보수를 부정하는 것에서 기인하며) 보수언론이라 불리는 이들이 진보를 좋은 의미를 사용하는 경우 역시 드물다. (이 역시 현재의 진보를 부정하는 것에서 기인함에 불과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사전적, 기본적 정의는 중요하지만 그것에 얽매어 현실적 쓰임을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 현실을 떠난 정의는 이미 의미를 잃은 – 그것이 학문적 연구라면 모를까 –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입장이 담긴 그 쓰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즉 현실적인 용례 내에서 과도한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 채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솔직히 이들 개념의 쓰임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만 이들 개념의 사용에서 정치적 당파성을 걷어낸다면 그것의 의미는 ‘좌파 – 우파’와 매우 근접한, 사실상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본다. 즉 시장의 작동에 국가 개입의 여부, 그리고 성장과 분배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가 기본적으로 남는다고 본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우파 – 좌파’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진보는 그냥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게 옳다고 본다. 즉 우파적 방법을 취하건 좌파적 방법을 취하건 더 많은 이들에게, 특히 약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면 그것을 진보라 칭하고 싶다.

그렇다면 제기된 문제로 들어가 보자. 경제학 공부가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가? 여기서 ‘보수’를 ‘우파’적으로 만든다고 바꾼다면 어떨까? (위에서 밝혔듯 나는 이렇게 보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러한 관점에서 ‘보수’를 언급할 것이다) 이럴 경우 나는 그 명제가 옳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이 발전해오며 수 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과 시장이 지닌 문제점을 비판하는 이들과의 논의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어떤 ‘XX주의자’라는 딱지를 달고 등장하건 말이다. 여기서 볼 때 이 두 흐름이 동등하다고 보더라도 벌써 반은 시장을 보다 중시하고자 하는 보수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에서 그치는가? 그럴 리 없다. 우리는 우선 대부분이 학부, 즉 대학생활에서 자신의 공부를 마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이야기냐고 하면 대학 공부라고 해 봐야 별 것 없다. 학부시절의 교육은 사실상 이후 공부할 것을 알아먹게 만드는 정도, 또한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이다. (물론 말이 쉽지, 이걸 제대로 배우는 게 쉽지 않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경제학의 태동 자체가 이미 수요와 공급, 즉 시장에서 비롯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시장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시장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고 학부생활은 아무래도 이 쪽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경제학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아무래도 다수의 경제학도들은 그것을 크게 넘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일 테다.

사실 현대사회에 시장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한다고는 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지닌 효율성을 의심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물론 이 경우 질적인 측면은 무시되지만) 또한 현실 속에서 시장이라는 기제를 포기, 혹은 대폭 수정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장이라는 틀을 계속해서 분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려 하는 게 경제학이라는 점에서 경제학도들이 어느 정도 보수화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경제학도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수적인 관점(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파적 관점)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경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만큼 누구나 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기에 나는 경제학도들이 일정 정도 보수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이를 그다지 부정적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대개 ‘보수’라는 개념의 사전적 정의가 좀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실제 쓰임은 진보 역시 그러하듯 가치적으로 중립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문제가 없지만은 않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라 해봐야 대다수가 학부레벨이지만 나는 그들 중 좌파적인 접근을 하는 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고전적 자유주의의 관점을 너무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생각을 받은 적이 적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학부레벨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며 또한 경제학도들만의 문제 역시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술적으로만 봐도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떨치기는 힘들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심지어 논리적 정당성의 정도를 떠나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듀크토고님이 제기한 자유주의라는 용어의 쓰임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분명 시장을 더 지지하는 우파에 있어야 한다. 많은 좌파적 길을 지지하는 이들이 자유와 평등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유는 필연적으로 평등과 상충한다. 좌파적 방법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좀 더 어울린다. 한국에서는 반공주의의 영향이 막대하다보니 아직까지 ‘사회주의’라는 말이 쉽게 쓰이고 있지 않지만 복지와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은 당연히 사회주의자로 봄이 옳다. 이 역시 경제학도가 보수적이라는 칭호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듯이 거리낄 필요가 없는 말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국가’라 칭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는 이들이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단순히 사회주의자들, 혹은 좌파적 방법을 선호하는 이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모두 점유하려는 원인에 있지만은 않다. 집권층 (정치적 측면을 넘어 힘을 쥐고 있는 이들) 에서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타인의 (특히 약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측면이 존재하며 사회주의자들이 이들에 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타인을 억압하는 이들이 자유주의자가 아니듯 이들에 저항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기본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이들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비판해 나가는 것은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의 책임이며 오히려 자유의 가치를 더 높게 사는 보수적인 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1. 이방인
    승환님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려고 할때마다 금칙어가 있다고 하는군요-_-. 괴롭습니다.
  2. 헉 제 글을 -_- 사실 제 글도 아니고 영어공부나 끼적거려 본 것에 불과한데...

    얼른 볼만하게 수정 좀 해야겠군요

    좀 긍정적으로 이산수학은 그나마 중간 이상이었다...
  3. 저는 일단 경제학 공부라도 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4. 흥미진진하면서 진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용어 정의부터 접근하셔서 아주 좋았습니다.
    보수에 대한 견해는 이견도 있더군요.
    보수가 꼭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을 지키려는 보수는 좋은 것이다...... 라는 주장.
    공자의 경우엔 "옛 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신 분입니다만......
    물론 사회를 변화 발전시켜야 하고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려는 이들은 모두 진보주의자로 불리우게 된다는 점에서는 진보라는 단어가 좋긴 좋습니다만......

    그리고 사안마다 시민들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보수파도 되고 진보파도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내 정체성은 뭐지?'라는 아리송한 질문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사실은 지나치게 편가르기 국면으로 몰아가는 정치인들과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그런 잘못된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고, 보수언론에서조차 진보적인 견해를 읽을 수 있고, 진보언론에서조차 보수적인 견해를 읽는 경험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진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개선이 아닌 개악의 경우에는 진보라는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용하는 단어가 문제가 아니라, 님의 말씀대로 사회의 진보 발전, 인권 개선, 상식을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인간된 도리를 다 하는 데 있어서 진보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도 촌스럽게 편가르기를 하는 분들을 소수지만 가끔 접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한숨이 나오더군요.
    그런 식으로 편가르기해서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정권을 옹호하려 들고, 상대편 정당이나 정치인,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국민들을 내쫓고 우롱하려 드는 모습을 볼 때는 참으로..........

    무의미한 편가르기는 관두고, 그저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발전하고 인류 복지에 기여하는 그런 사고로 사안별로 깊이 고민하는 자세를 전 국민이 갖추고, 편가르기 정치공학이 발 붙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요즘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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